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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헤이 Feb 23. 2024

군만두

마음이 못생겨질 땐 만두를 빚어봅시다.

서서히 화가 오르고 있었다. 퇴사를 하면 나아질 줄 알았던 화병의 증세가 다시금 나타나고 있었다. 명치에서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었고 한쪽 머리의 두통이 세게 찾아왔다. 사실 퇴사를 한 이후로도 이직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최대한 매일의 루틴을 잡으려고 노력했으나 불안함과 초조함은 곧 무기력함으로 바뀌었고 이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도 하고 집에 고립되어 있으면 더 우울함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 내키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그래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길에는 불안감과 답답함이 찾아오곤 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온 시간만큼 불안감의 강도는 더해지는 듯했다. 항상 설 연휴기간 안에 속해있는 내 생일을 위해 친구들은 설 전에 미리 생일파티를 해주겠다고 했다. 우울함에 갇혀있는 나를 알고 있었기에 만나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공격적이고 시니컬한 아이들이 이벤트 다운 이벤트도 해주었으나 이미 화가 지배하고 있는 마음에는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친구들이 남기고 간 이벤트의 잔재들을 계속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만 신경 써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에 집중하며 마음을 내려놓고자 거듭 노력하다 보니 설이 지난 지금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이다.


다시 떠올리기는 싫지만 나에게 불안감과 답답함을 더 가중시킨 2월의 사건은 결국 퇴사를 결정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받는 사건이었다. 함께 일하던 대표는 핑계와 변명이 참 많았다. 그녀와 일하는 어느 순간 무언가 바뀐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지시를 내리는 대표 같았다. '기다려봐, 지금 바빠서, 내가 깜빡해서, 회의가 있어서, 미팅 중이라서, 미안, 지금 바로 할게...'등의 변명 후에는 매번 나의 눈치를 보는 태도가 뒤따랐다. 매일 오전에는 외부에서 하는 회의와 미팅이 있었고 사무실 복귀는 오후, 늦은 오후 혹은 아예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모든 일정들이 전혀 계획되지 않았고 공유되지 않았다. 간혹 오전에 있었다는 미팅에 대해 물어보면 그게 지금 중요한 일인가?라고 생각하게 할 만큼 우선순위가 없었다. 이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있었던 8개월 내리 매일 오전마다 회의가 있었다는 핑계를 어쩜 그리 매번 다른 핑계와 이유로 번갈아가며 만드셨는지 참 노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제안에도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 거절, 대답과 반응 없음 등으로 실행을 지시하지 않았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 부분을 언급했더니 '그럼 니가 하지 그랬어.'로 탓을 나에게로 돌리는 것을 시전, 나는 마침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설마했던 예상답안이 그대로 나올 때의 허탈함. 나름 많은 것을 포기하고 도전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정말 이것이 나의 문제인가 경험의 부족인가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해 보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욕심과 경험과 지식의 한계와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깔끔히 헤어지는 것을 선택했다. 서로가 다른걸 원했을 수 있었으니 마지막까지 최대한 아름답게 헤어져보고자 노력했으나 분노가 최고치로 치닫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표는 매번 월급날을 지키지 않았다. 이 역시 매번 다른 이유와 핑계를 대었으나 10년 이상의 사회 경력을 쌓아온 나에게 자신이 그런 이유와 핑계를 말하면 내가 100% 진실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그분의 판단력은 과연 몇 살에 머물러 있는 걸까 싶다. 너무 바빠서, 까먹어서가 3번 이상이 반복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그러나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소기업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입사 후 3개월, 4개월이 지나도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정말 바빠서 그러시는 거면 급여와 정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파트타임을 통해서라도 구해보시라'라고 했으나 '그래야지.'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밖에 모든 일을 이미 핑계와 변명으로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던 시기였으니 나도 순수하게 믿지는 않았다. 총 8번의 급여를 받았고 단 한 번도 월급날 6시 이전에 급여를 받아본 적은 없다. 빠르면 월급날 밤 10시 즈음, 최대 5일 정도 늦었던 시점에는 카드 연체를 언급하며 급여를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이야기를 했던 시점으로부터 1시간 내 급여가 들어왔다. 못 줄 상황이 아니었던 것에 더 황당했다.)

