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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Jul 26. 201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니키 드 생팔, 마즈다컬렉션

 [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매일 11:00AM-08:00PM (전시별 휴관일 상이)
TEL. 02.580.1300
http://www.sacticket.co.kr
관람료(전시별상이) : 성인(만 19세 이상) 14,000원/
학생(8-18세) 10,000원/미취학아동(3-7세) 8,000원
주차가능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하늘은 흐리고 무거운 회색빛 구름이 가득해 금세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그래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발걸음이었다. 니키 드 생팔의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는 걸 알았던 몇 주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으니까.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곳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였다. 조각분수공원의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기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의 컬러에는 힘이 있었다. 형태보다 컬러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작품에서는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었고, 그것은 자유로움을 향하는 갈증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작품을 통해 가볍고 유쾌한 기운을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이유다.



치유와 자유로의 열망으로, 니키 드 생팔


   니키 드 생팔(1930-2002)은 프랑스의 작가다. 그녀는 ‘누보 레알리즘(신사실주의)’ 작가이다. 이는 추상미술의 현실 도피적 표현에 대해 회의를 품은 작가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미술경향을 말한다. 니키 드 생팔은 이번 전시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풍만한 여인의 자유로운 몸짓을 표현한 ‘나나(Nana)’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녀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사격회화’ 때문이었다. 1961년 2월, 파리에서 열린 <비교:회화-조각>전에서 그녀는 물감이 담긴 오브제를 석고로 덮은 후, 그 오브제를 향해 총을 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영상으로도 촬영되었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와 <사격회화>시리즈는 당시에 파격적이었고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녀는 여성성에 대한 억압과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작품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사를 알고 그녀의 작품을 보아야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니키는 귀족혈통의 프랑스 은행가 집안 출생이었으나,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아버지가 파산한 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니키를 임신했던 동안 아버지의 불륜이 발각되는 일이 있었고, 어머니에게 니키는 그 모든 괴로운 상황에서 원망의 대상이 되어버었다. 그녀는 수도원학교에 입학했으나 종교적 속박과 억압을 견디지 못했다. 또한 11세엔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 이로 인해 그녀에게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카톨릭 대성당에 대한 공격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19세에 한 남자를 만나 도망쳐 나와 결혼했고 두 아이까지 낳았으나, 출산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결혼도 파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자신의 모든 상처와 괴로움을 치유하기 위해 예술가가 되었다. 미술은 그녀에게 벼랑 끝에서 만난 돌파구였다. 




아프고 슬프고 기쁘다가 다시 아픈


   표를 받고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했다. 꽃분홍색의 벽면에 포스터에서 봤던 조형작품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입구 옆엔 한쪽 눈을 감고 다른 한 눈으로는 정면을 매섭게 응시하며 총을 겨누고 있는 니키 드 생팔의 사진이 있었다. 한쪽은 기쁨과 자유를 표현한 작품이고, 또 한쪽은 증오와 분노를 담은 이미지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조금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의 첫 공간에 사격회화가 전시되었다는 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사격회화>라는 작품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말라붙은 눈물과 피로 얼룩진 니키 드 생팔의 부서진 자아가 거기 있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온 총알이 박히고 터지고 깨지고 뭉개져버린 오브제들에서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마른 눈물 같이 굳어지고 갈라진 물감 앞에 50년도 더 지난 지금 서서, 나는 니키 드 생팔의 아픔을 느꼈다. <대성당>이라는 작품과 <괴물의 마음>, <붉은 마녀>라는 작품이 연이어서 나오는데,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선뜻 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꿈에 나올까 무거운 형상들이 내 눈 앞에서 흐르는 물감으로 덮여 있었다. 얼마나 많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을까. 그녀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강요받았으며, 얼마나 거대한 고통 속에 있었던 걸까. 괴물이라는 말을 들었는지도, 혹은 스스로를 괴물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무서웠던 작품들을 다시 보니 눈물이 고였다. 사격회화를 제작할 때 총을 쏘는 영상 속 그녀는 금세 울 것 같았다. 빨개진 콧등과 눈가가, 그것이 꾸며낸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을 홀로 견디었을까 싶은 마음에 총구를 겨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싶었다. 




