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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샤 Dec 07. 2018

산으로 가는 서울페이, VAN과 POS를 어이할꼬?

핀테크 살리기 #8

뉴스 기사 하나를 먼저 소개합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사업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당초 신용카드 결제 과정에서 부과되는 카드사 수수료, 밴(VAN) 사 수수료 등 중간 단계를 줄여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제로페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사업 활성화를 위해 밴(VAN) 사를 참여시키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은행에 밴사의 수수료를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은 계좌이체 수수료 감면에 이어 밴사 수수료까지 떠안게 된 셈이다...

정부가 초기 계획과 달리 태도를 바꿔 제로페이 결제 과정에 밴사를 참여시키기로 한 이유는 가맹점 내 ‘판매시점 관리시스템(POS)’과 제로페이를 연동시키기 위해선 밴사 참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규모가 있는 가맹점의 경우 POS를 사용하는 곳이 대다수다. 가맹점의 POS는 밴사 대리점이 가맹점에 설치해주고 관리비 등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돼있다.

하지만 현재 제로페이는 가맹점의 POS와 연동되지 않아 POS를 주로 사용하는 가맹점이 제로페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크지 않다. 소상공인을 위해 추진되는 정부사업에 가맹점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

정부는 도입 초기에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참여사의 개별 결제 플랫폼을 활용할 생각으로 결제 참여자들과 ‘이체수수료 감면’ 부분만 합의를 봤다. 하지만 최근 카카오페이가 제로페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금융결제원에서 제로페이 통합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으로 계획이 급변경됐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제로페이 통합 플랫폼 구축 비용부터 밴사 수수료까지 참여 사업자에게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제로페이가 당초 취지대로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2018.11.13]


어이가 없습니다.

Card-less, VAN-less를 표방하며 추진했던 서울페이가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 그 자체인 VAN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 도움의 대가를 은행으로부터 갹출하려고 합니다. 서울페이로 인해 밥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는 신용카드회사에 빨대를 꽂고 수십 년간 공생해온 VAN 사업자들에게 오히려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입니다. 


'적과의 동침'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요?



POS가 도대체 뭐길래?


미국의 인터넷 속도가 우리나라보다 매우 느리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든 산업을 지배하고 최첨단 기술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미국이 인터넷 속도는 느린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들이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독점적 라이센스를 갖고 있어서 '굳이' 최신 4G 통신망의 신설과 보급에 힘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통신 라이센스는 지역별로 나와바리를 보장해 주는 구조여서 비도시 지역으로 갈수록 한두 개의 업체가 인터넷 공급을 독점하는 현상이 강해진다고 하지요.

이권과 특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 사업자들은 보다 새롭고 편한 신기술을 전파하기보다는, 어차피 자신들의 가두리 양식장 속 살 수밖에 없는 내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최대한의 수익을 쥐어 짜내는 데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오프라인 결제 인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거래의 90% 이상이 신용카드로 결제되기 때문에 가로 8.6센티, 세로 5.4센티 사이즈의 플라스틱 카드 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신용카드 리더기'를 중심으로 모든 인프라가 만들어져 있지요. 신용카드 뒷면에 부착된 마그네틱 테이프는 무려 120년 전에 만들어진 구닥다리 기술에 기반하여 1960년대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오프라인 결제는 이 마그네틱 테이프를 Reading 하는 기계(카드리더기)가 장악하고 있고, POS기를 사용하는 매장은 100% 카드리더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POS입니다.

단순히 돈통 기능만을 제공하는 현금출납기에서 시작되었을 POS기가 이제는 주문과 결제 그리고 정산과 마감을 토털 서비스하는 '중앙관제센터'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90% 넘는 사람들이 신용카드 결제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리더기가 연결된 POS기가 필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서울페이는 마그네틱 리더기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에 인쇄된 QR코드를 사용자의 카메라로 찍어서 처리하는 방식이라 POS기와 별개로 운영됩니다. POS기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매장 점원의 입장에서는 서울페이로 결제하려는 사람들이 귀챦을 수밖에 없고, 장사가 끝나 마감을 할 때에도 POS 매출과 서울페이 매출을 따로 계산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서울페이는 오직 매장 사장님의 스마트폰으로만 결제 완료 메시지를 보기 때문에 사장님 부재 결제를 처리하는 캐셔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해당 결제가 정상적으로 완결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손님의 스마트폰을 곁눈질해서 제대로 입금이 는지 눈치껏 확인하거나 아예 사장님 핸드폰을 결제 메시지 확인용으로 POS 옆에 늘 비치해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POS나 카드리더기 같은 결제 인프라가 아예 전무했던 중국에서는 이 정도 불편함을 충분히 감내겠지만, 한국은 매우 다를 겁니다.

