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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Sep 07. 2023

리움미술관: 김범, 바위가 되는 법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리움 미술관, 2023. 7. 27~ 12. 3



   오랜만에 리움 미술관에 다녀왔다. 한가한 평일 오후여서 다행히 주차가 어렵지 않았고, 주로 해외에서 온 여행객들이었다. 아마 리움미술관이 국외 여행객들에게는 서울의 주요 여행 코스인듯하다. 김범 개인전 및 상설/기획전을 보려면 예약을 한 후 가야 하고, 예약제 덕분에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예약 링크는 아래에-.


리움미술관 온라인 예약·예매 - 개인예매 (leeum.org)




김범의 작품세계


   작가 김범은 모든 물질이 생명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물활론적 사유, 보이는 것과 그 실체의 간극을 인지하는 행위,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가정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특유의 간소한 형식과 생소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조합하여 만든 작품들은 감상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 반짝반짝 불이 켜지게 하는 것 같았다. 신선한 반전들이 가득한 그의 작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는 "당신이 보는 것은 보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모든 고정관념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다르게 보는 관점'을 보여준다.



김범 작가의 작품들


<좌> 지우개 물고기 / <가운데> 자화상 / <우> 파란 그림


   그의 작품의 소박함은 캔버스의 소재와 컬러에서 온다. 그는 다양한 컬러를 쓰기보다 오목함과 볼록함, 구멍, 블랙 컬러의 텍스트를 즐겨 사용하여 표현했다. 지우개를 넣어 도드라지게 한 <지우개 물고기> 앞에서는 마치 그 물고기의 굵은 골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화상>을 통해 우리 영혼의 모습은 모두 저렇게 소중한 무언가를 담아두기 위해 어느 정도는 구멍(흠)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란 그림>은 온갖 파란 것들을 텍스트로 써 놓았는데 저 그림을 보며 나는 블랙 텍스트가 써진 부분에 블루 컬러의 해당 사물들을 채색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김범, <잃어버린 양>


   마치 영어 코믹북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같은 작품. 저 작은 구멍(동굴) 안에 정말 뭔가 있을 것 같아서 한쪽 눈을 가까이 대보고 "계신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귀엽고 작은 생물이 저 안에 있을 것 같아- 어쩌면 거대한 마을이 보일지도 모르지- 미소 지었던 즐거운 작품이었다.



<좌> 현관 열쇠 / <우> 자동차 열쇠#3


   내 고정관념은 '산'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현관 열쇠를 그린 작품이다. 내 머리는 '파도'라고 하지만, 작가는 자동차 열쇠를 그린 작품이다. 이런 반전이 재밌다.



김범, <두려움 없는 두려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제목이 의미심장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은 벽이 뚫린 것이 아닌 잉크로 칠해진 그림으로 구멍처럼 표현했다. 알 수 없이 이 작품에 끌려서 한참을 돌며 여러 각도에서 감상했다.




김범, 무제(친숙한 고통) 시리즈




   미로, 담, 막힌 벽,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란스러움. 우리의 삶은 사실 짧은 순간 아무 일 없었던 듯 걸어갈 수 있는 곧은 길과, 친숙하고 사소한 당황스러움들, 때로는 심한 불안을 일으키는 막다른 자리에서의 고통들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김범, <백조>


   소재는 스티로폼, 백조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은 두 팔과 손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실제 물에 띄우면 떠 있거나 움직일 수 있게 장치까지 해둔 작품이었다. 장난감 같지만, 상당히 우아한 작품이다. 잔잔한 호수에 띄워보고 싶다.




김범, <노란 비명>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노란 비명>인지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촬영해둔 영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영상을 보고 이 작품을 보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시각으로 경험하지만 사실은 귀로 들어야 하는 작품도 있다는 것.




김범, <무제>



   피플 커튼.

   종이조각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커다란 커튼을 이루고, 사람들 사이의 열린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으로 인해 바닥엔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남는다. 사람들의 잡은 손들이 바닥에 비친 오돌토돌 올록볼록한 그림자들이 스치는 바람에도 살짝씩 흔들리는 모습이 춤추는 것 같았다.




김범 <무제>




김범, <무제(제조 #1 내부/외부)>



   보이는 형상의 단소로움.

   뒤에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내면의 복잡한 실상.

   가리거나 과장하여 드러내기 위한 가면과 소품들.


   우리는 어쩌면 이 작품 같은 자아를 모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나, 보여지는 모습과 나만 보고 싶은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작품은 뒤로 돌아가 흰 사자의 뒷모습을 볼 때 좀 울컥하는 면이 있으니 꼭 뒤로 돌아가서 보세요.




김범, <26개의 제목 없는 드로잉>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심플한 그림이 좋다.

   하나의 컬러로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그림이 좋다.

   김범 작가의 작품들이 그랬다.


   물감이 닿고 누르고 지나가서 울어버린 페이퍼가 좋았다. 위풍당당함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았고, 엎드린 동물은 더 처절하고 슬퍼 보였다.




김범, <무제(그 곳에서 온 식물들)> 시리즈



   신문과 잡지로 만들어진 식물들. 매거진과 뉴스페이퍼의 컬러 사진 속의 그린 컬러가 식물의 잎이 되고, 브라운 컬러와 블랙 컬러가 화분 속 흙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식물과 자연이 모여 만든 두 개의 화분.




김범,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가장 인상적이었고, 오래 볼수록 가슴이 아팠던 작품이다. 저마다 다른 아이들을 함께 모아두고, 같은 내용으로 모두 비슷하게 키워내려고 하는 교육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랬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쓰임새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되고,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 모습 그대로 다채롭고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김범,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축복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도 축복이다.

   아닌 줄 알고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얻는 것도 축복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상설전 및 기획전은 여유 있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다리가 아플 정도로 오랫동안 머물렀던 리움미술관은 여전히 나에게 신선한 호흡이 되어 주었다. 미술관 나들이가 좋은 이유는 새로운 공기들이 몸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리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미술관의 공간이 주는 여유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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