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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Jul 09. 2018

롯데뮤지엄: 알렉스 카츠, 아름다운 그대에게

세계 10대 거장 예술가, 알렉스 카츠의 독창적 초상화 속으로

[미술관] 롯데뮤지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월-목요일 10:30AM-8:00PM
금-일요일 10:30AM-8:30PM
TEL. 1544.7744
http://lottemuseum.com
주차가능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쏟아지듯 내리는 비가 아니라 흩뿌리듯 내리는 비였지만, 금세라도 몰아서 내릴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을 보고 우산을 챙겼다. 비가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가까이 있다. 맑고 건조한 날을 더 좋아하는 나와 그는 너무 달라, 여행을 가면 그날의 날씨로 인한 기분의 편차가 커질 때가 종종 있다. 나는 비 내리는 날에 걸을 때마다 다리 뒤쪽으로 빗물이 튀는 것이 싫고, 눅눅한 것도, 그리고 기분을 우울하게 가라앉히는 분위기도 별로다. 하지만 오늘 비오는 날의 창가에서 참 좋은 날이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을 한 사람을 떠올리며 이 비도 꽤 괜찮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았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롯데월드타워는 멀리서도 볼 수 있어 내가 가야할 오늘의 목적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건물 윗부분은 온통 운무에 싸여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물에 적신 솜 한 움큼을 찢어서 벌려놓은 것 같은 구름은 점점 짙은 색으로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롯데월드타워의 아랫부분을 감싸 안은 롯데월드몰의 입구 위쪽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목을 길게 뺀 우아한 여인의 프로필 이미지가 ‘ALEX KATZ’라는 간결한 글자와 함께 보였다. 롯데월드타워를 올라가는 길은 롯데월드몰과는 달리 조용했다. 엘리베이터의 7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롯데뮤지엄에 내렸다.



LMoA, LOTTE MUSEUM OF ART


   2018년 1월에 롯데뮤지엄은 ‘전세계 현대미술의 역동적이고도 새로운 움직임들을 소개하겠다’는 열망으로 거대한 마천루 롯데월드타워의 7층에 개관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알렉스 카츠 전, 아름다운 그대에게>로, 개관전이었던 <댄 플래빈, 위대한 빛>에 이은 두 번째 전시다. 많은 미술관들이 단독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롯데뮤지엄은 7층에 위치하고 있어 공간 활용에 있어 더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 고민의 결과는 내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몇 걸음 들어섰을 때, 실내이지만 골목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바닥은 그레이컬러로, 그 위에는 횡단보도와 방향표시기호가 화이트컬러로 그려져 있었고, 복도 중앙에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STOP’사인과 ‘ONE WAY’사인 등이 부착된 기둥이 세워져있었다. 길거리에서 바라보는 쇼윈도우처럼 느껴지는 한쪽 벽면에는 짧은 어닝 아래로 알렉스카츠의 그림 프린트가 대형으로 부착되어 있었다. 쉽게 전시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게 하는 로비였다.



‘가장 뉴욕적인 화가’ 알렉스 카츠(Alex Katz)


   알렉스 카츠(Alex Katz)는 내겐 낯선 화가였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니 한국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창적인 초상회화를 구축하여 세계 10대 거장에 꼽히는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 태어난 그는 1946년 맨하탄 쿠퍼 유니온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그는 뉴욕으로 대변되는 도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을 우아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특히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만들어냈는데, 그 특징은 한 가지 색채로 칠해진 대형 화면 위에 가까이 클로즈업하여 크롭한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다. 배경은 단색으로 단순화시켰고, 이는 그림에서 공간감을 제거했다. 단색의 배경은 인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고, 부분적인 인상의 강조를 통하여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1960년대 이후에 빠르게 변화하던 뉴욕에서 그의 작품이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는지는 그의 작품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디테일보다 분위기로 말한다. 그는 움직임을 포착한 그림을 즐겨 그렸고, 부분으로 전체를 유추하게 하는 그림을 그려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관람자가 전체를 새롭게 구성하게 한다.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아도 부분을 온전히 느낌으로 전부가 되게 한다. 알렉스 카츠는 ‘클로즈업-크롭’ 기법을 통해, 초상화 속 인물이 고요함 속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 인물이 가진 매력에 주목하게 한다.


