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부터 거리미술까지
[미술관] K현대미술관
서울 강남구 선릉로 807 K현대미술관
화-토 10:00AM-7:00PM
일 10:00AM-6:00PM
월요일 휴무
TEL. 02) 2138-0952
http://kmcaseouol.org
주차가능
영화를 한 편 봤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였다. 영화감독 아녜르 바르다와 포토그래퍼이자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JR이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를 누비며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벽에 붙이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건물 자체가 대형 인물사진으로 작품이 되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을 본 그날 밤, 궁금함을 참지 못해 바로 다음 날짜의 조조영화표를 예매했다. 55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어우러짐과 나이와 상관없이 바르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열정과 아이디어, 그리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거침없는 JR의 에너지가 뜨거웠다. 그에 더해 사람들의 얼굴과 그 인생을 대하는 그들의 진중함과 감성이 이 영화를 예술로 만들었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바르다를 처음 만났고, JR을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본 그날, JR의 작품 이미지도 볼 수 있다는 전시회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JR을 조금 더 알기 위해 찾은 미술관, 청담 K현대미술관이었다.
젊은이들에게 접근성 높인 흥미진진한 미술관
K현대미술관은 2016년 12월 16일 개관했다. 개관당시엔 강남 한복판에 미술관이 들어서고, 매일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게 한다는 운영방침이 획기적이었다. 뉴욕의 MoMA(뉴욕현대미술관) 혹은 파리의 ‘팔레 드 도쿄’와 같은 한국의 현대미술관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관람객에 대한 생각을 우선순위에 두고, 누구라도 언제든지 재미있게 예술을 즐기고 싶을 때 방문하고 싶은 곳이 되는 것이 K현대미술관의 개관목표라고 했다. 지금은 관람시간이 오후 6시 내지 7시로 축소되어 아쉽지만, 드디어 그 미술관에 가보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름의 한가운데로 향하던 어떤 날의 뜨거운 날씨는 복잡한 도로위에서 유난히 도드라졌다. 도산공원의 넓은 길을 통과해 압구정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옷의 디자인과 색깔이 그랬고,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보였다. 젊음이 스미고 차고 넘쳐, 이제 곳곳에서 그 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좁은 거리가 생기 있었다. 리듬이 살아있는 젊고 어린 발걸음이 보기 좋았다.
비극 속에서 예술로 피어난 낙서들
현재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에게 내재된 ‘괴짜성‘을 탐색하도록 현대미술의 모든 매체를 총망라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 Geek Zone>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관람한 <위대한 낙서展: OBEY THE MOVEMENT>다. 전시제목만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포스터도, 전시입구도 오색빛깔로 현란했다. 정해진 규칙과 원리에 맞게 잘 그려내려 했던 수백 년 전의 작품들에서는 전반적으로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면, 현대미술에서는 모든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각자의 개성을 분출하는 발산적인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호불호가 더 분명하게 갈리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사실 그라피티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워낙에 여백과 깔끔함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 클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함께 누리는 벽을, 보는 사람의 다양한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표현을 위해 사용하는 그들에 대해서 불만과 거부감이 있었다. 그라피티가 있는 곳은 주로 외진 공간이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지저분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라피티가 내게 전해준 감정적인 흔적은 ‘분노’와 ‘야유’같은 것이었다. 스프레이의 컬러와 분사방식으로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하고 톤업되게 칠해진 색깔, 충동적으로 그린 듯 보이는 선의 자취, 그리고 이리저리 튄 스프레이 물감의 파편들은 나에게는 혼란스러움일 뿐이었다. 무섭게 혹은 잔인하게 표현한 그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그것들을 보면서 눈을 감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
이번 전시에 크게 기대하는 바는 없었다. 어차피 수많은 그라피티들을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듯 보며 그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그저 느껴보려 했었고, 그것도 안 될 때는 무심하게 지나쳐버렸듯이 이번 전시에서도 그럴 마음이었다. 어떤 거리의 예술가는 스프레이로 자기감정과 의향을 여과 없이 분사했을 테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자기 마음 같다 느끼고, 누군가는 그것을 타인의 감정으로 인정하고 그대로 지나갈 것이다. 나도 내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가 흘러나오는 펑키한 음악 속에서 어지러이 널려있는 페인트통과 스프레이, 사다리, 그리고 물감이 잔뜩 묻은 작업복과 운동화를 보았을 때, 예술가의 정열과 땀이 느껴져서 순간 숙연해졌다. 그라피티를 거리에 질러놓은 감정쓰레기더미가 아니라 고민과 의도를 담고 있는 예술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찾아왔다.