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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l 04. 2024

고3 엄마의 저녁 루틴

우리 집 고삼이 이번주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다. 고3엄마라는 타이틀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고3이 주는 힘겨운 무게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크게 작용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고3아이의 일상은 집, 학교, 학원, 스터디카페로 한정된다. 엄마인 나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게 평일엔 집, 직장, 도서관으로, 주말엔 마트가 하나 더 추가될 뿐 상당히 단조로운 일상이다. 저녁약속도 왠만하면 잡지 않는다.


평소 퇴근하면 얼른 저녁을 준비한다. 되도록 간소하게 차린다. 너무 거하게 차리면 아이가 공부하다 정말 꿀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치밀한 전략을 아이는 모르겠지만 고3 올라오고 몇 달 새 5킬로 찐 아이에게 다이어트식이라고 회유하며 후덥지근하게 더운 날씨라 얼음 동동 냉모밀에, 샐러드와 삶은 계란을 동반하여 대령한다.


저녁을 다 먹으면 아이를 스터디카페에 데려다준다. 아이는 오늘따라 스터디카페 갈 준비시간이 길다. 공부하는데 에어컨이 빵빵해 춥다고 옷도 긴소매로 갈아입고, 텀블러에 음료도 제조하고, 애완물고기 밥도 챙겨주느라 기다리는 나는 애가 탄다. 시간이 금인데 이 시간을 아껴서 빨리 공부하고 일찍 잤으면 하는 우매한 엄마의 바람을 아이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이의 준비가 끝나면 10대의 끄트머리를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기처럼 말랑말랑한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걸어가면서 서로 하루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아이는 오늘 시험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아는 문제는 성실히 풀었고 모르는 문제는 4번으로 다 찍었다고! 세상 편한 고삼이다!


그런데 오늘 시험 보는 중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감독 선생님이 시험지를 너무 천천히 나눠주셔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시험지 받고 인쇄 상태도 확인해야 하는데 뒷줄에 앉은 아이의 말로 엄청 쫄렸다고 한다. 또한 시험 끝나기 2분 전 예비종을 시험 끝종으로 아신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하는 바람에 혼선이 있었다고 한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마킹 한 개라도 더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더 웃긴 건 감독 선생님이 시험시간 동안 의자에 앉으셔서 엄청 다리를 떠셨다고 한다.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친구는 선생님이 다리를 떠는 바람에 시험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며 끝내 울었다고 한다.


그날그날 주제는 다르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10여분를 걸어 스터디카페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는 길 건너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면 좋겠구먼 도서관에선 집중이 잘 안 된다나 뭐라나.


시험기간인지라 도서관에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조용히 도서관 안쪽 서가에 자리를 잡는다. 큰 글자도서랑 건강 관련 서적이 있고 창가 쪽으로는 소파도 있어서 편히 책 읽기 좋은 장소이다. 보통은 어르신이 1-2분 계시는 곳인데 오늘은 공부할 자리가 없는지 학생들도 제법 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소파에는 사람이 없어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해지는 풍경도 일품인 곳이다. 오늘은 김훈 작가님의 신간 "허송세월"을 빌려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보통 1시간 정도 독서를 하고 집에 간다. 어떨 때는 졸음이 쏟아져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만 말이다. 집에 갈 때는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운동삼아 일부러 빙 둘러 집에 간다.


집에 도착하면 빠르게 집안 정리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대충 휙 돌리고 빨래를 걷어 정리하고 그리고 씻는다. 씻고 나와서는 아이 간식을 준비하거나 다음날 아침 거리를 미리 손질해 놓는다. 아이는 11시경 아빠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온다. 집에 오면 또 재잘재잘 쏟아내는 이야기를 비몽사몽인지라 눈은 감기니 귀로 받아내 준다. 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1-2시간 더 공부하다 잘 것이지만 체력이 다 소모된 나는 하루를 먼저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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