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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29. 2023

아침 반찬으로 삼겹살을 구웠다

내가 아들만 했던 어린 시절 서울 외삼촌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덩치가 제법 크셨던 외숙모는 시누이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삼겹살.  평소 손작고 요리 못하기로 소문난 우리 엄마는 아침부터 삼겹살을 굽는 외숙모를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언니 누가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노?" 라며. 문화충격을 단단히 받은 정여사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닭백숙이란 자고로 닭이 씻고 장화 신고 지나간물이었으며 반찬 하나하나 왜 이런 식재료로 이런 맛을 낼 수가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요리솜씨가 없었다.  아이러니한 건 평소 수업 듣는 건 좋아해서 요리학원도 다녀보았고 집에 먼지 가득한 요리책도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구성원이었던 나와 아빠 그리고 정여사 본인도 모두 다 어디 나가면 날씬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과연 날씬한 것인지 못 먹은 건인지 지금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있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과연 그게 체질적으로 날씬했던 것인지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서였던 것인지 하는 의문말이다.  



평소 모든 요리에 성의가 없고 만들어 내는 요리 족족 신기한 맛을 자랑하며 아침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라 마인드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출처 불명 기한 불명의 반찬들을 내어놓은 정여사는 외숙모의 아침 삼겹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던 터.  그런 장면을 처음 목도한 국민학생이었던  나 역시 아침에 삼겹살을 먹는 게 가능하구나 나는걸 알게 된 희대의 사건중 하나였다.   외숙모로 말하자면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고 먹는 것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요리에 진심이라 매일 아침은 늘 잘 먹고 보낸다는 외숙모였지만 또 신기하게 그 집 두 아들의 성장은 미비했다.  유전의 탓이었을까.  차려줘도 안 먹은 두 아들의 탓이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팩트는 매번 아침을 정성스럽게 외숙모는 최선을 다해 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아들 둘을 향해 매번 그렇게 다양한 반찬을 만들고 있는 외숙모가 경이로웠다. 그에 반해 우리 집 정여사는 늘 모든 요리에 성의가 없었다.   짜증으로 시작되는 매일 아침.  엄마의 하이톤 목소리와 추워 죽겠는데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젖히는 행위는 그야말로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짜증이 가득한 상태로 아침 상에 앉았는데 지금 쓰레기통으로 직행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메뉴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 계란프라이라도 성의를 보여주면 좋겠는데 정여사는 이따위 아침상을 차려주고 방으로 가 다시 누웠다.   가는 정여사 뒤통수에 대고 도대체 뭘 먹으라는 거야?라는 말로 아침부터 시비 활시위를 던지면 그때 모녀 전쟁은 시작되었다. 


"야!  나는 뭐 혼자 대단히 맛있는 거 먹은 줄 아나? " 


그래. 혼자도 먹지 말고 같이 성의 있게 맛있는 반찬 좀 먹자는 건데 참 성의가 없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겨우 이따위 반찬을 내어주는 엄마에게 늘 화가났다.  조금 더 노력해서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면 될 것을.  조금 부드럽게 딸을 깨워 아침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시작할 수는 없었는지.   왜 매번 짜증이 오가는 아침을 맞아야 하는지.  그렇게 음식과 친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작은 키에서 멈췄고 지금도 작은 키가 가장 콤플렉스다. 내 작은 키의 가장 근원적 요인은 엄마인 것이다.  유치하다 나이 먹고 엄마 탓을 하냐 해도 할 수 없다. 아마도 내 기억에는 그게 가장 큰 진실이니까.   엄마가 내 식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내 키에 조금이라도 신경 썼더라면 아마도 나는 지금 못해도 160은 넘었을 거다.  



결혼할 때 시어머님이 말씀하시길 "네가 키가 좀 더 크면 좋았을 텐데.. "  가장 콤플렉스에 가장 서운했던 대사다.  치부가 들킨 느낌.  결혼 5년 차 임신을 하고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결심했다.  아들이 태어나 엄마 닮아 키 작다 소리 들으면 나 오뎅국물에 코박을 거라고.  난 내 아들의 세끼를 정말 최선을 다해 먹이고 아들의 성장에 무한 관심을 쏟을 것이라 결심했다.  



올해 4학년이 된 내 아들. 매일 잠자기 전 나는 내일 아침 뭘 먹일까 가 가장 큰 관심이다. 40살이 넘은 내 아들이 엄마 닮아 키 작다. 엄마가 반찬을 똑바로 안 해줘서 내 키가 이모양이다라는 모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뾰족한 마음이 그 아이에게 남지 않도록 친정엄마에게 서운했던 아침 반찬을 매일 아침 내 아들에게 차려주는 반찬으로 내 아들 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나의 뾰족한 유전세포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나는 뭐 맛있는 거 혼자 먹는 줄 아나 소리 하지 않도록 우리 셋 모두 같이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내 요리 솜씨가 정여사를 닮지 않아서.   세상에서 엄마 닮았다 소리가 제일 싫은 나로서는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아침식사로  삼겹살을 굽는다.  그날의 외숙모와 아침으로 삼겹살을 누가 먹냐며 집에 와서 까지도 외숙모 이야기를 하던 엄마를 생각하며.  그날의 외숙모처럼 나도 내 아들을 위해 열심히 성의 있는 아침을 차린다. 비록 한 가지 반찬일지라도.  엄마랑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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