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한 석박지 같은 <오늘의 코트>

그림책 에세이 2

by 니나

아끼는 옷이 있다. 남동생 결혼식에 입으려고 샀던 허리가 잘록하고 그 아래로는 라인이 퍼지는 페플럼 스타일의 재킷이다. 너무 차려입은 느낌이라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거나 결혼식이 있을 때가 아니면 입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 년에 한두 번 입는 것이 전부랄까. 이 옷은 정말 가혹하다. 가끔 옷장에서 꺼내 걸칠 때마다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아끼다 똥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 옷을 입고는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없다. 의자에 앉을 때도 배에 힘을 주고 바른 자세로 앉게 만든다. 내 눈에는 예쁘지만 예민한 옷이랄까.


생각해 보면 그런 관계도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없는 집, 넷플릭스를 틀어도 재미있어 보이는 건 하나도 없는 날, 책도 읽고 싶지 않고 그냥 늘어져 있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하곤 한다. 가끔은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하기도 한다. 중학생 시절 매일 붙어 다녔지만, 언제인지 모르게 멀어졌던 친구에게, 이승환과 결혼할 거라며 비장하게 선언했던 그 친구에게도. 부산에 계속 살고 나는 부산을 떠나 살다 보니 저절로 멀어져 버려서 연락처가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십 대에 내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줬던 언니에게도 안부를 묻는다. 그 언니는 남편과 러시아로 이민 가서 이제는 페이스북으로만 가끔 안부를 물을 수밖에. 재킷처럼 서로의 예민함 때문에 멀어졌던 건 이십 대에 나와 제일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언니다.


그 언니와 나는 쓸데없이 섬세한 사람이었다. 예민했던 그 시절, 가치관의 결이 조금만 달라도 마음을 내주지 않았음에도 우린 순식간에 친해졌다. 우리는 마치 유리알로 빚은 것처럼 섬세하게 작은 뉘앙스에 반응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맛있는 초콜릿과 커피를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손과 심장이 두근거리는 카페인 과다 섭취에 이르렀던 적도 있었다. 우린 주말마다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고궁에 놀러 다니며 우정을 쌓았다. 자취방을 구하지 못해 전전했던 몇 달간 나는 언니네 집에 기생해서 살았는데, 방을 나누어 쓰는 불편함을 언니는 감수해 주었고, 언니의 부모님도 나를 불청객으로 여기지 않았다. 언니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은 내 취향에 딱 맞아서 우리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서로 얼굴에 팩을 붙여주고, 마음이 아픈 이야기를 할 때면 데굴데굴 구르며 울기도 했다. 언니 같은 자매가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우리의 취향이 극으로 나뉜 건 음식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사는 언니에게 맛있는 것은 밖에서 파는 이탈리아 음식이었고, 자취를 오래 했던 나는 김치와 된장찌개같은 집밥이 최고였다. 하지만 둘의 취향이 맞았던 음식이 하나 있었다. 그건 언니 어머니가 만들었던 석박지를 넣은 차가운 국수.

언니 집에서 산지 두 달 후 여름, 이제 조건에 맞는 저렴한 자취방을 구해서 언니네 집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없는 옷가지를 다 정리하자 언니가 점심으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준다며 일어났다. 음식에는 똥손이나 다름없는 언니가 뭘 만들지 걱정이 되어 옆에서 거들려고 따라 일어났다. 언니는 냉장고에서 무 딱 절반으로 썰어 만든 커다란 석박지를 꺼냈다. “국수 삶아서 이 3년 된 석박지랑 같이 먹으면 진짜 맛있어.” 국수와 함께 먹는 시큼하고 톡 쏘는 석박지는 여름 음식으로 딱이었다. 지금도 그 맛이 나는 석박지를 만들려고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늘 실패였다.


그랬던 우리는 왜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을까. 석박지 국수를 나누어 먹고 내가 자취방을 얻어 언니 집에서 나간 이후 우리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나는 언니에게 늘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고, 언니에게 먼저 연락했다. 쓸데없이 섬세했기에 우리는 스치듯 말하는 단어로도 서로를 이해했지만, 그 섬세함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 점차 멀어지고 말았다.


『오늘의 코트』를 읽으며 나는 언니를 떠올렸다. 그림책은 유리라는 아이와 노란색 코트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유리는 코트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얼룩이 묻을까 봐,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절대 코트를 입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노란색 코트는 유리가 입어주길 바란다. 유리와 함께 산책하고, 바람을 맞길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코트는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유리의 옷장에서 탈출한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다행히 유리네 마당 앵두나무 위에 걸린 코트는 얼룩지고 찢어졌다. 드디어 유리는 코트를 입는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어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오늘 우린 함께 있어요.

<오늘의 코트 중에서>

코트가 엉망이 된 이후에야 유리와 코트는 함께 있게 된다. 언니와 나는 서로의 마음이 아물어진 삼십 대가 되어서 다시 만났다. 꼭 맞는 옷처럼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다소 풀어진 모습으로 석박지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성숙한 관계에는 비바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같이 살았던 두 달 동안 서로의 바닥을 보고,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치졸함을 드러내고, 화내고 삐졌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연락을 했다가 하지 않았다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오늘의 코트는』 목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함께 있는 관계를, 비바람에 너덜거려진 이후에야 코트를 입은 유리의 ‘오늘’을 보여준다. 속상한 마음, 부채감, 쪽팔림 자존심을 내려놓고 ‘오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계. 결국 함께 할 ‘오늘’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책을 보며 비바람을 맞고 있는 모든 관계를 응원한다.


석박지국수.png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오늘의코트.jpg

『오늘의 코트』 /송미경 글, 이수연 옮김 / 웅진주니어 2025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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