빨리빨리 문화로는 전 세계 탑을 달리는 우리 국민들이 서울페이 결제 때문에 줄이 길어지거나 앞사람이 버벅대거나 캐셔가 허우적 대는 상황을 곱게 참아줄  없지요...


서울페이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POS기 마다 QR코드 리더기를 일일이 다 구매해서 부착시키면 될 것 같은데... POS 프로그램도 손을 봐서 QR코드 결제가 작동되도록 해야 하고... 서울페이 전용 버튼도 하나 만들어야겠는데... POS기는 VAN사가 몽땅 통제하고 있으니 적당 돈을 줘서 꼬드겨야겠고...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서울시 예산으로 하면 욕니까 은행들한테 삥을 뜯어보자...


'은행에 밴사의 수수료를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기사의 이면에는 위와 같은 숨겨진 스토리가 있었으리라 소설을 써봅니다.



VAN, King of the POS


우리나라에서는 POS기의 가격이 매우 비쌀뿐더러 기계만 단독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대부분 신용카드 '가맹점' 계약과 결합시 결제건수가 몇 건 이상이면 매월 얼마의 임대료를 받고, 건수가 많아지면 아예 임대료를 안 받는 식의 '렌털' 구조로 POS를 빌려주지요.

POS 기계는 거의 공짜로 나누어 주는 미끼상품일 뿐, 신용카드 가맹점 계약을 통해 얻게 되는 VAN 수수료로 이익을 얻는 것이 대한민국 POS 유통의 현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POS 기계를 판매하는 나라 우리나라 밖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러한 유통구조가 고착된 이유는 신용카드 보급 초창기에 있었던 '전표 매입'이라는 노가다 때문에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년 전인 1990년대 부터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는데 이때 은행원들은 엄청난 노가다를 해야만 했습니다. 손님의 서명을 받은 종이 매출전표를 가맹점이 은행에 제출하면, 은행원들은 해당 전표를 수기로 전산에 입력해서 가맹점 계좌로 입금 지요. 이걸 은행원들의 전문용어(?)로 '전표 떨기'라고 합니다.



하루에 수백 수천 건의 전표를 떠느라 다른 업무를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저녁이면 동네 술집이나 카페를 찾아다니며 가맹점 유치 영업도 해야 했죠. 은행 입장에서는 비싼 월급을 주는 직원들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 했을 겁니다.

결국 은행과 카드사들은 전표매입과 가맹점 모집을 VAN이라는 POS 단말기 유통 회사에 '대행'을 시키게 되고 이때부터 VAN은 신용카드 사업과 본격적인 공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금융감독원이 제공한 2017년 기준 VAN사업자 영업실적 통계를 보면, 카드거래 승인 등의 중계 및 매출전표 수거업무 관련 수수료, 이른바 VAN 중계 수수료를 1조 1천500억 원 취득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신용카드회사가 가맹점으부터 받아낸 수수료가 2017년에 약 13조 원 정도 되니 VAN은 이 중의 약 10% 정도를 받고 있는 셈이고, 신용카드 평균 수수료율이 2% 정도 되니깐 VAN 수수료율은 신용카드 결제금액의 0.2% 정도 되는 것이겠네요.


VAN사업자는 이렇게 받아 낸 수익의 약 50%인 6,300억 원을 모집인 수수료로 지급했는데요, 이 모집인 분들은 현장에서 식당이나 미용실 등을 찾아다니며 가맹점 유치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추 6,300억 원을 1인당 연수입 5천만 원 정도로 나누어 보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용카드업의 뒤편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1만 명.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몇십만 원 밖에 안 되는 POS기를 미끼상품으로 수백조원에 달하는 결제금액에 연동하여 안정적인 수익을 얻비즈모델이 생기다 보니, 이를 통해 돈을 버는 VAN의 영업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졌습니다.


신용카드 회사들과 그 직원들은 은행이나 타 카드사와의 합종연횡을 통해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하거나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VAN 모집인들은 서울페이가 추구하는 '영세서민' 지원의 대상 그 자체일 것입니다.


서울페이는 지금 이렇게 얽히고설킨 치열한 생존 게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신용카드 사용률이 하루아침에 제로가 되 카드회사, VAN, 모집인들이 벌 수 있는 수수료가 당장 없어지 않겠지만 서울페이가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13조의 신용카드 수수료는 감소하고, 6천억의 모집수수료도 줄어듭니다. 카드산업의 종사자들이 현실로 다가온 업의 위기를 드디어 깨닫고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여론몰이를 시도하는 것과, 노조를 전면에 내세워 노동과 일자리 이슈를 덧붙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지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나?


