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ss] 본능적으로 심플
브랜드 토스
애플 대학의 커리큘럼이 공개되었다. 애플의 직원들은 피카소의 1945년작 '황소'를 보면서 '심플함'을 배운다.
토스를 만든 이승건 대표는 억대 연봉을 받는 치과의사였다.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사업을 시작했다. 고난의 서막이었다. 8개의 사업을 말아막었다.
토스식 심플함은 '본능'이 기준이다. 배우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작 페이지부터 본능적이다. 처음 써보는 사람도 아주 쉽게 송금할 수 있다.
은행마다 토스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토스와 비슷한 서비스들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아직까지 토스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상대는 없다. 토스의 점유율은 70프로에 이른다
이제 토스는 간편 송금에만 머물지 않는다. 금융의 전 영역을 혁신하는 중이다. 토스의 무기는 변하지 않는다. 심플함이다.애플은 늘 감춘다. 내부를 드러내는 일에 인색하다. 많은 이들이 애플의 담장을 배회한다. 보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 간의 수 싸움은 치열하다.
2014년에 보도된 뉴욕타임즈 기사는 보고 싶은 자들의 승리였다.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연수원’이 공개되었다. ‘애플 대학’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애플 대학을 경험한 직원 셋이 뉴욕타임즈의 취재에 응했다. 익명성 보장이 전제였다. 따끈따끈한 특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화제가 된 건 커리큘럼이었다. 저 위대한 애플은 직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픽사 출신의 랜디넬슨 강사는 ‘애플에서의 소통법’을 맡았다. 피카소의 1945년 작품인 ‘황소’(Bull)를 꺼내 들었다. 11장으로 이루어진 석판화 연작에서 황소의 모습은 단계적으로 생략된다. 마지막엔 극도로 정제된 실루엣만이 남는다.“이것이 애플식 단순함입니다.” 직원을 교육시키는 방식마저 애플스러웠다.
미친듯이 심플
“스티브 잡스에게 심플함은 종교였다. 그리고 무기였다.”
‘미친듯이 심플’을 쓴 켄시걸의 증언이다. 심플함을 위해 스티브 잡스는 20가지가 넘는 제품군을 4가지로 축소했다. 아이폰에 3개의 버튼을 넣자는 의견을 뿌리쳤다.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없앴다. 훌륭한 기술을 나열하는 대신 하나의 기능에 집중하는 광고를 만들었다. 심플한 의사결정을 위해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을 신뢰했다.
잡스는 심플함에 미친 남자였다. 그로 인해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심플함의 세례를 받았다. 모두가 애플을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애플의 경쟁사들은 별 차이가 없는 수십 개의 제품을 내놓는다.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는 ‘친절한’ 사용설명서를 동봉한다. 여러 개의 메시지가 담긴 복잡한 광고를 제작한다. 그 어떤 메시지도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한다.
기업 안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모두모두 모여라 식의 대규모 회의가 이어진다. 격식을 차리느라 서로의 의견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이야기한다. 분명한 의사결정은 부재하다. 회의는 늘어진다. 복잡함이 춤을 춘다.
애플은 외딴 곳에 떨어진 단순함의 섬일 뿐이다. 애플식 심플함을 흉내만 낼 뿐 그 본질까지 흡수하는 이가 없다. 심플함의 세상은 요원하다.
그래서 토스의 등장은 뉴스였다. 가뭄 속의 단비였다. 하나의 사명을 내걸었다. 복잡한 송금을 간편하게 만들자. 토스에게 심플함은 '수단'을 넘은 '목적'이었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였다. 심플함의 껍데기만 두른 여타 브랜드들과는 달랐다.
어찌보면 작은 앱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앱이 대한민국 금융계에 던진 충격파는 작지 않았다. 파장은 갈수록 커졌다. 토스는 금융계의 애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나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사업
남자의 9번째 사업이었다. 한때는 억대 연봉을 받는 치과의사였다. 돈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기술로 전세계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리라. 꿈은 원대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고난의 터널에 진입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손대는 사업마다 꼬꾸라졌다. 모바일 투표 시스템, SNS, 셀카봉, 문화 강좌 포털… 8개의 사업이 연달아 실패했다. 직원들 월급을 주려 카드를 돌려 막았다. 매일 독촉전화를 받았다. 자살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실패가 주는 유익도 있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졌다. 주변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들은 모두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구나.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찾아보자. 직원들과 거리로 나갔다. 각자 흩어져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수집했다. 사흘에 한 번 모여 관찰한 내용을 공유했다. 3개월 동안 100개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가 그 중에 있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서비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간편송금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거대 은행들과 제휴를 맺어야 했다. 공인인증서와 관련된 규제도 풀어야 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스타트업에게는 하나하나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직원 모두가 금융에 문외한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9번째 실패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돈을 송금하는 일은 전 국민이 신음하는 ‘문제’였다. 스마트폰으로 돈 만원을 보내려 해도 공인인증서에서 보안카드번호까지 10단계 이상을 거쳐야 했다. 세상에 이런 복잡함이 없었다. 나이든 사람들은 사용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송금 시장의 헤게모니를 쥔 정부와 은행이 내세운 논리는 ‘안전’이었다. 안전하게 송금하려면 이 정도 과정은 불가피합니다. 그럴리가요. 게으르고 폭력적인 이치였다.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토스가 구상한 간편송금은 있으면 좋은 서비스가 아니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할 서비스였다.
