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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Aug 14. 2023

우리는 과거 누군가의 희망이었어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는 삶은 어떨까?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행동을 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 공부를 하여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좋은 대학에 가서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것이라는 기대 등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희망이다. 희망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우리가 삶에 거는 기대이다. 즉,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고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저히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는 듯한 상황에서 아주 작더라도 어떤 희망을 찾아내고 그 작은 희망을 위해 힘든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따금 엄청난 기적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지구 끝의 온실>은 멸망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았던 사람들과 훗날 그 사람들의 기억을 찾아내어 공유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2021년 출간된 <지구 끝의 온실>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관내분실> 등의 SF소설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의 설정은 21세기 중반 ‘더스트’라는 독성을 가진 안개로 멸망한 지구이다. 지구가 멸망하자 사람들은 더스트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돔 시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치열하게 돔 시티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당장 오늘의 생존도 담보할 수 없고 자원도 턱없이 부족해져 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약탈한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스토리는 총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더스트가 처음 발생하는 현장에 있었던 솔라리타 연구소의 사이보그 연구원 ‘레이첼’과 기계 정비사 ‘지수’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역시 더스트 시대의 사람이며 더스트에 완전 내성을 가진 ‘나오미’와 불완전 내성을 가진 ‘아마라’ 자매의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22세기에 더스트가 완전히 종식되어 문명이 재건된 상황에서 한국에 위치한 더스트생태연구센터 식물생태팀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아영’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각각 다른 이야기가 3개나 나오고 작가가 이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대로 제시해주지도 않지만 각각의 이야기와 이야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스바나라는 공통의 소재와 희망이라는 공통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구와 사람들 그리고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장 모스바나’의 주인공은 아영이다. 어느 날 아영은 폐허가 된 도시인 해월에서 이상 증식하는 ‘모스바나’라는 덩굴 식물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처음 보는 잡초가 증식하는 일은 이상하지만 간간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일이겠거니 생각하던 아영은 신경 쓰이는 보고를 받는다. 인간 형상은 아닌데 모스바나가 증식하고 있는 해월의 어느 곳에서 이상한 푸른빛이 목격되었다는 것이다. 보고를 받고 아영은 자신이 어린 시절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분명 그 기억의 대상은 처음 보는 덩굴 식물과 푸른빛이었다. 그리고 기억의 배경은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이희수라는 노인의 집이었다. 이 상황을 수상하게 여기며 모스바나를 연구하던 중 아영은 참고자료를 얻기 위해 모스바나와 푸른빛에 대한 질문을 올린 스트레인저 테일즈라는 괴담 커뮤니티에서 한 가지 정보를 얻는다. 모스바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였다. 수소문을 한 결과 아영은 더스트 시대에 모스바나를 약초로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랑가노의 마녀들이라고 불렸다는 아마라, 나오미 자매를 알게 된다. 그리고 노력 끝에 나오미를 만나게 된 아영은 모스바나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2장 프림 빌리지’의 주인공은 아마라, 나오미 자매이다. 더스트에 내성을 가진 자매를 실험하려 했던 랑카위 연구소를 탈출하여 폐허를 전전하며 떠돌던 자매는 마지막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말레이시아의 숲에서 프림 빌리지를 발견한다. 돔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곳의 더스트 농도는 낮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마을의 리더인 지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언덕 위 온실에 사는 식물학자 레이첼이 만든 작물들과 더스트 분해제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멸망한 세계와 동떨어진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자매는 이 놀라운 마을에 점차 스며든다. 하지만 결국 내부 분열로 파국을 맞이한 다른 마을과 돔 시티처럼 프림 빌리지에도 침략자들이 나타났고 지수는 자매를 비롯한 마을의 사람들에게 미리 준비한 식물을 나누어주며 멀리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다른 곳에서 식물들을 심고 새로운 숲과 또 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기를 바라며...


‘3장 지구 끝의 온실’의 나오미에게 진실을 전해 들은 아영과 지수, 레이첼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영은 모스바나에 대한 진실을 들은 후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어렸을 적 베일에 싸인 노인이었던 이희수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아영은 이희수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그가 4년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요양원에 도달한다.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희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상심한 아영에게 직원은 이희수의 생전 기억의 일부를 담은 메모리 칩을 건네준다. 그에게 가족이 없어서 폐기 처분될 예정이었지만 아영은 이희수가 누군가 이 기억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칩을 남겼다고 생각하여 칩을 받아 든다. 칩에 담긴 이야기는 이희수의 젊었을 적 이야기, 지수와 그가 레이첼과 함께 건설했던 프림 빌리지의 이야기였다.     


김초엽의 첫 장편소설은 현재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이상 기후들을 고려해 볼 때 21세기 중반에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을 법한 더스트에 관한 이야기와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식물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식물을 연구했던 식물학자, 인간의 참혹하고 악한 본성을 수도 없이 봤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이상에 가까운 공동체를 만들어낸 기계 정비사,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랑의 이야기. 역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실험하려 했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사무치게 경험했지만 결국 한평생 사람들을 위해 살아갔던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에 그 이야기들을 되살려낸 한 평범한 과학자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더스트 시대를 살았던 아마라, 나오미 자매와 지수, 레이첼의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두 이야기 못지않게 아영의 이야기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자매에 의해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아영과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약간의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은 더스트 시대에 이기적이고 무자비하게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였던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그 사실은 평생 현재 재건된 문명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힐 예정이었다. 아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있고 지금 더스트가 종식되어 문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익히 생각해 왔던 그런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 조그마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던 사람들 덕분이고 그들이 일으킨 기적 덕분이었다. 그리고 아영이 밝혀낸 자매와 지수, 레이첼의 이야기는 점점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의 우리들에게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지금 존재할 수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혹시라도 다가올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그 외에도 다른 세대의 인물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나누는 대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은 식물, 어쩌면 하찮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랑의 이야기들은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또한 더스트와 모스바나에 대한 사실적인 서술은 마치 멀지 않은 미래에 정말로 소설 속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작가가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등장인물의 말들과 소설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작가의 말에 대해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런 폐허를 걷다 보면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어. 타인의 무덤을 파헤쳐서 이곳의 삶을 쌓아 올리고 있다는 생각. 더스트 폴 이후로 세상은 예전보다도 더 모순으로 가득해진 것 같아. - 186p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 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385p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 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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