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시의 하와이 (2)

2025. 01. 01부터 2025. 01. 04까지

by 양양

<2025. 01. 01>


새해 첫날. 여행 중이어서 그런지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는 않는다. 또, 어제의 내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지도 않으니. 어제의 여파인지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건지 오늘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말도 안 되게 피곤했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소중하니 길을 나서야겠지.

아침(?) 아니 사실 12시 넘어 점심 즈음 Byo-do 사원에 방문했다. 절에 다니시는 할머니를 위한 신년 코스였다. 내부는 교토에서 가봤던 청수사와 비슷했다. 나도 나의 소원을 담아 종을 쳤다.


행복을 자주 느끼게 해 주시고,
그것이 행복임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다음은 돌고래가 나온다는 카할라 호텔로. 돌고래를 직접 체험하는 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참 신기했다. 애교도 많고 참 똑똑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이 카할라 비치와 붙어 있어서 바다도 느낄 수 있었다. 선베드에서 keane의 노래를 들으니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나 홀로 어떤 순간을 진득이 느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을 오롯이 체험한다.


즉흥적으로 드라이브하며 명소들을 찾아다녔다. 물이 뿜어져 나오는 '할로나 블로우 홀'과 그 옆에 있는 해변까지 둘러봤다. 역시 하와이는 자연이 기가 막힌다. 마지막으로 어제 갔던 바람 산 전망대까지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또 파티. 오늘은 삼겹살을 잔뜩 구워 먹었다. 역시 아빠가 구워주는 고기가 가장 맛있다. 문제는 배가 너-무 부르다는 거다. 살이 찐 게 느껴질 정도다. 소화도 안되고 몸도 무겁고. 심지어 옷이 잘 안 들어간다. 내일부터는 적당히 좀 먹어야지.

내일은 엄마랑 와이키키 시내에서 놀기로 했다. 스투시옷도 기어코 오픈런해보기로 했고. 포케나 아사이볼도 먹어볼 거다. 알차게 보내야지!

아빠의 삼겹살 솜씨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꿈같은 하와이 여행 중에도 요상한 슬픔이 밀려온다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관계에 애쓰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걸 억지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그 노력이 나를 너무나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나는 이미 나를 위한 결정을 알고 있으니 꾹꾹 삼켜야겠지.

유연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냥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남 눈치 보거나 착한 척을 하거나 비교하는 것도 지겹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우선시하자! 사람들에게 친절하면서도 적당히 어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2025. 01. 02>


자유시간이 주어진 날. 아침 8시 30분부터 집을 나섰다. 오늘은 기필코 호놀룰루 스투시 티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 9:30부터 11시까지 기다린 끝에 결국 검은색 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역시 나는 집념의 인간이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쇼핑에 나섰다. h&m도 가고, abc스토어 가서 기념품 왕창 사고, 약국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약도 구매했다. 중간에 shaving ice라고 하는 미국식 빙수(?) 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점심으로는 드디어 포케를 먹었다.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다. 다양한 재료들과 소스가 어우러져 매콤하고 맛깔나다. 그리고는 계속되는 쇼핑 또 쇼핑. 돈을 한 번 쓰기로 마음먹으니 어찌나 빨리 닳던지. 깜짝 놀랐다. 이게 하와이의 물가인가.

Target도 가보고 귀여운 리빙 소품샵과 어반아웃피터스까지. 중간에 와이키키 해변도 들렀는데 역시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정말 많았고 햇빛이 쨍쨍해서 거의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너무 핫해... 나에겐 너무 핫한 곳이야.

지금은 Kai coffee에 와서 아사이 볼과 커피를 즐기고 있다 오늘 그동안 미뤄왔던 버킷리스트를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아사이볼, 처음 먹어보는데 특이하고 맛있다.

핫한 와이키키 해변


어딘가로 도망쳐 온 느낌. 어차피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고 무언가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순간이 와도 씩씩하게 해낼 수 있을까?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대부분 어떤 생각이나 상상 같은 것들이다. 언젠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무언가를 이룰 거라는 믿음. 그러나 꿈에서 깨면 침대 안이듯, 실제의 나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은 영영 이대로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늘 외롭고, 사랑에 목말라하고, 희망만 지닌 상태. 만약 누군가 그게 내 삶의 전부라고 말해준다면 나에게 과연 살아가려는 의지가 남을까?


kai coffee에서 새들의 습격을 받은 후,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한적한 강가로 가는 길에 만난 무스비도 2개 샀다. Alaani(?) (명칭이 정확하지 않다.)라는 강가에 가니 해변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햇살이 강가에 비치고 고즈넉하니.. 열심히 러닝 하는 사람들과 카약 타는 사람들.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또 하나 생겼다.

집에 돌아가기 전, 치즈케이크 팩토리까지 들렀다. 상하이에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하고 또 방문한 거다. 여전히 너무 맛있었고 너무 비쌌다.

오늘 아빠와 베렛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낚시도 갔다. 아빠의 버킷리스트도 이룰 수 있는 날이다. 아빠가 가득가득 누리고 왔으면 좋겠다.

