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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기제(4)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원제 : 여성 시청자의 가치관 변화 속 신데렐라 드라마의 성공 기제 - <사내맞선>을 중심으로


III. 결론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었던 2016년 전후를 기점으로 한국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한국 드라마에서 신데렐라가 사라졌다”, 주간조선, 2016년 7월 22일 입력, 2022년 6월 5일 접속,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26) 그것은 로맨스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인 여성 시청자들이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직간접적으로 커졌으며, 하나의 문화상품인 드라마는 소비촉진이라는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그러한 목소리 변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가 서사를 주도하게 되면서 남성 캐릭터의 역할은 자연스레 축소되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역할이 반전된 신데렐라 드라마까지 등장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것이 2022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드라마계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내맞선(2022)>의 대성공은 낯선 듯 낯설지 않다. 신데렐라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장르라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증명된 바 있기에 그리 놀랍지 않지만, 그 시기가 하필 2022년이라는 점이 묘하다. 2016년을 기점으로 드라마에도 페미니즘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으니, 단순히 생각하면 시간이 갈수록 여성 캐릭터는 더욱 다층적이고 주체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그것이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금 남자주인공과의 결합을 통해 신분이 상승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해 심지어는 최근에 침체되었던 로맨스 드라마 시장에서 큰 성과까지 일구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신데렐라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흥미 유발 기제가 여전히 여성 시청자들에게 유효하다는 점이 발견된다. 여타의 로맨스 클리셰들처럼, 신데렐라 서사 역시 클리셰로서의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그 기제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여자주인공이 외모, 매력, 재력 모두를 갖춘 남자주인공과 로맨스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얻는 대리만족에 기반한다. 그것을 남성을 통해 신분 상승하려는 욕구로 설명하려는 논의가 있었고, 분명 신데렐라 서사는 자본주의, 젠더 권력 차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청자들은 신데렐라가 결말에서 왕자님을 통해 계급을 상승한다는 결말 이상으로, 로맨스를 통해 권력 차이를 봉합, 내지는 전복해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제는 <사내맞선> 이전의 2000년대, 2010년대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줄곧 사용되어왔으며, <사내맞선>에서도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매달리는 장면 등을 통해 그 역사성을 이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신데렐라 드라마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권력 차를 로맨스로 봉합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어찌되었든 남성 캐릭터 없이는 획득될 수 없으며, 그것 자체로 남성 캐릭터에게 의존적인 서사이고 지금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를 구성하는 세부적인 요소마저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 경우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그것은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서 어긋나는 까닭에 불편감을 유발하며, 시청자들의 비판적 감각이 첨예해질 경우 로맨스 서사에의 몰입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이 드라마는 신데렐라 서사가 가지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요소를 은폐하거나 상쇄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신데렐라 서사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신데렐라에 해당하는 여자주인공을 당당하고 능력 있는 캐릭터로 형상화하여 신데렐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신데렐라 캐릭터의 신분 상승을 ‘보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는 신데렐라의 능력을 노력의 산물로 보여주기보다 성과 중심적으로 실적을 나열함으로써 일종의 증명을 제공한다. 거기다 신데렐라 주변에 재벌 친구를 배치하는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구시대적 신데렐라 서사에서의 신분 상승 체감 효과를 감소시켰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성차별적이지 않은’ 신데렐라 드라마라는 점을 대놓고 어필함으로써 신데렐라 서사의 전형성을 은폐하는 데에 일부 성공했다.


둘째는 서브 커플의 활용이다. 이 드라마의 서브 커플은 역할이 전도된 신데렐라 서사를 언뜻 표방한다. 주인공의 재벌 친구인 여성 캐릭터가, 고아원 출신의 남성 캐릭터와 로맨스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도는 설정에 그칠 뿐, 실제 서사에서는 오히려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남성 캐릭터가 위기를 멋지게 해결하는 등 남녀 관계는 전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단순한 설정 전복만으로도 상쇄 효과를 누린 듯하며, 29금 로맨스라는 자극은 이 드라마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비판 지점으로부터 시청자들의 이목을 돌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신데렐라 드라마이지만, 이처럼 이 드라마 역시 시대적 변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작된 작품은 아니다. 신데렐라 서사가 가지고 있는 양날의 검을 잘 인지하고, 여러 전략들을 수립해 사람들이 신데렐라 드라마의 흥미 요소에만 집중하도록 하는데에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이 상당히 얄팍하고, 가볍다는 점은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그러한 전략이 시청자들의 비판 의식을 흐리고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두시키고 대중들에게도 비판적 논의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내맞선>뿐만 아니라 여타 드라마들이 차용하고 있을 전략들에 대해 더 많은 비판적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김상미 선생님의 성균관대학교 2022학년도 1학기 국어국문학과 수업 <한국대중문화론> 과제물로 제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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