   이번 전시 포스터에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얼굴 없는 풍성한 몸매의 하얀 여인을 본 순간 무장 해제되는 느낌이었다. <나나>시리즈다. 치유로서의 미술을 했던 그녀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 이어지는 전시 구성이 좋았다. 그녀 안에 있던 모든 색채가 올라와 작품 위에 내려앉았다. 유쾌함과 생기가 가득했고, 부정형의 자유로움과 기쁨이 ‘나나’를 통해 전해졌다. 하얀 몸의 여인은 세상의 미의 기준과는 달리 통통하게 살진 모습이었고 이목구비가 없어 미모를 판단할 수도 없었다. ‘나나’는 중력을 거슬러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조형물에서 전해지는 건, 그 얼굴이나 몸매의 곡선이 아니라 내면에서 올라온 것 같은 밝고 다채롭고 건강한 기운이었다. 니키 드 생팔은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력으로부터, 과거의 모든 상처로부터 자유하고 싶었고 ‘나나’를 통해 그런 소망을 표현했다. ‘나나’만큼이나 기분 좋게 보았던 작품이 있었으니, <머리에 TV를 얹은 커플>이라는 작품이었다. 양쪽 면이 다른 조형물이었다. 한편에는 남성을, 다른 한편에는 여성을 표현했다. 니키가 유머러스한 사람이고 부드러운 영혼의 소유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머리 위에 얹은 TV속에 반대편 인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남자 그림 옆에서 그 눈을 보자니 분홍색 입술을 ‘오~’하며 오므리고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힐끔거리는 듯 보이는 게 우스워 피식 웃었다.




   그녀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인 두 사람과 관련된 작품들을 만났다. 한 때 그녀의 배우자였지만 결국 부부로서의 삶을 지속하지 못했던 장 팅겔리는 이혼 후에도 그녀 평생의 예술적 동반자로 남았다. 그는 그녀에게 예술적 지도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녀의 행복한 기억 속 연인으로 작품에 남았다.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컬렉터 요코와 니키 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보았다. 한 예술가를 20년 동안 전적으로 지지하고 그 작품을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요코의 모습이 내겐 특별하게 보였다. 니키의 바람이 담긴 니키 미술관 모형을 보았다. 그대로 지어지지 않았고 또 현재는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니키 미술관이 더 궁금해졌다. 자신의 작품이 건물의 모서리에 찔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니키 미술관은 꼭 모든 부분을 둥글게 짓겠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건물 모서리조차 아픔이 될 만큼 예민했던 여인에게 닥쳤던 일들이 너무 가혹해서.






한없이 헤매다, 그렇게 헤매이다


   ‘영혼의 자화상’은 그 작품의 제목이었다. 짙은 보라색 얼굴의 한쪽에는 글씨가 쓰였고, 다른 쪽에는 타투가 새겨진 것처럼 보였다. 텅 빈 머리에서는 뱀이 올라오는 형상인데, 그 뱀의 몸통에는 온갖 무섭고 커다란 동물들과 전쟁 중인 사람들의 작은 모형들이 붙어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가 나는 얼굴의 한쪽을 가득 메운 글이 어떤 내용인지를 알고 눈물이 왈칵 났다. “나는 나쁘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사악해. 추하다, 추해. 나는 거미 같다. 항상 나쁜 것은 나다.” 신경쇠약과 자기학대, 자책으로 정신적 고통 속에 있었던 그녀의 모든 생각들이 쏟아져 나와 그 얼굴을 덮고 있었다. 자기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세계 안에서 숨 막히게 억눌러져버린 그녀의 영혼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까지. 




