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무신사
“전통 태극권은 사기다”
쉬샤오둥의 언어는 맹렬했다. 격투기 강사인 그가 웨이보에서 날린 트윗이었다. 태극권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존경 받는 무술인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할 판이었다. 태극권 고수 웨이레이가 나섰다. 쉬샤우둥의 주장은 궤변입니다. 뜨거운 설전으로 이어졌다. 네티즌은 신이 났다. 두 분이 실제로 한번 붙어보심이 어떨까요. 대결은 성사되었다.
격투기와 태극권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였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소문난 잔치에 진미는 없었다. 태극권 고수는 박살이 났다. 도망가기에 바빴다. 경기는 불과 20초 만에 끝났다. 웨이레이는 자신이 태극권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꼬리를 내렸다. 태극권의 몰락이었다. 2017년 4월이었다.
승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중국 무술은 체조에 불과하다. 실용성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희롱하는 골리앗의 목소리였다. 목동 다윗이 등장해야 할 시점이었다.
2018년 3월, 영춘권 고수가 출사표를 던졌다. 영춘권은 브루스리의 무술로 이름난 권법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로 마무리되었다. 그 또한 쉬샤오둥에게 줄곧 얻어터졌다. 중국 무술계에 다윗은 없었다.
실속이 없어서
전통이라 자랑해온 무술이 실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태극권, 영춘권을 닮은 자들로 넘쳐난다. 겉은 번지르르하다. 포장을 걷어내면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다. 실속이 빠져있다.
연예인들의 사업 실패담은 자주 전파를 탄다. 실패까지의 과정은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원인은 하나로 모아진다. ‘실속이 없어서’.
준비 없이 사업에 뛰어든다. 유명인으로서 체면이 있으니 뭘 하나 하더라도 삐까번쩍 하게 한다. 최고급 인테리어로 가게, 사무실을 두른다. 초기에는 지인들과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돈이 벌린다. 사업 별거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달콤한 시간이 길지 않다는데 있다. 연예인 후광효과는 서서히 사라진다. 진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내공이 드러난다. 맛, 서비스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것이 없다. 손님은 빛의 속도로 끊긴다. 가게 운영을 위해 대출을 받는다. 은행 가기가 부끄러워 사채를 쓰는 경우도 많다. 빚은 불어난다.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가 인기에 취해있었구나. 실속이 없었구나.
중국 음식점으로 성공한 개그맨 김학래의 말은 울림이 있다. 그는 사업실패로 한때 100억원의 빚을 졌다.
“고급 대리석이나 화려한 조명요? 다 소용없습니다.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손님’입니다. 가게 인테리어를 할 때 돈을 많이 들여 꾸미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가게 밖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야말로 최고 인테리어입니다.”
실속이 답이다. 온라인 패션 편집숍 '무신사'가 돋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허울 가득한 패션계에서 집요하리만큼 실속을 추구했다. 열매는 풍성하다. 2017년 무신사에서 거래된 금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동종업계 내 압도적인 1등이다. '패션계의 아마존'이라 불린다.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
장난 같은 시작이었다. 신발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프리챌에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 무신사의 탄생이다.
이 곳에서는 신발 좋아하면 다 친구였다. 함께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풀스방에서 위닝을 했다. 신발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였다. 놀이터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이트였다. 소수의 무리들이 열광하는 사이트였다. 다수의 애매한 호감보다 나았다. 저 위대한 슈프림, 블루보틀, 에어비앤비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대중이 아닌 몇몇 사람들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니까. ‘열광적인 소수’를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만인에게서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였다. 무신사는 테스트를 통과했다.
웹진과 커머스의 결합
이때까지의 무신사는 동호회의 형태였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수익을 내고 싶었다. 기업의 형태여야 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를 시도했다.
2006년, 커뮤니티는 온라인 잡지(웹진)가 되었다. 커뮤니티의 업그레이드 버젼이었다. 패션 정보를 수집하여 보여주는 건 여태껏 해오던 일이었다. 편집이 더해졌다. 읽기 좋게 가공해서 내놓았다.
2009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이제부터는 무신사에서 제품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웹진’과 ‘커머스’의 결합이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서비스였다. 단순히 브랜드 옷을 판매하는 온라인 몰과는 달랐다.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쇼핑몰이었다. 경쟁 사이트 대비 ‘체류시간’이 배 이상 높았다. 웹진과 동영상을 보기 위해 방문한 고객은 기사에서 본 제품을 바로 구매했다.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실속의 열매
한때 '분더샵'을 꿈꿨다. 전세계를 뒤져서 한정판 제품들을 들여왔다. 5개만 생산되는 인케이스의 리미티드 에디션 가방을 팔고서 뿌듯해했다. 멋있고 폼나는 일이었다. 무신사의 ‘팬’들도 좋아했다. 2, 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겠구나. '실속'을 갖춰야 '사업'이구나.