   <로라>시리즈와 <댄서>시리즈는 그의 초상화에서의 특징적인 움직임의 포착과 표현의 최소화, 클로즈업 후 강조하는 기법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어깨선과 감은 눈만으로도 모델을 둘러싼 전체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대형 그림들이 시선을 강탈했다. 카메라 필름의 프레임처럼 가로로 긴 띠 형식의 화면배열을 한 ‘프리즈(Frieze)’ 구성의 작품들은 댄서의 움직임을 영상처럼 재구성하게 해주었다. <CK> 시리즈와 <Coca-Cola Girl>시리즈는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도슨트의 설명 후에 다시 작품 앞 의자에 앉아서 물끄러미 작품 하나하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컷-아웃’ 작품들은 특별히 보는 재미를 더했는데, 그것들은 인물 이외의 배경을 제거하고 작품이 놓인 그곳이 배경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평면의 알루미늄판 위에 그림을 그린 후 모양대로 잘라낸 평면적 조각이었다. ‘컷-아웃’ 작품들은 관람객인 나와 비슷한 크기로 그림을 함께 바라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였고, <CK> 연작 사이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9명의 여성들을 표현한 ‘컷-아웃’ 작품은 전시장에 리듬감을 더해주었다. 이 외의 다른 작품에서 사용한 그의 오렌지색과 연두색의 배경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강렬한 색 가운데 그려진 클로즈업된 얼굴은 컬러에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배경색의 매력으로 멀리 있던 나를 끌어당긴 그림은 배경이 사라진 인물만 남겼다.





알렉스 카츠의 영원한 뮤즈, 아다(Ada)



   알렉스 카츠의 한 단 명의 뮤즈이자 아내인 아다(Ada). 그들은 1957년에 만났다. 그는 서른 살에 만난 그녀를 아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그리고 있다. 아다는 우아함과 신비로움을 가진 알렉스 카츠의 뮤즈였다. 그녀가 그려진 그림 속에서 나는 그가 그녀를 통해 느꼈을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250여점의 작품 속에 그녀를 담았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젊은 시절의 알렉스와 아다의 행복한 미소, 아다를 그리는 알렉스의 모습,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바짝 붙어선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았다. 한 여인을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평생을 그 여인을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 그린 그의 그림에서 뭉근한 사랑이 느껴져 행복했다. 아다의 옆에 있을 때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찾았던 한 사람, 알렉스 카츠.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 속에서 본 백발의 아다의 얼굴과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화가가 사랑한 모델의 이야기


   겟썸커피에 자리를 잡았다. 도톰하고 부드럽게 잘 구워진 쿠키 하나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가져갔던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이주헌 미술평론가의 <그리다, 너를>이라는 책이다. 화가가 사랑한 모델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전시와 어울릴 것 같았다.



   이 책은 사람이라는 우주를 그린 화가들과
그 화가들의 우주가 된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그 가운데서도 ‘뮤즈’로 불리는,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모델들에 대한 책이다.



   라파엘로,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 모딜리아니 등 17명의 화가들의 사랑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모델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림으로는 익숙하지만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여인들의 이야기여서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라파엘로의 비너스로 잘 알려진 마르게리타, 티소의 연인 캐슬린 뉴턴, 당대 많은 화가들의 미적 이상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와 같이 누가 보아도 감탄사를 부르는 외모를 가진 모델이 있는가하면,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슬픈 초상을 한 마르트도 있었다. 첫 아내와 사별한 뒤 재혼한 엘렌 푸르망에게도 여전히 충실한 남편이었던 루벤스의 외도 없는 사랑이 아름다웠고, 존 러킨스와의 불행한 결혼생활 중에 밀레이를 사랑하게 된 에피 그레이의 삶이 안타까웠다. 까미유 동시외의 죽음까지 그려냈던 모네의 슬픔이 느껴졌고, 죽음으로 끝난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사랑과 운명이 애절했다. 쿠르베와 휘슬러 두 사람의 뮤즈이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자 조애나를 이해해보려 노력도 해보았고,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태도로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었던 클림트의 인생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천재적인 재능과 명민함으로 로댕과 함께 했던 까미유 클로델의 정신병 발병과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에 관한 글을 읽으며 잠시 아뜩해지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화가와 모델 사이의 관계가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지탄받고 핍박받았으나, 지금은 아름답게 느껴지는 예술작품으로 그 흔적을 남겼음은 지독하고도 슬픈 아이러니다. 왜 자극적이고 위태한 상황에서 예술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지는 걸까? 지고지순하고 윤리적으로도 온당한 사랑 속에서 최고의 예술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욕심일까?




   빗방울이 맺힌 창을 바라보았다. 식은 커피를 들이키며, 뿌옇게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건 꽤 입맛이 쓴 일이었다. 감상이 지나치면 이성을 잠식하게 된다. 무엇에든 중도를 잘 지키고, 중심을 잘 잡는 일은 중요하다. 흔들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흔들린다고 모두 쓰러지는 건 아니다. 삶은 균형을 잘 잡는 일, 마음이 시키는 일을 이성이 잘 조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누군가에게 죽음으로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쓰디 쓴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된다. 충동을 견디어내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커피를 다 마신 컵을 내려놓고 우산을 챙겨 나오며, 알렉스 카츠의 그림이 쨍한 햇살 속에 널린 빨래처럼 경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그림엔 감성이 있으되 우울하지 않다. 투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작품을 다시 떠올리며 빗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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