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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보이 Feb 17. 2018

[파타고니아] 사명, 패션이 되다

브랜드 파타고니아

작년에 구입한 파타고니아 레트로 자켓. 테디베어 컬러라 불린다. 집에 있는 19금 곰 테드에게 입혀보았다. 테드와 자켓 모두 일본에서 데려왔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몇년 전 국내 잡지 '사람과 산'과 인터뷰했다.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만남.
[파타고니아 영상] 이 남자가 파타고니아 자켓의 가성비를 계산하는 법.
[파타고니아 강남 매장] 이본 쉬나드는 주한 미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군대 체질은 아니었다. 업무를 소홀히 해서 영창을 갈뻔 했다고. 한국에서도 열심히 산을 탔다.
[파타고니아 강남 매장] 매장 전체가 사명. 사명. 사명이다. 자세히 읽어보라고 의자까지 가져다 놓았다.
[파타고니아 강남 매장] 매장 안에서 제품을 수선해준다. 파타고니아 제품 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옷도 고쳐준다.
역사상 가장 대범한 캠페인. 모두가 쇼핑에 미쳐있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우리 자켓을 사지 말라고 광고했다. 이게 기업이 할 소리인가 했는데 더 많은 파타고니아 제품이 팔려나갔다.

학창시절, 나의 런웨이 장소는 교회 예배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교복을 벗는 날이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패션쇼를 준비했다. 성경에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양을 본다고 했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주목 받고 싶었다. 스타일이 절실했다. 유행을 따랐다. 지금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사진들이 남았다.


결국 답은 '클래식'이었다. 복식의 룰을 충실히 따르는 남자의 '갑옷들'. 세월을 이겨낸 ‘작품들’. 소버린 하우스, 카모시타에서부터 인코텍스와 알덴, 크로켓앤존스에 이르기까지. 취향이 정립되자 소비는 확신이 되었다. 진리가 ‘쇼핑’을 자유케 하리라. ‘올 시즌 유행’이라는 말들은 우습게 들렸다.


파타고니아에 마음을 빼앗긴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아웃도어 계의 클래식이었다. 반세기를 헤쳐온 브랜드였다. 파타고니아에 '필연성 없는 파격'은 없었다. 제품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갑은 쉽게 열렸다. 적어도 10년 이상을 함께 할 제품이었다. 제대로 입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는 언제나 값어치를 했다.


왜 존재하는가

1973년, 이본 쉬나라는 클라이머가 파타고니아를 세웠다. 등산장비를 생산하는 ‘쉬나드 장비회사’에 이은 두번째 창업이었다. 산에 미친 남자였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절벽에 매달려 지냈다. 주한미군으로 복무 할 때는 북한산에 자신의 이름을 딴 등산로를 개척할 정도였다. (쉬나드 A코스, 쉬나드 B코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이본은 업에 대한 관점이 남달랐다. 영리 추구는 수단이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지구에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건강한 지구가 없다면, 주주는 물론 고객도 없으며, 직원 또한 없을 터' 였다. 사업은 사명이 되었다.


사이먼 사이넥은 저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에서 말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보다 중요한건 ‘왜’ 하는지라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기업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애플은 남다른 생각을 위해 존재한다.(Think different) 탐스는 빈민국의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누어주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페이스북의 목표는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이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건 기본이다. 전체 매출액의 1%를 환경운동 단체에 지원한다. '자연에 내는 세금'이라는 취지이다.

사명감이 지나친 나머지 가끔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파타고니아 자켓을 사지 말고, 고쳐 입으라고 광고한다. 아버지의 파타고니아를 아들에게 물려주라고 권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하등 도움 될 것이 없는 내용이다. 그럴수록 더 많은 파타고니아가 팔려나간다. 역설이다. 브랜드의 진정성, 대범함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신뢰는 깊어진다. 파타고니아식 브랜딩이다.


무심한 멋

누가 파타고니아를 입을까. 왜 입을까. 파타고니아의 고객은 잘 모아지지 않는다. 그만큼 스팩트럼이 넓다. 뉴욕의 힙스터도 제주의 이효리도 즐겨 입는다. 한비야에게도 어울리고, 진중권이 입어도 멋스러울 것 같다.

더글러스 홀트와 더글러스 캐머런의 저서 ‘컬트가 되라’에는 파타고니아 고객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파타고니아가 지원하는 환경단체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정치적 지형도에서 ‘극좌파’로 분류되는 단체들이다. 그런데 수많은 ‘공화당원’들도 파타고니아의 단골 고객이다. 즉, 특정 부류만 파타고니아를 구매하지 않는다. 환경에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 프리우스를 타거나 허머를 타거나 모두가 파타고니아를 좋아한다.

패션은 사람의 정체성이다. (What you wear is who you are) 샤넬의 트위드 자켓을 입으면 품위 있는 귀부인이 다. 미국의 풍요로움을 동경하는 자는 랄프로렌을, 시칠리아식 섹시함을 얻고자 하면  돌체앤가바나를 입으면 된다.  

파타고니아는 ‘무심한 멋'일 것이다.  투박하고, 어찌 보면 지루하다. 그런데 그 안에 고민의 흔적이 있다. 형태와 기능에는 명분이 있다. 무엇보다 파타고니아의 사명이 제품을 두른다.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패션이 된다. 패션에 신경을 쓴 것 같지는 않으면서도 패셔너블 해지는 효과를 낸다. 뭘 좀 아는 사람이 된다. 사명이 패션이 되는 순간이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CSR)에 힘쓴다. 교육기관을 짓고, 음악회를 개최하고, 자영업자에게 자동차를 선물한다. 감동적인 광고를 만든다. 정작 소비자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억지스럽다. 왼손이 하는 일을 저렇게 오른손에게 알려야 하나. 그마저도 본업(本業)과 전혀 무관한 활동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파타고니아는 조용히 권한다. 사회적 기업이 되라고.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이다. 돈 버는 일과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일을 함께 추구한다. 사회적 기업에 '성장을 위한 성장', '다름을 위한 다름' 따위는 없다. ‘올해 목표는 20% 성장입니다’ 같은 헛소리도 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가치'를 만들어 갈 뿐이다. 이것이 쌓여 구매의 준거가 된다. 수익은 따라 온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이본 아쉬드가 지은 책의 제목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다. 파도가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 서핑을 하면 된다.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무엇을 더 기대하랴.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이다. 이를 위해 자연에 책임감을 지닌다. 필사적으로 보호한다. 사람들은 파타고니아의 태도에 매혹된다. 이들의 가치관을 입는다. 티 내지 않고,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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