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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Jul 16. 2018

디뮤지엄: Weather,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날씨에 대한 감수성에 대하여

 [미술관] 디뮤지엄 (D Museum)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29길 5-6 Replace한남 F동
일, 화-목 10:00AM-6:00PM
금-토 10:00AM-8:00PM
월요일 휴무
TEL. 070.5097.0020
http://www.daelimmuseum.org/dmuseum
관람료 : 성인(만 19세 이상) 9,000원/
학생(8-18세) 5,000원/미취학아동(3-7세) 3,000원
주차가능



   디뮤지엄(D Museum)은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전시일정을 챙기는 미술관이다.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의 전시는 젊고 경쾌하고 감각적이어서 언제라도 가볍게 방문하기 좋고, 다시 한 번 관람하고 싶게 한다. 현재진행중인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의 전시일정을 알게 된 건 2개월이 넘었다. 전시 제목을 안 후로, 전시 관람 후에 읽기 좋을 책도 사두었는데, 그 사이 예상치 못한 일들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방문하게 되었다. 날씨에 관련된 감수성에 관한 전시라니 흥미로웠다. 날씨라면 매일 밤 내가 찾아보는 일기예보 속의 주인공이니, 나의 주된 관심사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면 우산을 챙겨야 하고, 너무 덥다고 하면 실내를 이용하는 쪽으로 여정을 바꾸고, 미세먼지가 많다고 하면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는 일은 일상의 지혜다. 오늘은 매우 덥고 흐린 날씨다. 미술관 가기 좋은 날씨.




한남동의 문화예술아지트, 디뮤지엄


   디뮤지엄(D Museum)은 2018년 현재 22주년을 맞는 대림문화재단이 2016년에 한남동 독서당로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대림미술관으로 감각적인 전시를 선보이던 대림문화재단은, 한남동의 문화예술아지트로 자리매김할 디뮤지엄을 야심차게 선보였다. 대림문화재단의 계획대로, 디뮤지엄엔 평일 오후는 물론 저녁에도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좋아 두 손을 잡은 남녀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고, 친구들끼리 전시 관람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관람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하는 데에는 디뮤지엄이 성실하게 유지해오고 있는 문화프로그램도 한몫하고 있다. 정규문화프로그램인 ‘한남살롱’은 매월 다른 컨셉으로 영화나 콘서트, 워크숍 등을 마련하여 제공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도록 ‘ART & FIT’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또한 관람객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준비한 페인팅 워크샵인 ‘Museum Palette’도 인기가 많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다채로워 디뮤지엄엔 전시 관람 외에도 누릴 것이 참 많다.



날씨를 보고, 느끼고, 추억하다.



   ‘날씨(weather)’를 타이틀로 내건 이번 전시는 세 개의 chapter로 나누어져 전시되고 있었다. <Chapter 1. 날씨가 말을 걸다>에서는 햇살, 눈과 비, 어둠의 세 개 테마로 각각의 날씨에 대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Chapter 2. 날씨와 대화하다>에서는 파랑, 안개, 빗소리라는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전시를 하는데, 날씨를 시각, 청각, 촉각 등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체험공간을 마련했다. <Chapter 3. 날씨를 기억하다>는 날씨와 삶이 연결된 포토다이어리와 일상의 기록들을 전시해 두었다. 작품들 사이로, 문학 속 날씨에 관련된 글들을 발췌해 벽면에 써놓아, 전시에의 몰입도를 높인 것은 좋은 발상이었다.


 

   이 전시의 프롤로그 작품이었던 설치작가 크리스 프레이저(Chris Fraser)의 <리볼빙 도어스(Revolving Doors)는 프리즘을 통과한 것 같은 오색 찬연한 빛의 선과 면으로 아름다웠다. 관람자가 문을 여는 능동적인 참여를 하였을 때, 문이 움직이고 닫혔다가 열리는 것을 반복하며 내부의 공간은 커졌다가 점점 작아지는 빛으로 물들었다. 닫힌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던 빛들은 이젠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마음껏 가슴을 펴고 들어왔다. 색이 충만한 빛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 몸이 리듬감으로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햇살 테마의 GABWORK 영상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아른거리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간질거리는 햇살과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고, 열 갈래로 퍼졌다가 사라졌다 하는 햇살의 결을 느꼈다. 햇살이 가득한 잔디밭에 누워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바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잔잔한 물결 위에 반짝이는 보석같이 흩뿌려진 햇살 가루의 기억을 더듬었다. 햇살에 대한 나의 모든 추억은 따뜻했다. 햇살 아래서는 모든 것들이 에너지가 충만했었고, 환하게 밝았다. 숨길 것이 없고, 도무지 기분이 가라앉을 수 없게 만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햇살엔 있었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일지도 모른다
-한강, <희랍어 시간> 중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곳에 덧대어 놓은 나무판 위에 쓰인 눈과 비에 대한 비유가 가슴을 울렸다. 한강 작가의 표현‘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더 이상 눈과 비를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요시노리 미즈타니(Yoshinori Miutani)의 <<Yusurika>>시리즈는 몽환적이었다. 하얀 작은 덩이들은 부유하는 눈송이 같았다. 아웃포커싱되어 하얗게 번진 것들의 정체에 대해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들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작은 하얀 생명들은 눈송이로 보였다. 결국 바라는 대로 보이는 거다. 예브게니아 아부게바(Evgenia Arbugaeva)의 <<Tiksi>> 시리즈는 눈 쌓인 추운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없이 따뜻하고 서정적이었다. 오로라가 있는 풍경, 자기 몸보다 큰 하얀 풍선을 든 볼 빨간 노인, 강아지처럼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한 여자아이의 눈웃음. 그가 촬영한 고향 티크시(Tiksi)는 판타지 동화 속 원더랜드 그 자체였다.




