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
일 년 오 개월의 미국 살이를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 주가 됐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미국에서 마지막 뒷정리를 할 때는 영어도 힘들고 미국 살이도 지치고 얼른 한국에 가고 싶었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 미국이 그립다.
파란 하늘도, 집 근처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들리던 것도.
자주 가던 커피숍에서 마시던 커피도. 아이들을 픽업하던 길에 보이던 나무가 많은 풍경과 소와 말이 울타리 안에서 유유히 풀을 뜯던 풍경도 그립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에서 한 일은 이마트 장보기였다.
한국에 두고 온 집은 먹거리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쌀 그리고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기본양념도 사야 했고 계란이나 두부 콩나물 같은 반찬거리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을 때는 40분 거리에 있는 h마트까지 가야 한국 먹거리를 살 수 있었는데, 한국에 가면 한국 음식을 실컷 먹어야지 생각하며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고 17만 원어치를 결제했다.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데 팁도 없는 놀라운 시스템에 감사하면서!
미국에서 인터넷 장보기를 하면 배송비 무료 이상을 사도 배송 기사에게 팁을 줘야 했는데. 최소 3불에서 그 이상은 물건값에 비례해서 말이다.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새 학년을 시작했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시간에 아침을 먹는다.
미국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의 주식은 '빵'이었다.
그것도 내가 직접 만든 빵.
주말이면 나는 일주일치 식빵을 구웠다.
아침마다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빵을 잘라 버터나 크림치즈, 초코잼이나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딱 한 명, 아들만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며 꿋꿋이 밥과 매콤한 국을 고수했다.
아마 점심으로 미국 급식을 먹는데 미국 급식은 스파게티나 피자 같은 것뿐이라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한국에 오니 국과 밥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아침이면 다 같이 빵을 먹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 집에서는 더 이상 빵 굽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강력분을 구하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유기농 강력분을 인터넷에서 사려고 하니 20kg을 사야 적당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일단 더 이상 빵을 만들고 싶지가 않다.
나는 잘 몰랐는데 나는 조금 지쳐있는 것 같다.
자주 가던 빵집을 차로 지나가면서 차를 주차하고 빵을 사지 않는다.
그렇다고 빵을 만들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 장을 볼 때 대충 삼립 식빵을 주문한다. 제과점도 아니고 마트에서 빵을 사는 건 처음이었다.
주말에 장을 볼 때 노브랜드에서 삼립 식빵을 두 팩 샀다.
하나는 곡물, 하나는 부드러운 빵.
아침에 곡물빵 두 조각과 부드러운 빵 두 조각에 각각 치즈와 쨈을 끼우고 파니니 기계에 구웠다.
파니니 기계에 빵을 구우면 웬만하면 맛있어진다.
온 가족이 각자의 시간에 구운 빵과 토마토와 각자의 음료를 먹는다.
집에 반죽기와 오븐이 있지만 더 이상 빵 냄새가 나지 않는 집.
우리 집에서 빵냄새가 난다면 그때가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부러 빵을 구워야 할까? 빵냄새로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서?
나에게 빵 굽는 시간은 회복의 시간이라는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