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몸이 생각에서 깨어나 손가락 끝으로 그림이 내려와서 이제는 그릴 수 있겠다 하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와서 응 엄마 조금만 있다가 떠날게 대답하다가 아 반찬을 뭘 해 주지 하고 생각하느라 잠시 흐트러졌던 생각을 모아서......
기본적으로 워밍 업은 두 시간은 해 줘야 겨우 하나 그리나 보다. 헛되다고 하지 말자. 손과 머리와 마음을 데우는 시간 동안 흘러내린 생각을 모두 모으면 강물이 되리. 그래도 나에겐 내일이 있으니......
"만질 수 있는 생각 - 이수지 에세이 중에서"
요즘은 글 한편 쓰기가 정말 어렵다. 그동안 소재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손끝으로 써 내려가는 글들을 써온 탓이다. 이제 소재가 다 바닥이 났으니 자연히 글쓰기가 스톱되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저녁밥도 미루고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글을 써 내려갔던 날들이 있었다. 한 편의 글을 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무한 퇴고를 거쳐도 결국엔 또 미완의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순간 좌절도 많이 했다. 특출한 재능이 없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맞나 스스로 되묻기도 하고 말이다.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이지만 조금씩 차곡차곡 쌓이는 글들이 나에게 좀 더 힘내보라고 채근한다. 아무래도 글쓰기가 생활화되어있지 않다 보니 발행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그림책 작가는 2시간 동안 워밍업을 해줘야 그림 하나 겨우 그려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하루 중 글쓰기에 들이는 시간은 과연얼마나 될까.
항상 손안에 놀던 아이도 이제 내 손을 떠나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이제 오롯이 나만의 시간뿐이다. 직장인이지만 글을 쓰고자 한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쓸 수도 있고 저녁을 물리고 나서도 글을 쓸 수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동안 몰아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써내야 한다는 절심함이 빠진 글쓰기는 매순간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렇게 항상 뒷전에 놓이는 글쓰기로 인해 마음에는 커다란 돌덩이를 얹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나에게도 내일은 있고 글을 쓰지 못해 안달한 시간들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모두 흘러 흘러 나의 또 다른 강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오늘 짧은 글이라도 쓰고나니 저녁먹은 것이 소화가 된 듯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