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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Jul 04. 2023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전설의 속편 - 하

오디세이 시리즈의 두번째,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리뷰

...기억의 샘들이 틀어져 솟아나왔다. 제어된 회상 속에서 그는 과거를 다시 살았고, 어린 시절에 이르기까지 역순으로 훅 떠밀려 가는 과정에 그의 지식과 경험이 추출되었다. 하지만 추출되어 나갔어도 상실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내 온 한 순간 한 순간의 자아들 모두가, 그의 인생의 순간들 전부가 이송되어 한층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설사 한 명의 데이비드 보먼이 존재를 그친다 해도 물질의 필요를 초월한 또 한 명은 영원불멸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배아 상태에 있는 신이었다. 아직 탄생할 준비가 되지 않은....                    -244p


과거 데이비드 보먼이었던 이 존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하 2001)의 목성 탐사 작전의 참가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TMA-2라고 불리던 검은 석판을 맞이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당시 보먼이 석판을 조사하러 내려갔을 때 스타게이트가 열렸고 보먼은 한없이 그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도착한 곳은 호텔처럼 보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고 그는 잠이 들었다. 그러자 시간이 역행하고 그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로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먼을 인도한 그들과 같게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변화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다른 존재가 되었지만 그는 아직 보먼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변화를 거친 후 처음 향한 곳은 예전 그의 여자친구 베티의 집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 일단 도착하기는 했지만 그는 더이상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그녀와 직접 소통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마침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 특보 프로그램으로 목성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빛이 지구를 향해 날아갔다는 레오노프 호의 경고와 무언가가 위성 궤도의 핵폭탄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터뜨렸는데, 아무도 본인의 것이라고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모두 그가 지금의 존재로 변화하면서 일으킨 일이었다.


그 후 디스커버리 호와 관련된 옛날 BBC인터뷰 영상에 데이비드 보먼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tv로 수신되는 전파를 탈취하여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tv를 보고 있던 베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음향과 화면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속 보먼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보던 인터뷰 영상 속 나이 든 보먼이 아니라 소년 시절의 보먼이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3차원 공간의 베티와 잠깐 대화하는 일에 성공했다.


데이비드 보먼의 어머니 제시 보먼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이 흘러가던 중 간호사는 제시가 있는 병실의 카메라로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제시가 보청기에 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리고 침대 옆 책상에 놓여있던 빗이 공중으로 쑥 떠오르더니 제시의 머리를 빗었다. 놀란 간호사가 제시의 방에 방문했을 때 그녀는 미소지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제시는 과거에 10살 먹은 그의 아들이 자신의 머리를 빗질해주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즉, 과거 데이비드 보먼이었던 그 존재가 3차원 세계의 물질을 직접 조작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한편 목성에서는 보먼을 지금의 존재로 만든 그들이 또 다른 실험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보먼도 그들과 비슷한 존재가 되었기에 그 실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실험이 성공하면 현재 목성에 머물고 있는 과거 그의 동료들이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아직 옛날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그는 옛 동료들을 구하고 싶었다. 결국 그들로부터 동료들과 잠시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단 조건은 행동을 조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료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디스커버리 호와 무사히 랑데부하고, HAL도 무사히 되살리고, 이제 검은 석판을 조사하다가 몇 달 후 지구로 돌아갈 일만 남은 시점에서 헤이우드는 더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인기가 없으면서 힘들기만 한 디스커버리 호 불침번 업무를 자처했다. 레오노프 호 탑승자들의 운명을 바꾼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료한 헤이우드에게 HAL이 갑자기 출처가 없는 메시지를 전했다. 평소대로라면 안 자고 있는 누가 장난쳤겠거니 생각하고 넘기려는데 내용이 이상했다. 발신자는 자신이 과거 데이비드 보먼이었고 15일 안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헤이우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디스커버리 호를 채우고 있던 먼지들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통솔되 듯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더니 데이비드 보먼의 형상을 만든 것이었다. 헤이우드는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 형상은 시간이 없었고 15일 안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한 번 더 경고한 후 사라졌다.


대원들은 당연히 헤이우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믿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연료가 부족해서 15일 안에 이곳을 떠나는 일도 불가능했다. 물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 가지 대안이 나왔다. 레오노프 호와 결합되어 있는 디스커버리 호를 일종의 추진기로 사용하여 레오노프 호를 가속하는 방안이었다. 흥미로운 생각이었지만 디스커버리 호를 버리면서까지 일찍 출발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또 하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2km가 넘는 그 검은 석판이...사라졌다.


이 일로 인해 모든 대원들이 헤이우드의 말을 믿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결국 대원들은 디스커버리 호를 추진기로 사용하는 방안에 동의했고 지구로 떠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다행히 그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HAL의 지휘 아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출발 10분 전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검은 석판과 크기와 형태가 완전히 동일한 물체가 목성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있었다. 마치 폰 노이만 기계처럼 말이다. 저 희귀한 광경을 조사하느냐 마냐에 대해 HAL과 대원들간의 작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HAL은 대원들의 뜻을 따랐고 점화에 성공했다.


목성이 완전히 폭발했다. 흔히 초신성 폭발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번식하던 검은 석판이 목성 폭발을 위한 기폭제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태양이 탄생했다. 또한 폭발에 휘말리기 직전 디스커버리 호에서 전파 메시지가 지구를 향해 전송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모든 행성들은 에우로파를 제외하고는 당신들 것입니다. 에우로파에는 착륙을 시도하지 말길.

지구를 비추는 태양이 2개가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루시퍼는 보름달보다 50배 더 밝았다. 루시퍼는 지구의 하늘을 완전히 바꾸었다. 몇 달씩 밤이 사라졌고 전력이 굉장히 절약되었으며 실외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훨씬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루시퍼는 생태계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왜 하필 목성이 희생된 것일까? 분명 이 질문에 대해 답이 있을 터이지만 인류는 그 답을 알 날까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조차 초신성 폭발을 하고 새로운 태양이 생기는 정도의 규모를 가진 작품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이하 2010)의 결말은 매우 파격적이다. 너무 파격적인 나머지 소설을 다 읽은 후 뭔가 벙 찌고 뜬금없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동시에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변화한 지구의 인간들은 어떻게 변화할지, 목성을 폭발시키고 보먼을 진화시킨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지...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2010이 2001이 보여준 경이롭고 신비하고 무서운 느낌을 이어가지 못하고 평범한 소설로 변해버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2001이 워낙 혁명적이었고 필자도 2001 특유의 느낌이 좋았기에 2010도 기대를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왜 2001 이후 4개의 속편이 2001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의 시간대는 50년을 뛰어넘은 2061년이다. 새로운 태양이 탄생하고 50년이 지난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를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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