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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Sep 12. 2023

아파보지 않고서는

나는 당신을 짐작할 뿐입니다.



   이른 아침, 평소처럼 눈을 뜨고 침대에 뉜 몸을 일으키는데 주위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어질어질한 느낌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울 정도의 심한 어지럼이었다. 가만히 수초 간 기다려보니 좀 나아지는 듯해서 일어나 걸어보았다. 발을 딛을 때 붕 떠있는 느낌이었고, 잠시 몸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며칠간 컨디션은 매우 저조했다. 머릿속은 멍했고, 속은 메스꺼웠다. 어지럼은 고개를 돌리거나 침대에 누워 자세를 바꿀 때 악화되었고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한동안은 가만히 있어야 했다. 흔히 '이석증'이라고 불리는 '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내가 이러한 증상을 경험한 후로는 유독 어지럼증과 구역감을 주소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환자들의 불편감이 바로 내가 느껴본 증상이라 환자가 굳이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뭔지 알겠는 거다. 같은 경험을 하고 있거나 해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공감은 저절로 전해진다. 내 눈빛과 말은 '내가 당신의 고통을 알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은 그러한 증상이 이미 호전된 후이지만, 나는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내원하면 내가 느꼈던 증상을 다시 소환해 공감하곤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도 별로 없이 자랐다. 나에겐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동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핵황달이 나타나 뇌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다. 다섯 살 때까지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고, 신체도 그 또래의 아이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작은 몸의 동생은 주로 병원에서 생활했고 이후 백혈병도 진단되었다가, 결국엔 폐렴으로 마지막 눈인사를 하고 떠났다. 동생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으로 돌본 부모님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는지, 나는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자랐다. 지금까지도 흔한 독감이나 장염에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고, 큰 수술을 받아본 적도 없다.


   의사로서 공부하고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대부분의 증상들을 그저 짐작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느껴본 증상이라면 그것을 증폭시켜 상상해 보곤 했다. 전혀 알 수 없는 증상도 있었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증상도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증상들 앞에서 나는 동일한 경험을 통한 공감보다는 다분히 이성적인 이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적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니, 더듬어 이해할 뿐이었다.


   본인이 처방하는 약들을 가능하면 다 먹어보고 부작용까지 경험해 본다는 선배가 있었다. 나는 약을 많이 쓰는 걸 썩 좋아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처방하는 편이다. 또한 약 먹는 걸 즐겨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 선배처럼 하지는 못했지만, 그 선배의 태도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끔이지만 나도 소소한 몸의 아픈 신호가 올 때는 이런저런 약을 복용하고 얼마나 효과가 나타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경험해 보곤 하는데 진료를 할 때 도움이 많이 되곤 한다.



아파보지 않고서는...
그래요,
나는 당신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타인의 아픔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결코 전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생김새가 모두 다르고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처럼, 같은 진단명과 같은 이름의 증상으로도 우리는 제각기 다른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니 타인의 아픔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같은 아픔을 겪는 당신이 참 힘들 거라는 진심을 다한 짐작과 다 알지는 못해도 내가 그 고통 속에 있는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지하며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돕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다.


   누구나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아픔을 겪는 이의 곁에 선다. 따뜻한 눈빛, 온기를 전해주는 손길, 그 고통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마음만으로도 고통은 나누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나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섣불리 내 고통을 이해하는 척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힘이 들다. 아는 고통 앞에서는 함께 아파하고, 모르는 고통 앞에서는 잠잠히 그 고통을 겪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 고통이 너무 오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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