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으니 팀을 꾸릴 수도 없었다. 대표에 대해 잘 몰랐고 초기 이 사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을 때 함께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이 많았으나 자본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기본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무지한 리더가 있는 곳에 함께하자고 제안할 수 없었다. 3~4개월이 지나면서는 채용 제안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접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겠기에 전에 일하던 친구들로 외주 팀을 꾸려 개발을 진행했다.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 사업에 대한 의지가 있고 빨리 함께할 사람들을 충원해야 한다는 대표의 이야기에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무턱대고 개발을 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몇 년 간 사업체를 운영해 온 사람이니 그 정도의 계획 없이 일을 진행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오래도록 구전되는 이유가 있다. 선급금을 제외한 중간 정산, 마지막 정산에서 또다시 변명이 시작되었다. 중간 정산 시점에 자금이 충분치 않아 외주 비용을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 월급을 주면 그들의 비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는 솔직하지않지만 매번 자금에 쪼달리는 상황인것 같으니 이해하려고 했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내 월급이 늦어지더라도 먼저 그들의 외주 비용부터 지급해달라고 했다. 당시 내 월급의 반 이상을 나라에서 지원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외주 비용은 그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이제는 변명도 앞뒤가 맞지않네 생각하며 그가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 말을 한 그 주의 주말, 내 월급과 외주 비용은 모두 지급되었다. 마지막 정산일은 1월 15일이었다. 15일이 되자 그녀는 또 시동을 걸었다. 개발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비용 지급이 어렵고 마지막 산출물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돈 지급을 해줄 수 없다, 그리고 원래 그녀가 하고 있는 대행업 관례도 광고주 정산일에 맞추어 지급일을 미루면 서로서로 다 이해해 준다, 원래 다 그렇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개발이 다 끝나지 않았던 것은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던 하드웨어 개발 계약이 미뤄지며 소프트웨어 개발 범위와 스케줄이 망가지기 시작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 개발 계약은 대표와 그녀의 남자친구인 CTO…라고 하기에는 그분은 너무 지식이 없었다. 경험도 없었다. 사회생활 경력이 의심될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없는 분이었다. CTO라는 역할의 정의를 안다면 아무리 배경이 다르더라도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물론 내가 감히 개인의 역량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탓하지않을 수 없을만큼 그분은 에고만 강한 분이었다. 아무튼 하드웨어 영역은 그 커플의 몫이었고 계약의 진행사항 및 향후 계획에 대한 것도 명확한 공유가 없었다. 쉬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본업을 하며 외주 일을 하고 있던 친구들의 일정에는 차질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외주 일을 병행하기로 하고 하드웨어 계획이 명확해질 때까지 확정된 웹 영역에 대한 개발만 진행하기로 하며 미뤄진 일정이었다. 결국 귀책사유는 외주팀이 아닌 우리에게 있었다. 산출물이 없다는 것, 최대한 이해한다치고 원래 다 그렇다는 말 역시 변명일 뿐이었다. 내 주변에도 대행사를 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나 역시 대행사 출신이다. 이건 '신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본인의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친구들은 광고주의 정산일이 바뀌더라도 본인이 외주로 맡긴 일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우선 지급한다.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든지 내 이름으로 계약한 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잔금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 잘하고 좋은 사람, 인재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이 업이 가진 자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이다. 비용 지급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차를 파는 일도, 투잡을 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개인일지라도 엄연한 회사의 이름을 건 약속이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한 달을 좌우하는 생활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들처럼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정도가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약속을 지키고자하는 노력과 성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라는 가볍게 뱉는 말에 대한 분노이다. 그리고 그날은 지급일 당일이었다. '양해'라는 것은 사전에 미리 배경을 사실을 기반으로 먼저 연락을 취해 설명하고 향후 이행을 다짐하며 구하는 것이 '양해'이다. 당일에 이름만 바꾼 단체 문자로 미안하다는 이야길 하는 것은 양해가 아니라 변명을 수반한 '통보'일 뿐이다. 매번 급여를 못 받은 당사자들이 먼저 연락을 취해 문의해야 "미안"을 외치는 것을 양해라고 생각하다니. 그렇게 15일에 지급되지 않은 비용은 결국 30일로 미루어졌다. 내 퇴사일 전날이었다.