   어둠 테마에 전시되었던 예브게니아 아부게바(Ebgenia Arbugaeva)의 <<Weatherman>>(2014)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러시아 북부 호도바리야(Khodovarikha) 기상 관측소에서 13년 이상 홀로 근무한 기상학자 슬라바 코롯키(Slava Korotki)를 3주간 지켜보며 촬영한 것이다. 사진의 배경은 온통 어둡고 작은 공간을 비추는 조명이 전부일 뿐인 사진들이다. 하지만 무섭다거나 불안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어둠은 절망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그는 어둠을 사용해 환상적이고 동화책 삽화 같은 장면들을 담아냈다. 그림인지 사진인지,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사진에 가까이도 가보고 멀리 떨어져서도 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빛나는 햇살만큼이나, 어둠 속의 작은 불빛과 강인하고 초월적인 표정을 가진 한 사람의 얼굴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불빛은 더 강해지고 진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파랑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거쳐, 안개가 몸을 촉촉하게 적시는 공간을 지나, 빗소리가 나는 검은 산책길을 걸었다. 사방이 검은 공간은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눈을 감고 걸어도 좋았다. 검은 공간속엔 확실한 숲의 기운이 있었다. 숲속을 산책하는 듯한 마음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숲을 상상하며 듣는 비의 소리는, 나뭇잎을 때렸다가 또르르 흘러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떤 빗방울은 미처 나뭇잎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스치듯 비켜 수줍게 흙바닥에 몸을 떨궜다. 청각이 시각을 열어주는 빗소리의 공간은 특별했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마크 보스윅의 필름을 보았다. 슬라이드 넘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찰칵, 찰칵, 찰칵. 급하지 않게 조심스레 넘어가는 슬라이드 소리는 느긋하고 편안했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도 이런 찰칵 소리와 함께라면 어떨까. 아무도 모르게 숨소리도 없이 지나가는 인생의 흐름이, 어느 순간 돌아보았을 때 급한 바람이 지나간 듯한 당황스러움을 남기지 않도록. 벽면에 투사된 이미지 속 빛의 색깔이 변했다. 어떤 사진 속에서는 빛의 색이 초록이다가 오렌지색이 되기도 했다. 다음 사진에서는 파랑이기도 하고 빨강이기도 했다. 빛은 여러 색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 인생처럼.



날씨의 맛에 대하여


   이 전시에 대해 알게 된 후에,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서 날씨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날씨의 맛 :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를 느끼는 감수성의 역사>라는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날씨를 느끼는 감수성에 역사가 있다니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선뜻 구입했다. 



   이 책은 날씨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날씨에 대한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감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문학교수, 지리학교수, 민족학자, 사회학자들이 쓴 글들을 엮어놓은 공동저서다.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 일기예보에 관한 글들이 모아져있다. 비가 오면 누군가는 평안함을 느끼며 감상에 젖고, 누군가는 우울하고 불편하다며 불평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 누군가는 빨래를 뽀송하게 말릴 수 있겠다며 좋아하고, 누군가는 얼굴이 타겠다며 자외선차단제를 꼼꼼히 바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집을 나선다. 첫눈이 펑펑 내리는 날, 누군가는 교통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며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첫눈 오는 날은 연인을 만나야 한다며 기쁨에 겨워 볼이 발그레해진다. 안개가 낀 어느 날, 누군가는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며 의미심장한 말들을 쏟아놓는다. 처한 상황에 따라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의 성향이나 경험에 의해 날씨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날씨에 대한 감정에 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날씨에 대한 발견, 혹은 지식이었다. 해의 존재는 생명에 필수불가결하고 생명의 근원임을 알던 사람들도, 무방비 상태의 노출로 인해 일사병과 화상이 많이 발생될 수 있음을 알게 된 후에는 해를 공포와 조심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해에 대한 노출을 조심스러워하던 사람들은 태양에 덜 노출되면 침울해질 수 있으며 햇빛을 많이 쏘이면 기쁨과 희망이 샘솟고 건강에도 좋다는 정보에 의해 1930년대 전후로 선탠을 적극적으로 즐겼다. 이후 햇빛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커져갔고, 비에 대한 혐오감도 강렬해져서 1961년 프랑스에서는 ‘우천 보험’이라는 것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이는 하루 평균 1.50프랑만 내면, 비오는 날에는 20프랑을 돌려주는 보험이었다고 하니 비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 이런 햇빛에 대한 강박적 취향은 2003년 프랑스에 살인적인 폭염이 나타나고 ‘주의보’ 발령이 지속적으로 내려지며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날씨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꽤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노트에 날씨별,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비교하여 정리해보았다. 우리가 날씨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비로 인해 우리는 장애와 불편, 불쾌감, 우울과 슬픔, 공포, 절망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섬세함과 감미로움, 일탈의 기쁨과 쾌감, 감성 충만한 느낌과 위로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안개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불안과 덫에 걸린 느낌, 우울함과 혼돈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반면, 신비롭고 은밀하며, 평화롭고도 고요하고, 부드러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겪는다. 날씨는 이렇게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는 내일의 내 감정과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일기예보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기예보는 우리 삶을 예측가능하게 함으로써 안정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반작용도 낳았다. 


   책을 덮으며 날씨가 어떠하든 나 스스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흐린 날에도, 강렬한 햇빛으로 몸이 온통 끈적해진 날에도, 비가 와서 우산쓰기가 거추장스러운 날에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찾아봐야겠다. 날씨와 관련하여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 중에 내게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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