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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Jun 22. 2018

제주현대미술관:김흥수 상설전 & 플라스틱생물

뜻밖의 미술(Unexpected Art)

 [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시 한경면 저지14길 35
매일 9:00AM-6PM (10월-6월)
매일 9:00AM-7PM (7월-9월)
월요일 휴무, 명절 휴관
TEL. 064.710.7801
http://www.jejumuseum.go.kr
주차가능
관람료 : 성인(25세-64세) 2,000원 /
청소년(13세-24세) 1,000원 / 어린이(7세-12세) 500원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여행지에 있는 미술관을 먼저 검색하고 마음이 동하는 곳을 찾아가 꼭 관람을 하곤 했다. 미술관이나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많았을 정도로 나의 여행에 있어 미술관 방문은 중요한 일정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제주도다. 여행책자에서 제주에 있는 미술관을 찾아보다가 몇 군데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제주 현대미술관>이었다. 주차를 하고 직선으로 뻗은 짧지 않은 산책길을 걸어가니 진회색의 모던한 건물이 보였다. 6년 전 쯤 왔을 때에 인상적으로 보았던 최평곤 작가의 거대한 조형물이 건물 위에서 여전히 손을 내밀며 환영하고 있었다.



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은 2007년 9월, 제주특별자치도의 문화예술실현의 일환으로 개관했다. 중간산 마을인 저지리에 위치한 제주현대미술관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다. 현대미술관이지만, 도시적인 느낌보다 자연 속에서 누리는 편안함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본관 건물에서는 상설전과 특별전이 열리고, 전시를 본 후 외부의 정원으로 나가면 푸른 잔디 위에 흩어져있는 조형 작품들 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김흥수 화백, 그리고 플라스틱 생물


   상설전으로는 김흥수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고, 얼굴도 낯익어서 남편에게 먼저 그분을 아는지 물어보았고 남편은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남편의 김흥수 화백에 대한 기억은 1992년, 73세의 나이로 사제지간으로 만난 장수현 씨와 43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것으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지금 들어도 충분히 놀랄만한 결혼이다. 더 놀라운 건 아내가 난소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김흥수 화백은 아내를 못내 그리워하다가 95세가 되던 2014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의 우려처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짧은 결혼생활로 끝나지 아니하고, 20년을 서로 아끼고 지켜주며 살았던 두 분의 사랑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김흥수 화백은 사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결혼보다 미술사 속의 주요인물로 기억되어야 할 화가이다. 그는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40년 도쿄 예술대에 입학했으며, 1955년, 36세의 나이였던 그는 해방 후 한국인 화가로는 최초로 파리유학을 떠났다. 그림 속에서 음과 양, 혹은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현대미술의 새 양식인 하모니즘(harmonism)은 1977년 미국에서 김흥수 화백에 의해 발표된 미술사조이다. 추상미술의 등장 후에 구상과 추상이 서로 반복적으로 상극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그 상반되는 것들이 그림 속에서 결국 조화되는 것을 표현하는 미술사조를 선언한 것이다. 한국 화단의 자랑이기도 했고, 사랑과 열정의 화가라는 의미에서 ‘한국의 피카소’라고도 불리던 김흥수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은 나에게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는 곳이 되었다. 진하고 강렬한 색감, 그림 속에 그려진 팔레트 속의 다양한 컬러들, 오목하고 볼록한 작품의 질감이 뜨겁고 열정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색하는 여인> 작품은 팔을 턱에 괸 채 생각에 잠긴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고, 차갑고 뜨거운 색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퍼지는 배경이 고혹적으로 느껴졌다. <사랑을 온 세상에>라는 작품은 20년간 작업한 대형 작품으로, 선이 고운 여성이 승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분홍빛 배경에 담았다. 이 역시 모자이크로 된 작품이고, 승무하는 여성의 부드러운 컬러와 대비되어 작품의 오른편에는 검은색 바탕에 다채로운 색깔의 팔레트 속 물감들을 그려놓았는데, 부딪혀 보일 수도 있는 것들이 잘 어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별전으로는 <생태미술 2018_플라스틱 생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제주 해변을 걷다가 줍게 된 쓰레기 중에서 부표로 사용되던 플라스틱 조각들을 찾아내어 아름다운 바다를 소망하며 돌탑을 쌓듯 부표를 쌓아올린 작품, 제주 바다에서 사용되던 그물과 밧줄 등을 이용하여 소파를 만든 작품, 플라스틱으로 인해 병들어가고 몸살을 앓는 지구를 표현한 작품, 멀리서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결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위태로운 플라스틱 섬을 보여주는 작품 등을 보았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파괴에 대해서 아름다워 보이는 작품을 통해 가슴 아프게 느끼며 앞으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어떻게 아끼고 사랑해야할지를 생각했다.


