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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06. 2019

딸과의 내기

내기는 유효하다

아빠는 꿈이 뭐야

4년 전 여름.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아이가 물었다. 자기 꿈은 <바바파파>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며 마흔 살 아빠의 꿈은 무어냐고 말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더듬거리며 아빠도 작가라고 말해주었다. 누가 먼저 작가가 되는지 ‘내기’까지 하고 말이다.  


왜 꿈을 작가라고 말했을까?


고민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왜 꿈을 작가라고 말했을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표현하는 걸 동경했던 것이 딸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반사적으로 나온 것 같다. 사실 성인이 되어서는 책과 글쓰기보다는 친구와 술을 더 좋아했으면서 말이다. 서글픈 자책과 함께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만 하는 건 아닐까?’란 의문에 마음을 다잡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1년 조금 넘게 진행된 나만의 책 읽기는 그저 좋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더 길게 가져가지 않았고, 자투리 시간에도 책을 읽고 저녁 술자리의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다. 하지만 곧 특정분야의 책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추천한 대로 동네 도서관의 독서 동아리를 찾고 숭례문학당의 독서프로그램을 즐기기 시작했다. 독서 동아리와 숭례문학당을 통해 혼자라면 절대 손을 뻗지 않았을 고전이나 소설을 읽을 수 있었고, 평소라면 얘기 나눌 일 없는 5~60대 누님과 이모님, 부동산 사장님, 취준생, 갓 제대한 복학생, 새댁과 의견을 나누며 내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윤택하고 나답게 사는 방법이란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읽고 쓰기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글쓰기의 최전선≫


10년이 넘게 해오던 업무도 홍보 매체를 운영하며 펜션지기, 귀농인, 사회복지사, 유소년 축구 코치 등 다양한 시민의 글을 보고 편집하는 일이었다. 특히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시민기자들을 돕기 위해 글쓰기 관련 책이나 강의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뉴스에 가입해 시민기자로 글을 써 보고, 블로그에 끄적여도 보았다.


이제 딸아이가 5학년이 되어 30cm가 넘게 자라는 동안 아빠의 머리숱은 숭숭 빠졌다. 열심히 읽고, 써왔다. 매주 월요일 독서모임도 빠짐없이 나가고 독서리더 양성과정에도 참여했다. 100일 글쓰기, 30일 칼럼 요약하기 등 다양한 여러 글쓰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작년엔 딸아이와 일상의 작가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주관하는 일상의 작가는 가족이 일상, 감정, 생각 등을 상상력과 문학적 기법을 통해 글로써 창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딸아이와 내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누가 내기에 이기기보다 함께 작가가 된 좋은 해결책이 된 셈이다.

 

2018년 가을 매주 토요일 일상의 작가 프로그램에 딸과 함께 참여했다


몇 년 전 박재동 화백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이 꿈꾸게 하지 말고 바로 지금 하게 하라'는 내용의 요지였다. 만화가가 꿈인 아이에게 무얼 해주지 고민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림을 묶어 책을 만들어주거나 온라인에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낸 과정이 딸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즐거운 경험과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일상의 작가 책이 나왔다고 내기가 끝나는 건 아니다. 여럿이 함께 내는 문집이 아닌 진짜 작가 타이틀을 건 내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내기한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기면 뭘 하기로 했는지는 정하지 않은 걸 깨달았다. 둘 다 뭘 걸진 않았으니... 게다가 아이의 꿈은 작가에서 요리사, 크리에이터, 일러스트레이터 등으로 여러 개가 추가되었다. 내기에 이기면 무얼 할지 안 정했으면 어때? 아이도 한 가지 꿈만 가질 필요도 없다. 여하튼 아빠의 꿈이 현재 진행형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기'는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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