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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Apr 15. 202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14

따지고보면 다 별일 아니야(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시리즈는 온전히 나의 언어로 전하는 이혼의 서사다. 따라서 사실들은 서술자인 나의 시각으로 재단되기도 하고, 내 의사에 따라 소거될 수도 있다. 그 일련의 작업들을 편의상 '편집'이라 부르겠다.


 편집의 팔은 안으로 굽는다. 삭제와 축약의 선택이 오로지 내게 달려있다는 얘기다. 어떤 부분은 과히 신경증을 유발할 것 같은 내용이라서, 또 어떤 부분은 상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줄이고 지웠다.


 시리즈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이 글로 인해 X가 나쁜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치 않는다. 내게는 나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X에게는 최악이었겠지만,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선택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독자들이 내 글만 보고 X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길 바란다. 뭐, 요즘 남 말 믿고 선입견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그래도 노파심에.



 




"아가, 집에 가면 꼭 밥부터 먼저 안쳐두고 다른거 해라.

그래야 주왕신이 살펴준다. 알았지?"



 시어머니가 내 이삿짐 더미에 밥통을 챙겨주며 말했다. 모양새가 눈에 익은걸 보니, 다락 한 켠에 있던 것을 꺼내오신 것 같았다. 평소 가신에 대한 신앙이 깊어 명절에도 조상만큼이나 정성들여 챙기시던 분이라, 내 살림에도 신경을 쓰신 듯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신앙 비슷한 것에도 일절 관심이 없어, 성주신이라 하면 마동석인줄이나 알았지, 과거 차롓상 차릴적에도 '주왕신'이 뭔지 몰라 '주황색 신발'을 말하는 줄 알고 갸웃댔던 사람이다. 밥통따위에 둘 의미랄게 없다.


 이런 속도 모르고, 시어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고 몇번이나 다그쳤다. 뭐, 밥통은 감사히 받아왔지만 그대로 잘 모셔두고 그날 엄마랑 짜장면 시켜먹었다. 밥을 언제 했는지 같은건 기억조차 없다. 밥을 먼저 했으면 뭐가 더 좋아졌을까? 모를 일이지.


 그 외에도 시어머니는 내 이사에 대해 대놓고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해도 오며가며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차도가 없는 내 피부 알러지에 대해 아침저녁으로 묻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고, 처음 살림 시작할때 돈이 많이 드니 가져갈 만한건 다 챙겨가라면서 세탁실의 온갖 세제를 다 꺼내다 주기도 했다.


 차 없이 지낼 나를 위해, 언제든 차가 필요하면 전화하라며 신신당부 하셨고,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야 한다고 했다. 네가 내 며느리 하기 싫다고 나갔으니, 이제 내 딸을 하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시어머니는 평생을 아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헌신하다 건강도 젊음도 잃었다. 멀리서 시집와 이러고 사는 꼴이 꼭 당신 젊을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고 가여워서 나만 보면 속이 문드러진다고 말하곤 했었다.


 시어머니의 친절을 두고, 친구들은 '저거 무슨 속셈이 있는거 아니냐'며 의심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걸 따져물을 처지가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누군가와 대거리를 할만큼의 여유도 없었거니와, 도와준다고 내려와있는 엄마는 나보다 더 피골이 상접하고 눈이 퀭해져서 오히려 짐덩어리였다. 하물며 회사에서는 상사가 한창 내게 골질을 하던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내가 가장 마음을 기대고 있던 사람이 시어머니였다.





 오후 늦게야 스타일러와 옷상자를 실은 용달이 도착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은 큰 짐을 놓을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한다. 한번 놓으면 다시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거실 맞은편 구석에 스타일러를 놓은 뒤, 아 여기가 아닌가..하고 중얼거리고 있을 즈음, 시어머니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가, 아빠 좋은 기운 받아가라고 스타일러는 일부러 청소 안해서 보냈다. 잘 살아라. 무슨 일 있으면 엄마에게 꼭 연락해라.'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있던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아직도 본인을 '엄마'라 칭하는 시어머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앞으로 친지하나 없는 시골에서 완전히 혼자 살아가야 하는 딸에게, 이렇게라도 아는 사람이 좀 있는게 도움이 될건지 점쳐보는 듯 했다.


 시어머니의 메시지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남인데 굳이 싹싹하게 보낼 필요가 있나. 아니, 이렇게까지 챙겨주는데 그래도 감사 표시를 해야 하는거 아닌가. 앞으로도 왕래하며 지내면 나한테 더 좋지 않나.





 각자 생각에 잠긴 모녀의 의식을 돌려놓은 것은 용달차 인부가 마지막으로 내려놓은 커다란 비닐보따리였다. 그건 오늘 아침, 내가 미처 버리지 못하고 두고 온 의류 쓰레기였다.



"설마 저 쓰레기를 가져가라고 여기로 보낸거냐? 그 망할 자식이?"



 뻔했다. 대충 훑어보니 내가 쓰레기를 놓고 갔다 생각했을 것이고, 그게 괘씸해서 본인 물건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내게 보내버렸을거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또 한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나는 봉지를 다시 묶어서 다용도실 안으로 던졌다. 뭐, 내 탓도 있다. 열내지 말자.


 진짜  낼일은 따로 있었다. X가 애써 챙겨보낸 것은 쓰레기뿐만이 아니었다. 집을 나서던 마지막순간 나를 감상에 젖게 했던 우리의 결혼사진이  상자 틈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때 크게 깨달았다. 어떤 순간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던 X가, 지금  어느때보다도 화가  있다는 것과 그가   있는 최대의 잔인한 방식으로 화를 내고 있음을. 결혼사진을 내게 버림으로써.






 가구업체는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 밤중에 도착했다. 조립을 마치고 인부들이 돌아갔을때는  열시가 넘어있었다. 하루종일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느라 피곤했을 보리도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엄마도   채비를 했다.


 다음날은 출근을 해야한다. 점심은 집에와서 엄마와 먹기로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오늘부터 나의 삶을 시작하고, 과거는 잊기로 한다. 발목잡을 과거 같은건 없다. 오히려 발목 잡히기 싫어서 한 이혼이다. 별거 없다. 잘할거다. 따지고보면 다 별거 아니니까.


 날짜상으로 이사일인 2021 8 18. 이때까지 한번도 진심으로 힘들다는 말을  밖으로 뱉거나 징징대거나, 이혼을 가지고 처지를 비관한 적이 없었다. 그럴만도 했다.   선택인걸.


 나는 이혼으로 겪게될 일들에 대해 알만큼은 알고있고, 그걸  감내하고 이겨낼 준비가 되었다고 큰소리 쳐왔다. 그러나 뭔가를 안다고 자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줄을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나는 몰라도 한참은 모르고 있었다. 힘든일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다는것과 이혼녀가 얼마나 구질구질한 시선을 받으며 살게되는지에 대해서도.







+요즘 일이 많아서 조금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짧은 봄 가고 여름이 오네요. 일기도 끝나가고요.


+라이킷은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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