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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Jan 19. 2020

다가올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토피아 단편선 2>를 읽고

지금까지 브런치에 여러 가지 SF작품을 보고 글을 올렸다. 비록 아직 수는 적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올릴 예정이다. 이번에도 SF 명작인 영화를 하나 보고 글을 올리려고 보니 문득 아직 국내 SF작품을 올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한국은 아직 SF 장르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나 선호도가 외국보다 미흡하다고 알고 있다. 찾아보면 많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다른 장르들에 비하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필자에게도 한국 SF작품에 대한 노출이 덜 되어서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글을 올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SF영화나 소설을 읽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찾아낸 게 <토피아 단편선> 시리즈이다.                

토피아 단편선 시리즈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SF를 비롯한 장르문학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단편소설집이다.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편선 1>은 유토피아를 그리는 이야기가 5편, <단편선 2>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이야기가 5편 수록되어 있다. 시리즈 내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뭔가 대결(?)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가 갔다. 게다가 단편소설들이라서 바로 읽기에 부담감도 적었다. 이번 글에서는 디스토피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선 2>를 먼저 리뷰할 것이다. 총 5개의 이야기 중 4개는 간단한 감상만 적고 가장 인상 깊게 읽은『텅 빈 거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한다. 글의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구성하지만 필자는 5개 모두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언인스톨

21세기 초에 20,30대 정도의 사람들이 늙어서 자신의 의식을 컴퓨터에 이식하고 300년 넘게 후손들에게 꼰대 짓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안 들어 반기를 드는 나약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보통 신의 영역이라며 우러러보는 영생이라는 소재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신선했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가 관리하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나뉘고 개인조차도 '벗'이라는 인공지능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당한다. 주인공은 이런 세상에 분노를 느끼고 있던 와중에 특수한 군사 작전에 투입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벗'이라는 이름의 감시 인공지능, 전체주의로 추정되는 국가, 새로운 세계 그리고 주인공 현추 등이 어떤 상징적인 것을 묘사하듯이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너의 유토피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버려진 행성에 남겨진 한 기계가 있다. 생존을 위해 자신 이외에 비생물 지성체를 찾아다니던 중 자신의 존재 의미를 위협하는 위기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의 인간성, 기계의 존재 의미 등 전형적이지만 특별한 소재를 풀어낸 작품이다.


두 행성의 구조 신호

우주 구호국에 서로를 침략자라고 주장하는 두 행성의 구조 신호가 동시에 접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야기가 굉장히 짧지만 웃기면서 강한 반전의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텅 빈 거품

마지막 작품인『텅 빈 거품』은 가장 전문적인 느낌이 강한 동시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전문적인 느낌이 강한 이유는 전문 용어와 개념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이슨구, 진공 붕괴, 암흑 에너지, 감광 현상 등 지구과학에서 나올 법한 개념들이 이야기 전반에 녹아 있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련의 현상들로 인해 약 150년 뒤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전체가 싹 다 날아가서 인류는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라는 전개를 이해하는 일에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세계 정부는 남은 150년 동안 지구에 남은 자원을 총동원하여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유토피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전개가 이어졌다.

다이슨구의 상상도

이야기의 소재 자체도 흥미롭고 이 소재와 맞물리는 주인공 상미의 행동은 많은 시사점과 담론의 여지를 준다. 핵심은 이것이다. 

"만약 무슨 짓을 해도 약 150년 뒤에 인류는 멸망하고 그래서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보내자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이때 당신에게 지구를 탈출하여 이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인류는 그 대재앙을 느끼기도 전에 고통 없이 사라질 것이다."

상미는 그 유토피아가 일종의 기만이라고 표현한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 정착할 기회와 우주적 재앙으로 인한 인류 멸망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알 권리를 박탈시키고 있는 것이다. 상미는 그렇게 생각하여 우주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행성의 존재들이 타고 있는 구조선에 탑승한다.

상미는 지구를 탈출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다고 지구를 탈출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고 우주적 재앙의 사실에 대해 알면서 유토피아 계획에 동참하는 게 그른 행동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150년 뒤라면 어차피 개인은 우주적 재앙이 오기 전에 늙어 죽을 것이고 그전까지 그 개인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겠다고 한다면 말릴 만한 근거가 없다.


이처럼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딱 선택하기가 어려운 듯하다. 필자가 만약 상미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필자 역시 지구를 탈출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다. 유토피아에 남지 않는 이유는 필자가 우주적 재앙과 유토피아가 건설된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상태인 이상 필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유토피아의 수많은 사람들과 나 자신마저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구조선은 인류의 것이 아니라 훨씬 발전한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외계인들이 만든 것으로 시설이 생각보다 쾌적(?!) 한 것으로 묘사된다. 다이슨 스피어와 진공 붕괴와 같은 개념이 실존하고 외계인도 있는 세계이니 어딘가 새로운 미지의 행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거품』을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에 SF를 좋아하는 필자 자신을 다시 한번 발견했다. 다른 4개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SF의 재미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상상한 미래가 오지 않기 위해 또는 상상한 미래를 향해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 <토피아 단편선 1>은 다음 글에서 다뤄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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