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스 국립공원
기대하던 아치스 국립공원 파이어리 퍼넌스에 가는 날이었다.
조식 포함인 숙소여서 7시 반에 조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더 모압 리조트는 이번 여행에 묵었던 숙소 중에서 조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국식 뷔페였던 다른 숙소와는 달리 리조트 내 스타벅스에서 조식을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 여기가 무료조식이 맞는 건지 몇 번이나 물었다.
빵과 계란 소시지와 감자튀김, 이렇게 별다를 것 없는 조식인데 왜 맛있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둘째는 아직도 더 모압의 감자튀김을 떠올리며 "정말 맛있었지." 추억하곤 한다.
아침도 맛있게 먹고, 물도 남편 두 병, 나 두 병, 아들이 한 명 충분히 챙기고, 등산화를 단단히 조이고 파이어리 퍼넌스로 향했다.
그날의 일정은 파이어리 퍼넌스 하이킹을 하고 해가 뜨거운 2, 3시에는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가 4시쯤 다시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가는 거였다. 그 후에 데블스 가든에 갔다가 델리키트 아치에 가서 석양을 보고 싶었다.
파이어리 퍼넌스 입구에 도착했다. 전날 저녁 레인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앞으로 쭉 직진했을 거였다. 왼쪽 내리막길로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리 말고 한 가족도 어떤 길로 갈지 고민하다 왼쪽 내리막길로 출발했다. 파이어리 퍼넌스에서는 백 년이 걸려야 겨우 조금 자라는 검은 흙무더기와 땅 속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래와 돌 위로만 걸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모래 위를 걸었다. 처음에는 계속 이렇게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 줄만 알았다. 초입에는 모래 위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어서 길을 찾기 쉬웠다. 레인저가 괜히 길을 잃으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4시간도 걸릴 수 있다고 겁을 준 거라고 생각했다.
미로 공원을 좋아하거나 탐험가 정신이 있다면 파이어리 퍼넌스를 예약하길 추천한다. 파이어리 퍼넌스는 영겁의 세월이 만든 천연 미로다. 아래 좌측 사진은 All trail이고, 아래 우측 사진은 구글맵이다. 퇴적과 침식을 반복해 만들어진 fin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다. 여기가 바로 천연미로일 수밖에.
파이어리 퍼런스에 들어간 지 30분이 지나나 모래는 사라지고 바위가 이어졌다. 바위 위에는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길을 안내하는 표시판도 잘 보였다.
거기서 아들 둘과 함께 온 부부를 마주쳤다. 그들은 막다른 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참이었다.
저기는 어떤지 묻자 막다른 곳도 아름답다고 한 번 가보란다. 역시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길이 아닌 곳으로 일부러 깊이 들어갔다. 하이킹 한 시간 즈음까지는.
대체로 막다른 길이거나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낭떠러지였다.
우리 가족은 키가 작긴 하지만 운동능력은 뒤지지 않는다. 키 큰 백인 가족들도 애는 써보지만 못 올랐던 바위도 스파이드맨처럼 척척 올랐다가 내려왔다. 작은 딸도 척척 올라가니 그 집 키 큰 아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가족과 다른 방향으로 간 이후로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바위가 덩그러니 있어서 어디가 길인지 찾지 못했고, 좁은 바위 사이를 배낭을 벗고 게걸음으로 지나기도 했다. 길을 찾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도저히 아이언맨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 나와 되돌아가기도 했다.
전화와 인터넷은 당연히 신호가 잡히지 않고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날 파이어리 퍼넌스 입장 교육을 받았을 때 레인저는 갈색 바탕에 흰색 화살표가 있는 작은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표지판은 돌과 흙에 감쪽같이 위장되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곳의 일부가 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위험이 차단된 안전한 곳에서 살아왔다.
빌딩이 있고 CCTV가 골목마다 있으며, 인터넷은 언제든 터지고 물이 부족하면 편의점에서 사면 되는 곳에서. 이런 오지에 오니 내가 톰 소여라도 된 듯했다.
남편의 음악 리스트에 <문 리버>가 있어서 하루에 문 리버를 몇 번씩나 들으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아직 읽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후로 여행 중에는 모든 걸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
하지만 구글맵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파이어리 퍼넌스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에 모험을 더 하고 싶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더 이상의 모험이 필요 없었으므로, 그리고 안전하게만 살아 온 나도 사실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으므로 인공위성과 문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구글맵을 열었다.
당연히 인터넷은 안됐다.
이럴 때는 이과생에다 계획성있는 남편 덕을 본다.
구글맵에서 위성사진을 확대해 미리 보고 올 것을 추천한다.
남편이 위성사진을 미리 보고 온 덕분에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미리 보면 궤적이 남는다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정말 4시간도 넘게 걷다가 '탈출'하듯 나왔을 거다.
그것도 추억이 될 수 있었겠지만.
'탈출'이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우리 가족은 파이어리 퍼넌스 하이킹을 마쳤다.
하이킹을 하면서 아치스 국립공원 안에 우리 가족 네 명만 존재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허클베리 핀은 여전히 '내가 만약 구글맵을 켜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한다.
'그런 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을 때나 하는 거라고!' 엄마인 다른 내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