   이후의 전시 작품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집트, 인도, 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을 접하며 그 영향을 받은 그녀는 영적인 것과 사후세계에 관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호화찬란한 컬러의 유리조각으로 거대한 붓다의 온 몸을 장식한 작품,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을 유리조각으로 화려하게 표현한 해골 작품 외에도 다양한 문화권의 숭배 대상을 만든 것을 보며 그녀가 자신을 구해낼 구원자를 찾아 얼마나 헤맸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누가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해,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매달리고 싶어 했던 연약하고 안쓰러운 한 영혼이 보였다. 구원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녀는 그것을 알고 눈을 감았을까. 




   타로공원은 그녀인생 최고의 걸작이라 할만하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공원을 만들기로 했던 그녀는 타로카드에서 영감을 받아 공원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20여년에 걸친 공사기간을 거쳐 마침내 완성되었다. 나는 타로카드를 자세히 본 적이 없지만, 영상으로 본 타로공원은 몽환적이고 빛이 충만했다. 모든 빛이 타로공원에서 반사되어 주위를 밝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에는 유난히 뱀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전시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기 전, 그녀는 죽은 뱀을 보았다. 뱀은 그녀에게 아픈 상처와 공포를 떠올리는 상징이었다. 그녀는 자신 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공포와 맞서야 했다. “나는 뱀을 만듦으로써 뱀에게 느끼는 공포를 기쁨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그녀가 삶의 공포를 견디어 내는 방식이었다.



책, <니키 드 생팔 X 요코 마즈다>



   이번 전시회는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소장품 127점을 소개하고 있다. 니키 드 생팔의 열렬한 팬이었던 요코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게 되고 그 작품을 최대한 컬렉팅한 결과물의 전시다. 이 책은 요코 마즈다의 인생을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만나기 전후로 나누어 쓰고 있다. 요코는 니키의 작품을 만난 후에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요코 마즈다의 어릴 적 이름은 구로이와 시즈에였다.1931년 일본 도쿄 간다에서 태어난 시즈에는 요릿집 사장의 딸이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냉정했고 시즈에는 엄마로 인해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5년 도쿄 대공습을 통해 전쟁의 상흔도 경험했다.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있었던 그녀는 여자들의 도쿄대(당시 도쿄대학교에는 남자만 입학 가능했다.)라 불리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마즈다 쓰지와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도망쳐서 결혼했다. 시즈에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교사를 해야 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경제활동을 쉴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견뎌내야 했으며 남편과의 불화는 점점 심해져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결국 아버지의 요릿집을 물려받아 경영하게 된다.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갑자기 해방되고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 같은 만남이었다.”


   요코가 니키의 작품을 통해 먼저 니키를 알아봤다. 그녀는 니키의 작품에 매료되어 수집하기 시작했고, 일본 내에 최초로 니키의 이름을 붙인 작은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그 후로 니키와 요코의 우정은 시작되었고 비록 둘이 실제로 만난 일은 몇 번 없지만, 그림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누게 된다. 예술가와 팬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으로 색이 변해간다. 니키에 대한 요코의 동경이 니키에게 큰 부담을 주기도 했지만, 요코는 한결같았고, 니키도 요코를 편하게 보게 되었다. 1994년, 세계 유일의 ‘니키 미술관’이 요코의 손에 의해 일본에 지어졌다. 1998년, 노년의 니키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니키 미술관에 방문했고, 2002년 그녀는 생을 마감했다. 7년 뒤인 2009년에는 요코도 눈을 감았다. 비록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요코 사후에 니키미술관은 폐관했지만, 그녀의 가족들이 니키 드 생팔의 작품들을 보관해오고 있고, 드디어 한국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요코의 둘쨰 며느리다. 사진작가가 된 둘째 아들 마사시의 아내인 구로이와 유키가 이 책을 썼다. 시어머니의 평생을 써내려간 며느리의 글이라 생각하니 더 값지게 느껴졌다. 한 여인의 거칠고 고된 인생이 한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생명력을 얻었다. 그녀는 떠났고, 예술가도 떠났고, 이제 그 예술가가 남긴 작품과 그녀의 며느리가 남긴 글만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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