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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Mar 14. 2020

소박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미래의 어느 날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보통 SF장르에서는 외계인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갈등, 기계의 등장에 따른 인간성에 대한 고뇌, 우주 비행사로서 겪는 외로움, 지구 멸망 등등 심각하고 어두운 소재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나오는 7개의 단편소설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키워드는 ‘아기자기함’이었다. 소설들이 제3자가 보기엔 별 볼일 없는 개인들이 어느 날 겪은 평범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개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필자가 별 볼일 없다고 표현한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소수자들이기 때문이다. 48세의 동양인 비혼모, 170세의 노인, 임신으로 인해 세계에서 분리되었던 어머니, 유전병에 걸렸던 천재 과학자...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에게 와닿고 심각하고 어두운 소재들보다 다양한 감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7개의 소설 중 필자가 특별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소설 3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소설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보자.

스펙트럼

소설 속의 주인공 희진은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40년간 실종된다. 그동안 그녀는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인류 최초로 외계 지성 생명체와 조우한다. 인간과 매우 닮은 외계인들 중 한 명인 ‘루이’는 희진을 공격하려던 다른 이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루이의 동굴에서 희진은 조난당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지만 나름대로 그들에 대해 연구한다. 


루이는 수명이 3~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루이의 영혼은 그 이후의 루이에게 이어지고 새로운 루이는 이전 루이가 그려놓은 그림을 통해 희진에 대해 파악하고 관계를 지속한다. 그 과정에서 희진과 루이는 서로 말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언어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희진은 순수하게 감각으로 루이에 대해 알아가고 그들이 색채와 그림을 통한 소통한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시간이 흘러 극적으로 탈출 셔틀의 신호를 수신하여 희진은 지구로 돌아가 자신이 최초의 조우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행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허언증 환자로 취급된다. 하지만 희진은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여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재미있었던 소설은 아니지만 <스펙트럼>은 필자에게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다. 외계인과의 만남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외계인은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거나 인간과 적대하는 관계로 자주 묘사된다. 즉, 3자의 시선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특정한 관계를 설정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스펙트럼>은 순수하게 희진이라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감각적’으로 외계인을 묘사하고 있다. 필자는 7개의 소설 중 <스펙트럼>에서 가장 많은 상상과 이입을 시도했다. 상상을 통해 루이가 그리는 그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비언어적 표현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장면의 분위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독자에게도 소설의 전개가 감각적으로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공생 가설

이 소설은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전개된다. 처음에는 ‘류드밀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행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사람들은 그 행성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류드밀라의 행성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 그녀가 사망한 후 천문대에서는 어느 날 관측된 어떤 행성의 데이터가 류드밀라의 행성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시각 수빈과 한나는 이상한 실험 결과에 놀란다. 그 둘은 신생아들의 울음을 통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는데, 아기들이 대단히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데이터 분석과 실험을 계속한 결과 아기들의 뇌 속에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외계인들이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외계인들은 7세 전후에 인간의 뇌에 머무르면서 인간들에게 감정과 도덕, 사랑, 이타심과 같은 인간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외계에서 왔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류드밀라의 행성에서 온 자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외계인들과 공생한 류드밀라가 그리는 행성에 격하게 반응한 것이다. 류드밀라는 성인이 되기 전 그들을 인지하고 평생 함께 공생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외계인이 인간의 탄생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는 스토리가 현실이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부정할까.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으로써 가졌던 프라이드가 날아가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인간과 외계인이 알고 보니 오랫동안 공생하고 있다는 스토리는 어떨까. 같은 사람끼리도 피부색, 인종,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인간이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할지 의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이거나 수직적이지 않고 소설처럼 수평적인 작품도 나오면 좋겠다. 또는 외계인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소수자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품도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인간과 외계인의 관계를 다른 관점으로 사유할 여지가 많이 생길 것이다. 외계의 존재에 대해 좀 더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다양한 사람, 더 나아가 생물과의 공생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소설의 주인공인 안나는 170세의 노인으로 한때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소설의 배경은 우주 개척 시대로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빠르게 다른 은하로 이동하고 이동한 곳의 행성들을 개척하는 시대이다. 우주 개척 시대의 서막을 연 기술은 워프 항법으로 우주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은하로 도달하는 기술이었다. 그동안 인간은 냉동 인간 기술로 잠들어 있게 된다. 안나는 냉동 인간 기술을 연구하던 과학자였다. 그 당시 안나의 남편과 아들은 슬렌포니아라는 행성으로 이주를 결심했고, 안나는 연구를 마무리한 후 뒤따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고차원 웜홀 통로의 존재가 알려졌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웜홀처럼 우주에 공간과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구멍이었다. 이 기술로 인해 워프 항법은 쓸모가 없어지고 결국 안나가 연구 발표를 하는 날이 슬렌포니아로 가는 비행선이 마지막으로 출항하는 날이 된다. 결국 안나는 슬렌포니아로 가지 못했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냉동 인간 기술을 이용해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며 하염없이 슬렌포니아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노인이 된다. 이미 폐쇄된 정거장에서 언젠가 우주선이 출항하기를 기다리면서. 정거장을 철거하러 온 남자는 안나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안나를 강제로 연행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안나는 개인 셔틀로 도망쳤고, 결국 혼자 슬렌포니아 방향으로 정거장을 떠난다. 먼 훗날 죽어서라도 슬렌포니아에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이 소설집의 제목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7개의 소설들 중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작품으로 가장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을 것인지에 대한 담론의 여지를 남긴다. 그것은 기술이 발전해도 반드시 그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이다. 안나는 어차피 자신이 살아서 도착할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또한 알고 있었던 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개발한 냉동 인간 기술도 사실은 인간의 뇌세포를 파괴한다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다. 우주 개척 시대를 열었던 워프 항법 역시 웜홀 이동에 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리스크가 있었고, 완벽해 보이는 웜홀 이동 기술 역시 우주에 이미 존재하는 통로로 밖에 이동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웜홀 이동 기술의 이러한 단점 때문에, 그리고 더 이상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여 워프 항법을 이용하지 않는 연방 정부 때문에 안나는 오히려 거리상으로는 더 가까운 슬렌포니아로 갈 수 없게 되었다. 한때 촉망받았던 과학자이자 누군가의 가족은 그렇게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안나의 마지막 항해는 죽음으로 마무리되겠지만, 그 시도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고 잊힌 것들에 대한 흔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잊혀간 사람들을 대표하여 희생한 것이다.      




SF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미래를 대입하게 한다. 만약 이 내용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완전히 미래인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디에서 있을 법한 사회 현상들에 배경만 미래로 설정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현재에도 누군가는 차별받고 있고, 소외받고 있고,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잊혀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미래와 현재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살아갈 평범한 청년들이 지속해야 할 가치는 기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고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 미래란 다양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공존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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