<뜻밖의 미술(Unexpected Art)>을 만나다


   제주에서 읽고 싶은 몇 권의 책을 챙겨갔는데 제주현대미술관에 갈 때는 <뜻밖의 미술>이라는 책을 들고 갔었다. 미술관의 정원의 기댈 곳을 찾아 앉아 한가로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조된 예술을 만나고 싶었다. 이 책의 부제는 ‘미술관 밖으로 도망친 예술을 만나다’이다. 미술관이 아닌 다른 공간-예를 들어, 도심 속 야외 공간, 숲 속, 호수 위 등의 공간-에 설치되어 빛나던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 모아놓은 재미있는 책이다. 굳이 작가설명이나 작품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미지만 보아도 눈이 동그랗게 되고, 가슴 속으로 신선한 기운이 퐁퐁 터지고 샘솟듯 올라오게 해주는 비타민 같은 책이었다.


   제니 채프먼과 마크 레이글먼이 옆의 낮은 건물로 인해 노출된 높은 건물의 측면에 마치 오두막 한 채가 떠있듯이 설치한 <매니페스트 테스티니>, 미러볼을 밤하늘에 띄워 미러볼을 통해 반사된 빛이 하늘에 별처럼 흩뿌려지도록 설치한 미셸 드 브로앵의 <에펠 탑의 주인>, 대형 거울을 바닥에 놓아 거울에 맞닿은 건물이 모두 반사되도록 놓은 후, 그 거울 위에 위치한 사람들이 마치 중력의 법칙에 과감하게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레안드로 에를릭의 <건물>과 <석고문>, 친밀한 유년의 소재인 러버덕을 세계 곳곳의 호수에 띄워 호수를 목욕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버린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고무오리(Rubber duck)>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독창적인 작품들이었다. 한국 작가의 작품도 있었는데, 이명호 작가의 <나무>시리즈다. 캔버스 위에 자연을 묘사하거나 자연의 일부를 붙이는 것은 보았지만, 흰색의 대형 캔버스 액자를 나무 뒤에 세워, 풍경 안에 한 그루의 나무가 살아있는 그림이 되게 하는 그의 작품을 보니, 새삼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격하게 되었다. 환상적이어서 눈이 황홀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숲에 설치된 늑대 조형물의 표면이 모두 거울조각으로 되어 있어서 모든 빛이 그 몸에서 반사되어 눈부신 모습의 고노이케 도모코의 <거울 붙은 늑대>, 일시적으로 몇 초 동안만 실내 공간에 구름을 생성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한 베른드나우트 스밀더의 <아스프르몽의 비구름>이 그러했다. 오가키 미호코의 <은하수-숨>이라는 작품을 보면서는 잠시 그 아름다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온몸에 수많은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조형물 안에서 나오는 빛이 모든 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발산되는 모습이었다. 그 빛들은 그 작품이 놓인 검은 공간에 수많은 별빛들을 수놓았다.


인간은 살과 뼈 같은 물질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천문학적 수의 감정들로도 이루어져 있다.
구멍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감정들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폴 영의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오두막>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파파와 예수, 그리고 사라유가 주인공을 데리고 높은 언덕위로 올라 간 장면이었다. 해가 지고, 멀리서 수많은 색깔의 아름다운 빛들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 빛 중의 하나가 다가오는데, 그것은 돌아가신 주인공의 아버지였다. 우리가 타인과 나 자신을 보는 외형과 달리, 우리의 실제모습은 다양한 색의 빛으로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가키 미호코의 <은하수-숨>이라는 작품을 보며 내 안에 빛이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각화하여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 언어들을 억압하여 내 온몸의 숨구멍을 막는 일은 내 안의 빛을 가두는 일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빛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통해 세상에 작지만 고귀한 수많은 빛자취들을 남기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나는 그 작품 속 인간을 보기보다 그 사람을 통해 나오는 빛을 본다. 나의 삶이 빛을 머금고만 있지 않고 그 빛이 세상에 퍼지도록 할 수 있는 구멍으로 더 촘촘히 한껏 차서 가득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벅차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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