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꽃 Apr 13. 2024

오늘도 오늘의 지문을 남기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보니 이슬비가 하늘하늘 날듯이 내리고 있었다. 해를 가린 구름이 무겁지 않은 걸 보니 비가 퍼붓지는 않겠다 싶어 산책을 나갔다. 비가 내리는 건지 아닌지 헷갈릴 만큼 조용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입자가 고왔다. 시냇가를 걷다 문득 떠 오른 생각 '맨발 걷기 하면 딱 좋겠다. 흙이 비에 젖어 부드러울 거야.'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래전 배밭과 이웃하던 야트막한 산은 사람들이 산책하기에 딱 좋은 몸집으로, 무던한 사람이 진득하니 제자리를 지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적당히 만만한 산과 사람은 너그러워 마음이 힘겨울 때 기대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그들을 얕잡아 볼 수는 없다. 사람에 대한 그들의 너그러운 성품이 순수하니 보통 못된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차마 그럴 수는 없다. 농사짓는 사람들만 드문드문 보이던 배밭은 공원이 되었고 사람들과 반려견으로 매일매일 북적인다. 양말을 벗으니 꽉 묶였던 발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고 맨발로 느끼는 공기로 설레기까지 했다. 맨발로 땅을 디뎠을 때,  발 시리게 하던 3월의 냉기가 감쪽 같이 사라진 데다 비에 젖은 흙이 촉촉해 봄이 왔구나 했다.


등산스틱을 짚고 걷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어 왜 그런가 했더니, 바닥이 보통 미끄러운 게 아니었다. 비가 내린 뒤 맨발 걷기 하러 나올 때는 등산스틱을 가지고 나와야 하나 생각하며 다른 날보다 더 천천히 걸어야 했다. 사람의 세계가 변화를 거듭하는 데 경험이 큰 몫을 차지하는구나 했다. 미끄러운 바닥을 걸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조심하느라 느리게 걷다 보니 발바닥의 느낌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 나름 괜찮았다. 어떤 상황이든 다 나쁘거나 다 좋기만 한 것은 없다. 나쁘다 생각되면 다음기회에 낫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되는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대로 그 순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내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달다고 냉큼 삼키고 쓰다고 날름 뱉는 편식은 하지 말아야겠다 한다. 그 모두는 골고루 챙겨 먹고 건강하라며 삶이 차려주는 내 밥인 것이다.


미끄러운 바닥에 적응해 좋은 기분으로 히죽거리며 걷는데

"저기요." 하며 모르는 사람이 말을 시켜 돌아봤다.

"이리 와서 여기 좀 밟아봐요." 청록색 바지를 돌돌 말아 올리고 황토색의 작은 빗물 웅덩이에 서 있는 그녀가 손짓과 말로 나를 잡아끌었다. '괜찮아요.'하고 지나갈까 1초  망설였지만 그녀가 이겼다. 낯선 사람과 바짝 붙어 서서 나도 발을 담갔다. 발에서 느껴지는 것을 명랑하게 말하며 어색함을 쫓아내려 애를 썼다.

"와! 좋은데요?!"

"부드럽죠? 촉촉하고. 재밌잖아요. 그쵸?"

그녀는 때마침 지나가는 다른 사람도 불러 세워 웅덩이에 발을 넣게 했다.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옷깃이 스칠 만큼 가까이 서서 발을 내려다보며 느껴지는 대로 얼른얼른 말을 꺼내 낯섦을 밀어냈다.

"이쪽도 밟아 봐요. 이쪽도 물끼를 잔뜩 먹어서 흙이 너~무 부드러워요." 빗물 웅덩이 주인장(?) 같은 그녀가 바로 옆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에 옆의 진흙으로 발을 옮겼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이젠 됐어요 하며 자리 뜰 용기도 없고 진흙의 느낌은 좋았다. 얼떨결에 우리가 된 세 사람은 진흙을 느끼며 같이 놀았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별스러운 날이기는 했다. 다음 날 아는 언니에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안 불렀으면 그런 경험도 못했지."

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초대를 받아들여 그런 에피소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경험을 비싸게 쳐주는 편이다. 언젠가 아들이 얼마의 돈이 있다면 명품을 사겠느냐 경험을 사겠느냐 물었고 난 망설임 없이 경험이라고 말했다. 내게 경험은 의미가 크다. 경험을 좋아하는 큰 이유는 방금 전과 다른 경험을 하는 동안의 느낌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생기와 의욕이 차 오르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경험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글에 담아서 장독대에 장항아리 하나하나 늘리듯 하고 있다. 글로 쓰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마는 경험이 꽤나 값비싸게 여겨지고 그 경험의 주체인 나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사스러운 게 아니라는 확인을 할 때 내 눈동자는 반짝인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지문을 가졌듯 오늘 하루도 자기만의 지문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통한 일상의 재발견은 나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져 자존감을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도 자연도 가만히 바라보면 보인다. 모든 순간이 완전하게 특별하다는 것을. 비록 내가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품고 살더라도 지금의 나는 부족함 없이 완전한 나라고 생각된다. 오늘도 오늘의 지문을 꾹 눌러 찍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콩나물을 키우는 물 한 바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