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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Feb 06. 2020

"오! 멋진 신세계여"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 모든 것이란 사람이 태어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부터 시작한다. 이 세계에는 임신 따위의 비효율적이고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생산된다. 다행히도(?) 한 개의 난자를 온전히 차지하여 태어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한 개의 난자에서는 보카노프스키 처리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 96명의 사람들이 공산품 찍어내듯 태어난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멋진 신세계'이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에게는 계급이 존재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이렇게 5개이다. 알파에서 엡실론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열등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멋진 신세계는 어차피 마음대로 사람을 생산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사람들 간의 차등을 두는가? 전부 다 똑똑하고 유능한 알파 계급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도록 길들여졌다. 알파가 행복한 이유는 자신이 엡실론들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엡실론이 행복한 이유는 알파처럼 어려운 글을 읽고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알파에 의해 엡실론이 존재되고 엡실론에 의해 알파가 존재된다. 만인이 만인의 소유인 사회. 그것이 바로 '멋진 신세계'이다.

          

'멋진 신세계'에는 좋은 것만 있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고 균등하고 행복하다. 이 곳 사람들은 가장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쾌락을 즐길 수 있다. 마음대로 연애할 수 있고 성관계를 할 수 있으며 촉감 영화 등과 같은 수단으로 마음껏 느낄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다른 방법이 굳이 필요가 없다. 정신적인 고통도 없다. 그들에게는 거의 만능 수준인 '소마'가 있다. 소마 몇 알이면 아무리 번뇌에 휩싸인 상태였더라도 금방 편안해지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유영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지고 안정된 세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읽기 어려운 소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읽고 싶은 오기가 생기고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필자가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는 도중에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은 <멋진 신세계>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문체나 장면 묘사하는 방식 등이 어려워서 이해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결말로 갈수록 많은 사색과 담론의 여지를 주는 훌륭한 소설이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 버나드와 레니나가 말파이스로 떠나기 전의 이야기인 소설의 약 5장까지는 좀 지루하다. 왜냐하면 필자가 위에 4 문단에 걸쳐서 서술해놓은 것들을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요약에도 빠진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즉, 5장까지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멋진 신세계가 어떤 곳이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지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좀 지루하다. 하지만 5장까지만 버티면 그다음부터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멋진 신세계>는 결국 야만인 존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존의 자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필자는 존의 자살이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문명인의 편을 들지도 않고 야만인의 편을 들지도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둘 중에 선과 악을 지정해야 했다면 존이 런던의 생활에 적응하거나 말파이스로 돌아가는 결말이 더 적합하다. 문명국의 사람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야만인도 아닌 존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이다. 그런 존이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음으로써 저자는 독자에게 '당신이 만약 존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런던과 말파이스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라고 질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의 자살은 또한 존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린다의 말을 듣고 문명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자란 존은 처음 보는 런던의 모습에 신기해하지만 곧 자신이 믿어왔던 것과 너무 다른 과학기술의 세계에 실망하고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는 만들어지고 강요된 행복과 안정보다 참된 위험, 고통으로 인한 값진 자유와 선을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삶이 문명국과 단절하고 외딴 등대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순수해지고 선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샌가 문명국의 편한 삶과 안정에 자신도 모르게 취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것은 필자만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장대를 깎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등대에서의 편안한 삶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흡족함을 느낀다고 묘사한다는 점에서 필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고통에 자신을 내던지며 자신을 구원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문명국에서는 유희 거리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필자가 존이라면 너무나 모욕적인 동시에 허탈했을 듯하다. 그래서 존은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진정으로 구원받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존을 데려온 직후 급변한 버나드 마르크스의 태도이다. 말파이스에서 린다와 존을 데려오고 국장을 쫓아낸 후 존은 스타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나드를 통해서만 존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버나드도 스타가 된다. 본래 버나드는 알파지만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나서 다른 계급에게까지도 열등감을 느끼고 알파 집단 내에서도 잘 못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버나드는 주어진 방식대로의 행복만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사색했다. 즉, 문명국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안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타가 되자마자 버나드의 태도가 달라진다. 중요한 인물이 되고 대접을 받으니까 그는 순식간에 그간 못마땅하게 여겼던 문명국과 완전히 타협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자신의 입지 또한 고집했다. 하지만 이유가 기존 버나드라면 하지 않았을 한심한 생각이다. 그가 원래 자신의 입지를 고집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더 중요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존이 더 이상 버나드에게 협조하지 않자 버나드는 예전보다도 더 찌질하고 별 볼일 없는 모습으로 통제관에게 매달린다. 버나드의 변화를 쉽게 말하면 '쉽게 얻은 권력으로 인한 몰락'이다. 버나드 한 사람의 '쉽게 얻은 권력으로 인한 몰락'이 문명국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결국 만들어진 행복, 노력 없이 쉽게 얻은 행복이 주는 쾌락은 그 정도뿐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멋진 신세계'는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가 이미 전체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증명했고, 설사 소설 같은 국가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자원이나 환경,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절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다르다. 옮긴이가 말하듯 시험관 아기, 태아 냉동 보관 기술, DNA 변형 기술 등은 우리로 하여금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인간의 맞춤형 생산 및 대량 생산을 상상하게 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인간적인 이상향일까? 그리고 행복의 조건이 과연 무조건적인 안정일까? 이런 것들이 소설이 요구하는 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필자가 소설 속 런던 같은 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아도 가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선택할지 말지를 생각해보았다. 취업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미래 걱정도 할 필요 없이 그냥 연애나 하면서 본능에만 충실하게 지내는 생활은 너무나도 힘든 지금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솔깃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할 수는 없다. 그냥 매일매일 소설 속의 레니나처럼 지내면 헬름홀츠처럼 무언가 더 나은 것을 갈망할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는 생각의 고리의 순환을 딱 끊고 이분법적으로 살 수 있다, 없다를 결정하는 건 힘들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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