서울페이는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수백만의 카드 가맹점이 매년 부담하는 13조 원의 과도한 수수료를 제로로 만드는 혁명의 주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신용카드업과 직접 연관된 수만 명 이해관계인과의 갈등을 피해 뒤로 물러설 것인지.


삼성전자는 자사 갤럭시폰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으로 구닥다리 카드 인프라를 그대로 지원하는 삼성페이를 만들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편하긴 하지만 가맹점의 경제적 효용은 완전 제로이고 오직 삼성폰 보유자만 사용 가능한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무려 2천5백억 원의 로열티를 외국회사에 지불하였지요.


반면 카카오페이는 영세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시대정신의 연장선에서

'요즘 장사, 요즘 사장님, 수수료 없는 카카오페이 QR결제'

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은행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펌뱅킹 수수료는 물론 매장의 불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오프라인 QR키트까지 배포하며 저원가 결제 인프라의 구축을 위한 선구자희생을 자임했습니다.


서울페이가 손을 댄 계좌to계좌 결제 방식은, 고작 1개월의 무이자 대출을 첫 달에 딱 한번 제공해 주고는 평~생 리볼빙 되는 외상구매의 굴레로 소비자들을 몰아붙이며 그 빚잔치의 대가를 가맹점에서 대신 받아 먹는 '약탈적 신용카드 결제관행'을 종결시키는 혁명적 인프라 사업입니다.

국가적 고도 성장기에는 고작 몇% 밖에 되지 않는 결제의 '통행세' 민감하지 않았겠지만,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 단돈 몇% 라도 더 벌어야 생존할 수 있는 '저성장의 노멀화' 시대에는 과도한 통행세에 대한 저항이 강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페이는 이러한 시대적 저항을 상징하는 핀테크 솔루션입니다.


통행세를 받지 않아도 오프라인 매장의 부가가치를 높여 결제 사업자와 상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 비즈니스는 무궁무진합니다. 지금도 매장에서는 여전히 종이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는 마케팅을 하고 있고, 대기자의 이름을 노트에 손으로 적었다 지웠다 하고 있으며, 콜택시와 대리기사도 앱으로 부르는 마당 식당 예약은 화로 통화하고, 식당 사장은 도대체 어떤 유형의 손에게 어떤 식이 잘 팔는지 알기 어려우며, 배달 한번 시켜 먹으면 10%나 되는 돈을 중간에서 떼어먹습니다.

누군가 IT기술을 통해 이러한 페인포인트를 저렴하게 해결해 매장의 사장님들은 기꺼이 자의 지갑을 열어줄텐데, 도대체 한국에서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로 이어지질 않습니다.


이 모든 페인 포인트의 근원은, Wifi 나 블루투스 등의 무선 Broadcasting 기능 없이 구닥다리 마그네틱 테이프나 IC칩에 의존하여 오직 '직접 접촉'을 통해 결제가 이루어지는 신용카드 전용 POS의 기술적 한계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카오페이는 계좌to계좌 방식을 통해 고비용 신용카드시스템의 우회로를 찾아냈고, QR코드라는 선택을 통해 진부한 신용카드 리더기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페이는 아마 위와 같은 '구' 비즈니스의 비전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서울페이가 만약 통행세에 기반한 신용카드업과 VAN의 사업구조를 지지한다면 다시 그들과 손을 잡으면 됩니다. 은행에서 삥을 뜯건 세금으로 메꾸건 '과거'의 인프라에 굴복하여 그저 면피라도 해야겠다면 다시 그들과 손을 잡으면 됩니다. 제로페이 보다는 차라리 카드수수료를 대폭 인하 당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그들과 다시 손을 잡으면 됩니다. 외상은 좋은 것이고 빚도 괜찮은 것이고 그 대가를 내가 아닌 제3자에게 취하는 것도 땡큐라고 생각하면 그들과 다시 손을 잡으면 됩니다. 가문의 원수가 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오는데 명검 만들어 갖다 바칠 것이라 생각하면 그들과 다시 손을 잡으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카카오페이에게 한 수 배우십시오.


서울페이가 손을 잡아야 할 대상은, 신용카드회사도, VAN사도, 은행도 아닌 바로 카카오페이입니다. 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우선권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서울페이보다 앞서 서울페이의 모든 것을 구현한 그들이 도대체 어떤 철학과 비전으로 그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인지를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애원을 하건 무릎을 꿇건 아예 사람을 스카우트해서 내재화를 시키건, 카카오페이가 그리고 있는 '속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 속마음을 이해해야 이 비즈니스의 종결점을 볼 수 있고 그 종결점을 알아야 중간 단계에서의 의사결정에 흔들림이 사라집니다.


'은행에 밴사의 수수료를 얼마나 부담할 수 있는지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이런 기사는 다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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