이승건 대표는 통장에서 신문대금과 통신비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걸 보고 힌트를 얻었다. 은행의 '자동이체 기능'을 송금에 이용하자. 공인인증서는 물론 상대방의 계좌번호 없이도 송금이 가능해지는 방법이었다. 10분이 걸리던 송금이 10초만에 끝났다. 안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13년 12월, 토스의 베타서비스가 공개되었다. 서비스 오픈 4시간 만에 2,000명이 모였다. 송금의 패러다임이 바뀌려 하고 있었다.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당국은 자동이체 기능이 송금으로 이용되는 것을 '사고'로 인식했다. 세계 최초의 혁신적인 서비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의지도 없었다. 만에 하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어쩔 건데. ‘책임소재’는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 가장 예민해 하는 단어였다. 토스의 서비스는 2개월만에 중단되었다.
그 후로 토스가 재개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때마침 전세계를 휩쓴 핀테크 열풍 덕분이었다. 정부는 이 기류까지 무시할 수 없었다. 토스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가 풀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규제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때부터 토스의 앞길을 막는 이는 없었다. 파죽지세였다.
토스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00만을 돌파했다. 서비스가 시작 된지 3년 7개월 만이었다. 월 송금액은 1조원을 넘었다. 미국의 1위 간편 송금서비스인 ‘벤모'마저 뛰어넘는 수치였다. '토스해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은행들도 보는 눈은 있었다. 토스는 일종의 거울이었다. 그 동안 자신들이 내놓은 송금 서비스가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를 보게 해주었다. 은행들마다 토스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내부방침이 세워졌다. 토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미 늦었다. 토스는 저만치 앞서 가는 중이었다. 현재 토스의 간편 송금 시장 내 점유율은 70프로를 넘는다.
심플함은 역설
‘심플함’은 종종 오해 받는다. 흰 배경에 몇 개의 글자만 남긴 디자인 정도로 치부된다. 무작정 빼는 미니멀한 사고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건 겉핥기다. 심플함은 그 이상이다. 정수를 봐야 한다.
심플의 '주적' 복잡함부터 이해해야 한다. 복잡함은 선택과 결정을 회피하는 데서 생겨난다. 결국은 확신의 문제다. 확신이 없으면 말이 많아진다. 무엇을 남길까 보다 무엇을 더할지 고민하게 된다. 판단을 미룬다.
아인슈타인은 6살짜리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스스로 이해가 안된 거라고 했다. 파스칼은 편지를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쓴다고 했다. 고수일수록 쉽게 이야기한다. 본질을 꿰뚫는다. 하수는 어렵고 복잡하게 이야기한다. 제대로 알수록 쉽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심플함은 역설이다.
본능적으로 심플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나 배워야 할 것이 없고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
토스가 말하는 심플함이다. 본능적이어야 한다. 본능에 반하는건 곧 복잡함이다. 애플의 아이폰을 보면 알 수 있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의 5살짜리 딸 아이도 쉽게 가지고 논다.
토스도 마찬가지다. 앱을 켜고, 보낼 금액과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인식을 거치면 끝이다. 계좌번호를 모르더라도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된다. 완벽하게 본능적이다. 이것이 심플이다.
금융을 캐주얼하게
토스는 이제 간편송금 너머를 향한다. 금융플랫폼이다. 토스에만 접속하면 은행 계좌 개설부터 해외 주식 투자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생태계이다. 현재 40여 개의 금융 서비스를 채웠다. 이제 토스 사용자의 절반 이상은 간편송금 외에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려 토스를 찾는다.
서비스의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다. 토스의 무기는 그대로다. 심플함이다. 복잡하고 어려웠던 금융이 토스로 인해 쉬워진다. 토스의 용어로 '금융의 캐주얼화'다. 모든 금융서비스를 문자 메시지 보내듯 큰 노력 없이 이용하도록 하겠다. 토스는 변하지 않는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가 지은 사명은 '비바리퍼블리카'다. 공화국 만세.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다. 프랑스 혁명처럼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자는 뜻에서였다. 사명은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혁명의 중심에 심플함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