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배달의 민족
“최근에 본 광고 중에 기억나는 거 있어?”
직업병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묻는다. 갑작스런 질문에 벗들은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다. 반응에는 일관성이 있다. 철 지난 광고 몇 편이 등장한다. 모델은 생각나는데 정작 제품은 모르겠단다.(전지현 나오는 그 광고가 뭐였지?) 솔직히 생각나는 광고가 없단다. “최근에 나온 이 광고가 굉장히 인상적이더라." 라는 식의 '준비된 답변'은 없다. 그러려니 한다. 나의 다섯 살 짜리 딸도 광고 나오면 채널 돌리라고 하는데 뭐.
1:3000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아니다. 광고 한 편이 소비자에게 닿기까지의 경쟁률이다. 오늘날 한 개인은 하루 평균 3,000개의 광고에 노출된단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광고판이다. TV, 라디오, 잡지, 신문, 네이버, 유튜브, 스마트폰, 지하철, 옥외광고판, 드라마 PPL…
이쯤 되면 특정 광고를 기억하는 건 기적에 가깝다. 친구들의 ‘노답’이 절로 이해가 된다. 전설적인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밤중에 지나간 배’ 라고 말했다. 밤에 배(광고)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봤다는 사람이 없다. 광고주나 광고인 입장에서는 땅을 칠 일이다.
배달의 민족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희한한 광고였다. 고구려 벽화 속에서 배우 류승룡이 철가방을 들고 말을 탔다. 밑도 끝도 없이 우리가 ‘배달의 민족’ 이라고 외쳤다. 이게 전부였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사람들이 무려 ‘광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3000의 경쟁률을 뚫은 광고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 광고는 또렷이 기억했다. 광고계의 상이라는 상은 모두 휩쓸었다. 이후 이 브랜드의 행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입 달린 자라면 이 브랜드가 벌이는 희한한 이벤트들을 소문내기 바빴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브랜드는 전설이 되었다.
전단지 때문에
장난 같은 시작이었다. 그 놈의 음식점 전단지가 문제였다. 이 종이 쪼가리로는 다른 사람의 ‘리뷰’와 ‘평가’를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매체’ 였다. 음식점 사장 입장에서도 찜찜했다. 수천 장의 전단지를 뿌려도 효과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비효율의 극치였다. 배달앱을 만들었다. 거창한 비전이나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토이 프로젝트’였다. 과정도 험블(humble)했다. 김봉진 대표와 직원들이 거리를 쏘다니며 전단지를 주웠다. 업계의 포식자 네이버가 이런 ‘노가다’까지 따라 하지는 못할 터였다. (아니, 안 할 터였다…) 불확실한 ‘감’에 의존하던 영역에 ‘데이터’가 들어왔다. 우주에 인공위성을 쏘아 보내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3,000만명 이상이 다운 받은 앱이 되었다. 배달의 민족이 등장한 후 가정과 회사에서 전단지가 사라졌다.
버리다
이미 포화 시장이었다. 두 사람만 모여도 ‘앱'을 만들자는 말이 오갔다. 배달의 민족이 등장했을 때에도 비슷한 앱이 40개나 있었다. 이후에는 100개까지 늘어났다. 완벽한 레드오션이었다. 조금 더 나은(Better) 것으로는 눈에 띌 수조차 없었다. 완벽히 다른(Different) 그 무엇을 주어야 했다. 배민의 답은 ‘버리기’였다.
‘핵심 타겟’ 외에는 버렸다. 회사의 ‘막내들’에 올인 했다. 이들이 배달음식을 시키는 ‘실세’였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이 될 터였다. 재미있는 건 ‘버린 카드’ 였던 다른 연령대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이런 십육기가’ 같은 USB에 ‘부장님’들도 빵 터졌다. 수십 년 전 ‘펩시 제너레이션’ 캠페인에 비견될 만한 현상이었다. 당시 펩시는 ‘마이클 잭슨’ 같은 ‘젊은 세대’가 펩시를 마신다고 광고 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펩시를 마시게 되었다. 김봉진 대표의 말처럼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아무도 만족할 수 없고. 단 한 사람을 제대로 만족시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욕심을 버렸다. 김봉진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의 경영자이다. 멋스럽고 간지나는 브랜드들을 많이 접했다. 그도 애플이나 나이키처럼 때깔 나는 ‘A급’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욕심이었다. 내려놓았다. 업의 특성상 배달의 민족에게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 ‘B급 문화’ 였다. 무한도전의 박명수 같은 ‘만만한 동네형’으로 다가갔다. 유재석 급의 인기를 얻었다.
수익마저 버렸다. 가맹점주에게 받는 결제 수수료를 포기했다. 한때 배달의 민족 수익의 30%를 차지하는 수입원이었다. ‘머리’로 생각하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배달 주문을 많이 받는 점주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점주는 적게 내면 되는 지극히 합리적인 수익 구조였다. 그런데 배민의 고객의 입장에 서보면 ‘정서적으로’ 찜찜한 문제였다. 음식점 사장님을 착취 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과감히 없앴다. 회사가 휘청였다. 6개월을 버티자 다시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았다.
놀이공원
“브랜드는 놀이공원이다. 상품은 놀다가 사가는 기념품이다.”
광고대행사 Silverstein & Partners을 이끄는 제프 굿비의 말이다. 요즘 가장 핫한 놀이공원은 배달의 민족이다. B급 감성의 놀이기구들로 가득찬 코믹한 놀이공원이다. ‘배민신춘문예’, ‘치믈리에 자격시험’ 같은 희한한 이벤트들, 못생겼지만 정감 있는 배민의 무료 폰트 ‘한나체’ ‘주아체’, 배민문방구에서 판매하는 ‘다 때가 있다’ 때수건… 경쟁브랜드들이 할인되는 요일이나 쿠폰을 내세울때, 배달의 민족은 놀이기구를 채운다. 고객들은 배달의 민족의 ‘문화’를 경험한다. 팬이 되어 자연스레 기념품을 집는다. 배달의 민족의 시장 점유율은 60%에 다다른다.
무욕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의 명곡 ‘가시나무’의 가사는 이 시대 브랜드들의 처지가 아닐까. 당신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내 속에 너무 많아. 당신들 모두가 나를 좋아하면 좋겠어. 정작 소비자들이 머물 자리는 없다.
그러고보면 배달의 민족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고객들에게 쉴 자리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욕심만 버리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노자의 도덕경이다. "욕심이 없으면 비밀스러움을 본다." 무욕이관기묘(無欲以觀其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