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앞두고 아내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자네랑 할까, 언니네랑 할까. 몇 포기를 해야 하나. 11월에 할까, 12월에 할까. 결정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아무것도 끼어들 게 없었다. 겨우 한 가지 조언을 해준 것이 “배춧값이 더 떨어질 테니 조금 늦추지?”였다.
며칠 뒤 강원도 출장길에 현지 농협 직원을 만났는데 그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무값이 갑자기 폭락을 해서”란다. 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는 좋아할 텐데, 농민은 한숨을 쉬니 이를 어찌한담. 마치 해결사라도 되는 양, 시장 조율사라도 되는 양, 한숨을 쉬는데 ‘너나 잘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래 전 홍천강 근처로 워크숍을 간 적이 있었다. 하룻밤 거창하게 술을 마시고 아침 일찍 일어난 몇몇이 강바람을 쐬고 있었다. 멀리 강 건너에 마을이랄 것도 없는 집 몇 채가 보였다. 그런데 강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눈에 보이는 어디에도 다리가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니지? 다리가 안 보이는데, 배 타고 다니나?”
옆에 있던 선배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별 걱정을 다한다. 니 걱정이나 해.”
헛, 그러고 난 얼마 뒤 ‘너나 잘해’란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농협 아름찬 김치가 올해 오프라인(농협하나로마트)보다 온라인(농협몰)에서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온라인 비중은 20% 내외로, 오프라인에서 압도적으로 팔리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역전이다.
농협뿐만의 일은 아니고 김치에 국한된 일도 아니다. 코로나19가 만든 시장 변화를 이제는 반복하는 것이 지루할 정도다. 관심은 ‘언제까지’냐다. 이 사태가 진정된 (언젠가는 끝날 테니까) 이후에도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과거의 균형을 회복할 것인가.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예측을 하는 게 인생이다.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멋진 말이긴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멍미?’다. 굳이 창조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작은 계획 하나조차도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게 요즘 세상이다.
권력과 자본을 갖고 있다면 한결 수월할 수 있다.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낼 확률, 과거 정경 유착이 거리낌 없이 진행되던 시절에는 비교적 높았다. 독재와 독점이 가능했기 때문에 소수의 무리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사실은 만들어 간 것)하곤 했다. 그 소수들은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런 유착을 통한 계획적 미래 도출이 어려워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계획할까. 어차피 소수 기득권과 거리가 먼 우리, 당황하지 말자. 각종 데이터가 공개되고 그것을 빅데이터로 재분석하고, 맞춤형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확률은 과거보다 높아졌다. 소수 기득권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권리가 다수 대중에게도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한숨은 그만 쉬자. 한숨의 시대 2020년은 그 누구도 계획대로 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