이제 하와이에서의 날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꼭 적응할 때 즈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온 하와이. 돌아가도 슬기롭게 내 삶을 재정비해야지. 그동안은 걱정 말고 남은 시간을 누리자.

고모를 기다리던 순간


<2025. 01. 03. 금>


오늘은 베렛도 골프 치러 나가고, 고모도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셔 나 홀로 길을 나서보기로 했다. 결국 버스를 도전해보기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길을 나섰다. 역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꽤 멀고 험난했고 더웠지만 '호놀룰루 미술관'에 도착하니 뿌듯함은 두 배가 되었다. 너무 오고 싶던 곳인데 소원성취한 거다.

혼자 천천히 조용하게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니 평화롭고도 충만했다. 유명한 작품들 (반 고흐, 모네 등) 도 많아서 보는 맛이 있다. 역시 새로운 나라에 와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야무지게 2시에 식당도 예약해 두고 찾아갔다. 비록 혼자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가격은 사악하지만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니, 부지런히 행복해야지.


나머지 전시들을 모두 보고 길을 나섰다. 차로 다닐 때는 몰랐는데 길에 홈리스도 많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좀 무섭기도 했다. 'Habor vinatage'라는 빈티지샵을 찾아가 봤다. 귀여운 반팔 티셔츠들은 좀 있었는데 옷의 퀄리티가 좋진 않아서 구경만 했다. 그리고 또.. 또.. 걸어서 월마트도 가고 알라모아나 쇼핑센터에 가서 젤라또도 사 먹었다.


버스가 워낙 오래 걸려서 오후 6시 전에 출발해야만 했다. 버스는 10분 넘게 지연되고.. 사람도 많고 오래 걸렸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데려가주는 대로 관광하는 게 아니라 우당탕탕 이어도 내 힘으로 돌아다니니 더욱 뿌듯했다. 버스 안에서 노을 지는 것도 보고, k-pop 걸그룹 노래를 들으며 돌아오니 시간도 빨리 갔다.

다신 못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이 길고 긴 하루를 모두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쨌든 하루는 가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그날이 올까 까마득해도 언젠가 살아가다 보면 그곳에 도착해 있는 것.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무튼 오늘 간 미술관은 참 좋았다. 모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동서양 각각의 작품들을 모두 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혼자서라도 용기 내어 가보길 잘했다. 드디어 내일 하와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 도시에 적응할 때 즈음 떠나는구나. 내 집과 생활이 조금은 그리우니 많이 아쉬워하진 않을래.


<2025. 01. 04. 토>


오늘은 대망의 '다이아몬드 헤드'에 다녀왔다. 하와이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는데 하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상상한 건 주변 경치를 돌아보며 자연을 느끼는 거였는데 베렛 걸음이 너-무 빨라서 쫓아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 미친 계단도 올라가고... 원래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를 1시간 안에 다녀온 거다. 그야말로 미친 트래킹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해가 너무 쨍쨍해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군인다운 그의 걸음

릴리하 베이커리에 가서 타로 도넛도 샀다. 우리나라의 성심당 같은 유명 빵집이라고 한다. 타로로 만든 도넛이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H마트도 갔는데, 지금 듣고 있는 오디오북인 'H마트에서 울다'의 주인공이 와봤을 곳이 여기였을까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광어회를 떴는데 45분이 걸리고 거의 20만 원이 나왔다. 말도 안 돼. 미국은 정말 모든 게 비 정상적으로 비싸다


마지막 날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이곳에 많이 익숙해진 걸까? 한편으로는 내 방과 침대가 그립다.

릴리하 베이커리
진짜 말도 안되게 맛있다ㅠㅅㅠ
누군가에겐 의미가 클 H마트


점심으로 다 같이 20만 원 (...) 짜리 광어회를 먹으며, 어찌나 비싼지 미국에선 회를 안 먹는 이유가 분명 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2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침대에서 책 좀 보고 쉬었는데, 문득 여행과는 별개로 침대에서 뭉그적 거린 게 정말 오래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휴식'이 나에게 얼마나 낯선지 말이다.

너 뭔데 20만원…?

저녁에는 고모가 아울렛에 데려가 주셨다. 폴로 좀 살까 했는데 환율의 영향 때문인지 그리 싸지도 않아서 포기했다. 대신 특이한 반스 바지를 득템 했다. 한국에서 입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ㅋㅋ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마지막도 역시 스테이크였다. 하와이의 스테이크는 언제나 맛있었다. 아빠랑 집 앞을 좀 걷다가 다들 많이 피곤해서 얼른 하루를 마무리했다.

결국 사지 못한 폴로
마지막 날 일몰


열흘간의 하와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지내서인지 생각보다 크게 아쉽거나 섭섭하진 않다. 하와이를 느낄 만큼 느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가서도 종종 꺼내볼 추억이 되었고, 나는 나의 삶으로 돌아가야겠지.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다.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떠날 수 있다.


*생각과 글보다는 실행의 빈도수를 높이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독기 없이는 평생 노트에 다짐만 하다가 끝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입고 싶은 대로.


*굳이 타인에게 과하게 다정하지 않기.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기.

마지막 날 아침, 정든 펩과 헨리와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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