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둘째를 맞이할 준비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둘째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그럼에도 둘째 아이는 그런 엄마의 사정을 모두 이해해 나에게 위로하는 듯 눈부시게 어여쁜 눈망울로 나를 보며 방긋거렸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며 아이의 이름을 곰곰이 생각했다.
참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림이.
우리 공주와 꼭 맞는 이름이었다.
유림이와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3일째가 되는 날.
남편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림이가 뇌수막염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어.
그런데 주사도 못 맞고 있어....
도저히 그림이를 혼자 볼 수가 없어...
당신이 병원으로 빨리 와줘야겠어...”
‘유림이도 봐야하는데.. 나도 지금 너무 아픈데.. 남편이 오롯이 혼자서 그림이를 본 건 처음이니깐 그럴만도 해... 그럼 나는...’ 남편과 전화를 끊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쑥날쑥이며 동시에 서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손은 벌써 짐을 주섬 주섬 챙겨 가방에 넣고 있었고 나는 내 병원에서 그림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림이가 아픈 건 ‘엄마 책임’이라고 했으니, 엄마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들쑥날쑥 복잡하던 생각들이 바로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이를 출산한지 3일째 되는 날부터 병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쪽잠을 자며 그림이를 돌보았다.
이렇게 일주일정도 됐을 때 나 또한 참기 힘든 고통에 시달려 담당의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애원했다.
우리 퇴원 좀 시켜 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지만 매정함이 뚝뚝 떨어지게도 뇌수막염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퇴원시켜 줄 수 없다는 가차 없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활을 생각하니 우울하고 슬펐다.
그래도 그 우울함은 다행히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3일 뒤 검사결과가 나왔고, 뇌수막염이 아니라고 담당의사가 전했다.
분명 3일 전만 해도 정말 지독히도 매정한 의사로 보였는데,
그 말을 전하는 순간 의사의 등에서 눈이 부신 빛이 났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열흘 만에 그림이와 함께 유림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돌아간다.
집에 돌아간다는 자체만으로 기쁘고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