허세를 내려놓았다. 브랜드의 허들을 낮추었다. 신생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켰다. 디스이즈네버댓, 커버낫, 앤더슨벨 같은 브랜드들이 이때 들어왔다. 가격도 낮춰 잡았다. 박리다매였다. 무신사식 실속이었다. 실속을 연료 삼아 무신사는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실속'은 고객들이 무신사를 찾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무신사에서는 간지 떨어지지 않는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밋밋한 유니클로를 살 돈이면 무신사에서 새끈한 스트리트 브랜드 티셔츠를 살 수 있었다. 용돈이 궁한 10대들이 특히 열광했다. 알아서 입소문을 내주었다. 고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18년, 무신사의 회원수는 310만명을 돌파했다.
'실속'은 브랜드를 끌어당겼다. 무신사에 입점하면 돈 번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신사 덕분에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도 상당수였다. 자체 매장이나 사이트 없이도 옷을 팔 수 있는 기회였다.
무신사의 영향력은 메이저 브랜드에까지 미쳤다. 휠라, 반스, 나이키 같은 거물들이 입성했다. 이제는 무신사에서 '무지하게' 많은 매출을 올린다. 무신사에서만 판매하는 exclusive 제품도 선보인다. 이제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의 수는 3,500개가 넘는다.
'실속'을 추구한 덕분에 무신사는 무섭게 성장했다. 2013년 100억이었던 거래액이 2015년 1,000억, 2016년 2,300억, 2017년 3,000억을 찍었다. 2018년은 4,000억을 바라본다. 실속의 열매는 달았다.
예쁘지 않아도 돼
"개미지옥"
무신사를 경험한 지인의 평이다. UX는 예쁘지 않고 복잡하다. 원하는 제품을 찾으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상품을 마구잡이로 진열해놓은 시부야의 돈키호테 같다. 무신사는 할 말이 있다. 다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거든요. 고객들이 무신사 사이트를 예뻐서 찾는게 아니거든요.
29CM, W컨셉 같은 경쟁브랜드는 일단 예쁘다. 큐레이션이 중심이다. '우리가 괜찮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너희들에게도 제안할게' 라는 식이다. 무신사는 아니다. 취향을 팔지 않는다. ‘판매’에 집중한다. 사이트는 판매가 이루어지는데 최적화 되있다.
'무신사 랭킹'이 대표적이다. 무신사의 베스트셀러 상품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랭킹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거니까 당신도 좋아할거에요. 순위권에 오른 제품은 검증된 트랜드 상품으로 인식된다. 판매는 가속도가 붙는다.
랭킹의 영향력은 무신사의 담장을 넘는다. 각종 패션 커뮤니티들은 무신사 랭킹을 분석한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한다. 판매 곡선은 또 한번 상승한다.
브랜드들은 무신사의 랭킹에 목을 맨다. 무신사 내에서 단독 상품/프로모션을 기획한다. 인기상품의 재고를 무신사에 집중한다. 무신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점점 늘어난다. 고객들이 무신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그만큼 늘어난다. 완벽한 선순환이다. 이것이 판매를 위한 디자인이다.
조만호 대표는 다른 사이트가 남자화장실을 '중절모 그림'으로 알린다면, 무신사는 ‘남.자.화.장.실’ 이렇게 크게 적어 놓는다고 했다. 이게 무신사의 방식이다. 돌려서 예쁘게 말하지 않는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다. 지금 무신사는 중절모 그림을 그려 넣는 쇼핑몰보다 몇배의 매출을 낸다. 그렇게 무신사는 실속을 챙긴다.
점이 연결되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에서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생의 점은 연결된다. 다만,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수는 없다. 점이 이어진 모습은 과거를 되돌아 보았을 때에야 볼 수 있다.”
사이트에 올릴 신발 사진을 수집하던 그 고등학생은 지금의 무신사를 상상이나 했을까. 프리챌의 작은 커뮤니티가 웹진이 되고, 매년 수천 억 원의 매출을 내는 패션커머스가 되었다. 뒤돌아보니 점이 이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경험이었다.
이제 무신사에는 웹진을 만드는 에디터 수만 10명이 넘는다. 하루에도 방대한 양의 패션 뉴스가 업데이트 된다. 300만명이 넘는 무신사 회원들이 무신사에서 읽고, 보고, 결국에는 산다. 프리챌 커뮤니티에서 여기까지 왔다. 무신사의 점이 연결되었다. 무신사의 실속이 그 점을 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