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그림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어제 해질녘 집에 돌어와 가장 먼저 한 것은 사설 치료센터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복지관에서 모든 관문을 마치고 마지막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끝마칠 때 쯤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다.
“내일부터 치료를 받으러 오면 될까요?”
늘상 듣는 질문인 듯 선생님께서 바로 답변을 주셨다.
“치료를 받으시려면 대기자가 많아 몇 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마저도 정확히 몇 년인지는 말씀 드릴수가 없네요.”
상담 선생님의 말에 넋을 놓고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마지막 실낱같은 구원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가까운 사설치료센터를 알아보세요.”
이제 갓 입문한 초보 거북맘인 나에겐 더없이 감사한 정보였고,
집에 가서 바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기대만큼 얻지 못한 실망스러운 마음과 하루 종일 아이와 밖에 있으며 사람들에게 얻어먹은 눈칫밥으로 무거워진 내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 하나 할 수 없이 힘이 빠져 침대 위로 그대로 쓰러졌다.
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을만큼 힘들었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배가 뻐근하다고 느끼는 순간. 없던 정신이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곧 태어날 둘째아이가 생각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고 있었으며, 지난밤 빼곡히 써놓았던 계획서 또한 모든 수정을 끝내가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힘이 빠져있는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응원하는 뱃속의 아이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찬찬히 수정된 계획표를 다시 들여다보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시행착오를 겪은만큼 그 시행착오를 반영해 더 완벽하게 짜놓은 계획표였다.
이대로 6개월동안만 한다면 말이 다시 트일것이고,
그림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비롯 시간을 분과 초단위로 쪼개 100미터 전력질주를 하는 느낌이 드는 시간표지만 나는 해 낼 것이다. 해 낼 수 있다. 해낸다... 하며 희망의 속삭임과 함께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림이와 나의 새 아침이 시작됐다.
우리 둘은 계획서에 적힌 1번을 완벽하게 해냈고, 기분 좋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환호성이 내 마음 속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계획표에 적힌 대로 일어나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 맞춰 나와 어제 예약한 치료 센터를 찾았다.
대부분의 치료는 40분으로 어제 복지관에서 상담 받은 가격의 2-3배가 되는 치료비였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니 그날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모두가 다 내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는 날이었다.
여기까진.
아이가 선생님과 함께 치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낯설어서 그런가..
내가 없어서 그런가..
어디가 불편한가..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자 속에서 부글 부글 열이 났다.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또 10분은 잠깐 잠잠했다가 다시 남은 시간을 울음으로 떼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40분의 치료가 30분의 눈물로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료시간동안 부글부글 끓었던 화는 모조리 아이에게 쏟아졌다.
“이 놈이 비싼 돈을 우는데 다 쓰네. 다 써!!!”
내 말과 감정에 관심 없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나 아이의 등짝을 때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도망가는 아이의 등에 대고 사정없이 목청 높여 잔소리를 해댄다.
“아무것도 못하겠네!!! 우느라고!!!”
“너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도와줘야 할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