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2>(2025)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섞여 살아간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 다양한 취향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의 다름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 어우러짐은 곧 아름다움이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어우러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특정 집단을 배척하거나 지우려 했던 시도들이 반복되어 왔다. 전체주의로 치닫던 시대, 편견과 혐오가 지배하던 사회가 존재했고, 이는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의 따뜻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냉정함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주토피아2>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그 ‘어우러짐’의 여전한 필요성이다. 전작 <주토피아>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사이의 편견과 불신을 주요 갈등으로 삼았다면, 이번 속편은 파충류, 그중에서도 뱀이라는 존재를 통해 또 다른 편견의 영역을 건드린다. 기존에 주류 동물이 아니었던 존재, 덜 사랑받고 덜 환영받았던 존재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는 이야기가 이번 영화에 담겼다. 그 중심엔 여전히 두 동물이 있다. 토끼 경찰관 주디와 여우 닉. 이들은 여전히 주류가 아니지만, 그 비주류의 자리에 있기에, 세상을 지키고 어우러짐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더 소중해진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주토피아2>를 통해 다시 묻게 된다.
[첫 번째 감정] 주디의 열정
주디는 그야말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불타는 존재다.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한 뒤에도, 그녀는 불현듯 찾아온 의문을 놓지 않고 더욱 깊이 파고든다. 마치 '정말 이게 끝인가?'라고 스스로 묻는 듯한 주디의 눈빛. 그 열정이 때론 과해 보이기도 한다. 일부러 문제를 키우는 것처럼, 혹은 불필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관객인 나조차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고 투덜거리게 된다. 그만큼 주디는 주변을 넓게 관찰하면서 세상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 열정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어쩌면 본능으로서 작동한다. 주디는 경찰로서, 시민으로서,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바라는 동물이다. 그녀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도. 자신이 본 것을 증명하고,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자 한다. 그 열정은 결국 현실을 바꾸고, 더 많은 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열어준다. 그런 주디의 열정은 마치 첫눈이 땅 위를 덮듯, 조용하지만 강하게 퍼져간다.
그리고 그 열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주디가 혼자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 했을 때다. 그 동료가 바로 닉이다. 닉은 1편에서는 게으르고, 사기꾼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체념 속에서 자신만을 지키려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주디는, 그 닉을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어쩌면 그건 오롯이 주디의 열정 덕분일 것이다. 주디의 불타는 열정이 닉의 차가운 회색을 건드리고, 그 회색 위에 새로운 색을 칠하게 만든다. 결국, 주디의 열정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다. 주디가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그 의지가, 더 많은 ‘다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여는 문이 된다.
[두 번째 감정] 닉의 열정
하지만 닉의 열정은 주디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주디가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구조를,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라면, 닉의 열정은 조금 더 사적인 영역에 가깝다. 그 열정은 파트너인 주디를 향한다. 그것이 꼭 로맨스는 아닐지라도, 닉은 옆에 있는 이의 목표와 꿈을 함께 이루고 싶어 한다. 주디가 세상을 바꾸고자 할 때, 닉은 그 옆에서 지키고 보호하고, 때로는 다리 역할을 하려 한다. 파트너가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옆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닉에게 중요한 것은 주디가 안전한 것이다. 주디가 불확실한 사실 속에서 흔들릴 때, 닉은 그를 지탱해주는 존재가 된다.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는 먼저 주디를 감싸고,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만큼의 위험을 짊어진다. 그 모습은 어쩌면 낡은 정의감이자, 누군가를 지키려는 소박한 책임감이다.
이런 닉의 열정은, 주디의 열정과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결과를 만든다. 둘은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달렸지만, 결국 두 열정이 모여 더 좋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속도가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목적은 같다. 두 동물의 티격태격함이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갈등을 낳지만, 결국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의 여정으로 수렴된다.
[세번째 감정] 게리의 소외감
그러나 이 이야기엔 단지 두 주인공만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갈등의 중심엔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뱀, 게리가 있다. 뱀이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본능적으로, 이미지적으로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영화 초반, 게리는 공포의 존재로 그려진다. 주토피아 세계의 동물들에게도 날카롭고 긴 이빨을 가진, 낯설고 위협적인 동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공포는 그의 실체라기보단, '세상이 만든 이미지'였다. 정치인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 그리고 집단적 편견이었다. 게리는 단지 그 허상 속에 갇힌 존재였다.
그 허상에 갇힌 채, 뱀이라는 이유로 주토피아 안에서 완전히 소외된 존재. 그는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쫓겨났고, 동물들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졌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게리는 그 소외감을 만회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왜 오해받았는지, 왜 쫓겨났는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증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가 내는 목소리는 점점 초라해 보이고, 그 절실함은 외로움으로 바뀌어 간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전부인 가족이, 다시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그 목표는 주디가 가진 세상 전체를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 만큼은 아닐지라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주디가 세상의 다수를 위한 이상을 품었다면, 게리는 소수의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바란다. 그의 열정 또한 ‘잃어버린 소속감’을 되찾기 위한 간절함이다. 그렇게 그는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소외감은,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게리가 겪는 소외감과 고통은, 이 영화가 단순한 유쾌한 모험이나 코미디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하고 잊어온 존재들,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게리의 등장이 있기 때문에, <주토피아2>는 단지 다양성과 공존의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그 외로움과 차별, 그리고 그로부터의 회복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다.
성공적인 <주토피아> 세계 속 주디와 닉의 귀환
<주토피아2>는 단지 전작의 재탕보다는 좀 더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1편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사이의 편견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흔들었다면, 이번 속편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또 다른 경계인 파충류, 뱀이라는 존재를 꺼내 든다. 그 시도는 단지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가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편견과 혐오를 반영한다. 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긴장감 있고, 흥미롭다.
가장 빛나는 건 역시 두 캐릭터, 주디 홉스와 닉 와일드의 케미다. 그들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단순한 파트너십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를 변화시키고, 함께 성장하는 겻이다. 이 두 캐릭터가 사랑인지 우정인지에 대한 작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게 중요하진 않을것 같다. 보다 중요한 건, 둘이 이미 서로를 존중하고 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주토피아2>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심히 쌓아 올린 편견 위에 가려진 존재들 역시 사회의 일부이며, 그들도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공존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주 개봉한 이후 흥행 성적도 좋은 편이다. 개봉 5일 만에 국내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현재 기준 누적 255만 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이 속도는 전편보다 조금 빠른 편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강한 스토리텔링 매체임을 증명한다.
물론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의 일부 전개는 전형적이고, 1편과 비슷한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때로는 메시지가 직설적이라 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단점마저, 이 영화의 솔직함과 진심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완벽함이 아니라, 시도와 변화,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이 사회의 ‘다름’을 얼마나 품을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 질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