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현대적 의미의 그래피티는 1970년대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에서 태동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사회, 정치, 경제적인 역동의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베트남 전쟁의 완전한 패배로 인해 쇠약해지고 위기 속에 있던 그 대도시는 심각한 빈곤과 인종차별 등 여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때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태어난 대중적인 도시미술이 바로 그라피티였다. 그들은 자신이 직면한 삶을 랩과 그라피티 등으로 표현했다. 그라피티의 위대함은 차별과 편견 없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점에 있다. 예술이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어디서나 비용을 치루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뉴욕 기차칸에 스프레이로 Tagging(사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라피티는 점차 스타일을 입고 예술적으로 변모해갔다. 이 전시에서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진이나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으로 접하고 또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그라피티가 벽에 마구 쏟아놓은 치기가 아니라 생각을 담은 이미지임을 알게 되었고, 그라피티를 보는 나의 편견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함께 현대적 그라피티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선구자인 Crash의 작품을 보며 거침없는 선과 결에 가슴이 시원해졌고 솔직하고 대담한 컬러 사용에 마음을 뺏겼다. 영국 스트리트 아트의 선두주자이며, 검은 수트에 중절모를 쓴 또 다른 자아 ‘The Vandal’을 스텐실 기법으로 표현하는 Nick Walker의 작업 영상을 보며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JonOne의 다이나믹한 패턴과 알록달록한 컬러, 흘러내림(Drips)을 보며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그의 작품 곁에 머물렀고, JR의 TED 강연을 들으며 “세상을 바꿔봅시다”라고 말하는 그의 다부지고도 따뜻한 의지를 보았다. 각 사람의 얼굴을, 다수 속의 무명의 얼굴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를 품은 가치 있는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그의 작품 이미지를 보는 동안 울컥한 감동이 밀려들기도 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Obey Giant의 작품들을 보며 예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타이포그래피와 서예에 기반을 두고 작업한 Tanc의 작품에서 동양과 서양, 문자와 색깔이 혼합된 하모니를 보았다. ‘무슈 샤’ 혹은 ‘미스터 샤’라고도 불리는 M. Chat의 고양이를 볼 때는 우리나라 민화 속 호랑이가 겹쳐 보였고, 해학적인 웃음과 앙증맞게 귀여운 하트 모양 코가 유난히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로고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표현한 “Liquidated Logo”시리즈로 유명한 Zevs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에 대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명문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나왔다. 편견이 깨지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기는 것은 인생 앞에 진실하고 성실하게 마주선 누군가와 몰입하며 이야기할 때 종종 찾아온다. 예술에 대해서도 그렇다.
도시미술, 그라피티에서 거리미술까지
미술관을 나와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창가에 앉았다. 조금 흐렸던 그날, 햇살은 그럼에도 창가에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배경으로 책을 읽었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중 하나인 <도시미술_그라피티에서 거리미술까지>라는 책은 그라피티에 대해 궁금하거나 불편한 편견이 있는 사람이 입문용으로 읽기 좋은 책이다.
그라피티 아트란,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그라피티 아트는 1971년경 뉴욕을 뒤덮은 ‘타키183’이라는 낙서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라피티는 소수 특권자들만 특정 공간에서 보던 미술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거리로 끌어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그라피티는 민중을 위한 미술이기도 했지만, 민중에 의한 미술이기도 했다. 그것은 공공미술과는 달리 주문에 의한 유통과정, 후원, 합법적인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라피티는 생각보다 덜 이기적이라는 글에 동의한다. 그라피티 아티스트에게는 금전적 이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돈이 되는 예술보다, 그저 표현되는 예술을 추구한다. 자신의 이름보다 자신의 작품으로 말하기 원한다. 작품만으로 인정받고 인식되길 원한다(모두가 그런 생각은 아닐지라도). 이는 뱅크시의 “내 목표는 내가 아니라 내 작품들이 얼굴을 갖는 것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에서는 파리 팔레루아얄의 명예의 중정의 줄무늬 조형물로 유명한 ‘다니엘 뷔랑’, 단순하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모티프들을 주로 그린 ‘키스 헤링’, 프로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로 유명한 ‘오베이’, 쥐의 형상과 스텐실 기법으로 장난스러움으로 포장하여 권위에 도전하는 작품을 그린 ‘뱅크시’, 흘러내리는 로고로 인상적인 작품들을 남긴 ‘제우스’ 등의 작품과 스토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거리미술을 좋아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된, 아니 최소한 호의적이고 흥미진진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성 있는 예술은 아름답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