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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Nov 01. 2019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본질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를 보고 쓰는 첫 번째 글

속세에 사는 사람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모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영화의 명대사와 명장면이 워낙 예능프로그램과 같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 1991년에 개봉한 영화의 대사와 장면이 오늘날에도 이렇게 유명하다는 것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영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그 브랜드 파워가 아직도 막강함을 의미하는 듯하다.


원래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이하 3편)를 보기 전 봐야 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터미네이터 1>(이하 1편)과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이하 2편)에 대하여 간단히 글을 쓰고 <다크 페이트>만을 다루는 글을 따로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3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3개의 영화가 3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다른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3부작과 다른 방식으로 리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영화를 주제로 설정하여 하나의 글을 쓰는 일반적인 리뷰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을 주제로 하여 3개의 영화를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영화가 변천하는 과정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글로 쓰면 색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리뷰는 3개의 글로 구성될 예정이고 이번 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본질적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원작자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의도를 존중하여 <라이즈 오브 더 머신>, <미래전쟁의 시작>, <제니시스>의 존재는 무시할 예정이다. 

<터미네이터>1편과 2편이 어떻게 그토록 큰 호평을 받고 그 당시 영화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이후 개봉한 3개의 영화는 1,2편과 어떤 차이가 있었길래 혹평이 쏟아지고 팬들이 외면했을까? 즉,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한 관객들의 니즈(NEEDS)는 무엇일까?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프로그램된 살인기계이다. 인간의 몸으로 정면으로 맞서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터미네이터는 설득되지 않고 동정과 후회와 같은 감정도 없으며 웬만한 물리 공격으로 멈출 수도 없다.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 그리고 터미네이터는 타깃을 죽이기 위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것이다. 끊임없이 쫓는 자와 아슬아슬하게 도망가는 자의 추격전.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스릴감이 바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한 니즈이다. 그리고 그 니즈의 원인이자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잘 구현된 영화가 <터미네이터 1>이다.

필자는 1편의 성공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을 꼽는다. 첫 번째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T-800역 캐스팅이다. 일반적으로 추격전에서 서사의 중심은 도망자 쪽이다. 하지만 추격전 전반의 공포스럽고 긴장되는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추격자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아놀드의 캐스팅은 탁월했다. 기본적으로 배우분의 외모가 무섭게 생겼고 보디빌더 출신이어서 체격도 크다. 그리고 목소리의 톤이나 투박한 말투가 별다른 특수효과가 없어도 약간 로보틱(?)한 느낌을 준다.

영화 초반에 아직 추격전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놀드라는 배우가 지닌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잘은 모르겠지만 척 봐도 함부로 덤비면 안 될 거 같은 위압감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추격이 시작된 후에 여러 공격으로 인해 계속해서 상처를 입지만 눈 하나 까닥 안 한 채 서서히 로봇의 신체를 드러내면서 무표정으로 쫓아오는 T-800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이다. 2편의 T-1000과 <다크 페이트>의 Rev-9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빌런으로서의 포스만 놓고 보면 1편의 빌런인 T-800을 1등으로 꼽고 싶다.

두 번째는 역시 제임스 카메론의 기가 막힌 연출력이다. 특히 도로 추격전에서 쫓는 T-800과 도망치는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의 모습을 빠른 속도로 교차 편집하여 순식간에 양쪽의 상황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스릴감을 극대화시키는 연출은 개봉 당시에도 엄청난 극찬을 받은 부분이며 지금 봐도 완벽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체감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1984년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고작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저예산 SF영화에서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정도의 몰입감을 주는 액션 스릴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임스 카메론의 연출력에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마이클 빈 등의 사실적인 연기와 지금 시점으로는 어색하지만 당시로서는 첨단인 갖가지 특수효과가 가미되어 이런 훌륭한 추격전이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모텔에서 시작된 자동차 추격전에서 마지막 기계공장에서 벌어지는 사라 코너와 T-800의 결전까지의 시퀀스는 정말 몸에서 힘을 뺄 틈이 없다. 다만 폭발로 인해 피부가 다 벗겨져서 순수 기계가 된 T-800의 움직임은 솔직히 많이 어색하다. 아마 완전히 특수 효과로 이루어져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돈은 받았는데 일을 안 한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기술력의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어색해서 그런지 T-800의 전신이 움직이는 장면은 무슨 거대 벌레가 움직이는 것처럼 괴기스럽게 보여서 개인적으로 의도치 않은 공포감을 느꼈다.


필자는 <터미네이터 1>이 마치 기초 소묘와 같다고 생각한다. 신인 감독이었던 제임스 카메론에게 주어진 건 연필 한 자루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필만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면서 짙고 정확하게 표현해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실제로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1편은 전 세계적으로 약 8000만 달러의 수익을 냈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그 해의 영화 베스트 10'에 포함되었다.


<터미네이터 1>을 기초 소묘라고 표현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영화가 이후 제작된 2편과 3편의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3부작 프랜차이즈들은 주인공은 같지만 3개의 영화의 스토리가 각기 다르다. <어벤저스>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같은 인물이 시리즈 내에 계속 등장하고 작품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시련을 겪는 이유와 시련을 해결해 내가는 과정, 빌런이 악당 짓을 하는 이유 등 스토리는 각기 다르다. 이를테면 3개의 다른 그림 속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1,2,3편은 스토리가 똑같다. 3개의 영화가 전부 미래에서 기계에 대항하는 인류 저항군의 핵심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과거로 보내진 터미네이터로부터 그 핵심인물의 구원자 한 명이 타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스토리가 바로 밑그림이고 이것이 바로 <터미네이터1>이다. 즉,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과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1>이라는 훌륭한 밑그림 위에 덧칠을 한 작품인 셈이다. <다크 페이트> 이전에 개봉한 세 편의 영화가 혹평을 받은 이유는 물론 가지각색이겠지만 기본적으로 1편이라는 밑그림을 활용하지 않고 어설프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1편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2편이라는 무지막지한 작품의 그늘에 가려 2편 못지 않은 명작인 1편이 대중에게 무시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2편과 3편은 분명히 1편에서 파생된 작품이다. 그러므로 1편을 봐야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본질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2편과 3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1편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한 쪽 눈의 피부가 벗겨져 선글라스를 쓴 T-800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심히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이다. 영화를 보며 좀 웃었던 장면인데 3편에 오마주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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