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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Sep 22. 2023

부디, 아프지 말아요.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아픔 옆에서



   "아직 쉬고 있어요? 취직은?"

   "네, 찾고 있어요."

   "쉽지 않죠? 마음에 맞는 일,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는 게."


   자주 보지 않았으면 하는 환자들이 있다.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조절만 잘 된다면야 2개월 혹은 3개월마다 만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중간에 다른 아픈 곳이 생겨 내원하면 더 자주 보게 된다. 이렇게 빈번히 보게 되는 환자들 중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부디 다음으로 약속된 내원일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든다. 이 30대의 젊은 환자에게도 그런 마음이었다.


   처음 만난 날, 위장 장애가 심하여 내 진료실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뭔가를 질문하면 대답을 그렇게 곱게 할 수가 없었다. 상냥한 사람이었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로 바빠서 평일엔 내원이 힘들어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 위내시경과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하고 결과를 설명하면서 그녀를 더 만났고, 그녀의 지인들이 아플 때 함께 찾아온 그녀를 몇 번 더 대면했다. 얼굴과 이름을 온전히 기억할 정도로.


   다른 의원에서 당뇨와 고지혈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그녀의 건강관리를 내가 하게 되면서 나는 그녀의 몸 상태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 가지 약물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체중 감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너무 바빠서 운동할 여유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도 예상 내원일보다 종종 자주 내원하곤 했던 그녀는 관절통, 두통, 위장 증상까지 아픈 곳이 참 많았다.



그랬구나.




   어느 평일에 그녀가 내원했다. 평소 토요일에만 내원하던 그녀라서 휴가인가 싶었는데,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이유를 다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나도 더 질문하지 않았다. "그랬구나, 잘했어요." 다만, 이 말만 건넸다. 그녀의 얼굴에 전보다 좀 더 평온한 빛이 도는 것 같았지만,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좋은 직장, 마음에 드는 일을 만날 때까지 푹 쉬면서 건강도 잘 챙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러려구요." 라고 말하며 고개를 들어 살짝 지어주던 미소가 보기 좋았다.


   우리의 삶은 늘 나이 듦으로 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움직이는 삶의 한순간에 내가 그녀를 본다. 30대의 그녀를 보며, 30대의 나를, 더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린다. 흐르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거슬러 과거로 향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고 감상적이던 내 모습을 만난다. 사랑, 관계, 진로 등의 여러 문제들 앞에서 고민하고 때론 아파하며 끊임없이 최선을 찾으려고 애를 쓰던 나를 만난다. 그런 나에게 육체적인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 아래에 몸의 아픔까지 감당해야 하는 그녀를 다시 보니 그 마음의 어려움이 더 큰 무게로 느껴지는 거다.



우리의 목표는 약을 끊는 거예요.




   젊은 환자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지만, 생활습관 교정으로 충분히 좋아질 여지가 있는 만성질환일 경우에 이렇게 말한다. 한번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 젊은 날의 우울함이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의 목표'라고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그 환자를 향한 나의 목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의사는 내 앞에 나타난 환자의 질환이 잘 치료되길 원한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어도 젊은 날에 경험하는 치열하고 절박한 문제들로 앓고 있을테니, 부디 진단되는 그 어떤 질환도 없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이다.


   나의 20대는 다소 고단했고, 나의 30대는 작은 두 생명 곁에서 희망찼고, 지금의 40대는 자유롭다. 이 자유함은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함인 것 같다. 내 안에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게 비워둔 공간으로 인한 자유함이다. 타인의 고통을 밀어내지 않고 잠시라도 끌어안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서의 자유함,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너무 다그치지 않고 너그러워지는 자유함이다. 나의 이런 시기에, 고단했던 지난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해주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누구나 터널 같은 시기를 보낸다. 그리고 당신도 결국엔 그 터널을 통과할 것을 믿는다.


   젊은 날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나는 "젊은 날을 춤춰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움츠러들지 말고, 괴로움에 함몰되지 말라고, 어깨 쭉 펴고 고개를 든 채 팔을 활짝 펼치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나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그 모습 그대로 참 예쁜 시기, 당신은 지금 그런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라고, 거울을 보고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을 자신에게 보여주라고. 당신의 젊은 날을 춤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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