예상했겠지만 30일에도 비용은 지급되지 않았다. 31일, 마지막 출근 날 역시 늦게 사무실로 들어온 대표와 10분 정도 이야기를 하면서 비용 지급에 대해 물어봤다. 날짜를 착각했다고 했다. '말일이라 그랬는데? 31일이 말일 아니었나?'라는 이야기를 한다. 문자는 정확히 30일이라는 숫자로 찍혀있었고 그전 달인 11월도 말일은 30일이었다.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다. 이제는 변명에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나를 바라보는 생각을 전해 들었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 정작 돈 받아야 할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가 왜 나서서 난리인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아듣게 이야기하고 싶은 의지조차 사라졌다. 상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과는 대화의 의지가 사라진다. 31일이 지났다. 외주 개발자가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너무 화내지 말고 들으세요. 또 안 들어왔어. 일부 먼저 주고(30% 정도 해당하는 금액) 나머지는 2월 15일에 주겠대. 근데 그 일부도 아직 안 들어왔어. 다음 주 월요일에 주겠대. OTP가 고장 났대나 뭐라나."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냥 무시하려고 노력을 해도 이 말 같지 않은 변명에는 조금의 노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아 일갈을 날리고 싶었다. 도대체 왜 말 같지 않은 변명을 하는데 애먼 에너지를 소비할까? 그걸 순수하게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얼마나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걸까? 아! 그걸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본인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싶은 걸까? 설사 그것이 온전한 사실일지라도 그게 너무 변명같이 들리지는 않을까 고민한적은 없나? 그들이 '괜찮습니다'하며 참고 있는 이 상황이 누구를 배려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 중, 상대방이 제일 화가 나는, 뭐가 문제의 핵심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문자를 보냈다.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지 마라. 당신은 내가 31일에 비용지급에 대해 물었을 때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했어야 했다. 날 이용해서라도 그들에게 잘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명확하게 지급해라. 아니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일할 때보다 빠른 속도로 피드백을 했다. 그녀와 일하면서 처음 받은 가장 빠른 피드백이었다. 빠른 피드백만큼 답변은 정말 고민없이 뱉어내는 막말이었다. '너 그렇게 안 봤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줬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개입하지 말라 등'의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악담이었다. 정말 우습게도 1의 타격도 오지 않았다. 모든 말이 너무 가벼운, 왜 나한테 그래? 수준의 철저히 자신의 감정만을 담은 문자 따위로 보였다. 다만 '배려'라는 단어가 탁 걸렸다. 마침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이 묻는다. "이 사람 '배려'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거야?" 지금까지 맥락에서 그 단어를 뱉을 수가 있을까? 창피했다. 내가 '배려'라는 단어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일을 했구나 싶었다. 조치를 취한다는 말이 효과는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 30%에 해당하는 돈은 들어왔다. 오늘은 2월 16일이다. 과연 2월 15일에 70%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왔을까? 난 이미 정답을 알고 있고 여전히 나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23일, 글을 발행하는 오늘은 들어왔을까? 맞혀보시라.)


이 사건이 마침 설이 다가오기 즈음, 친구들의 깜짝 생일 이벤트가 있던 직전 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건 이후 매일이 지날수록 나는 또 분노를 넘어 자책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왜 사람 보는 눈이 이거밖에 안 되는지, 왜 또 나와 연관된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일을 겪게 하는 건지, 결국 난 지금까지 무엇을 배워온 건지. 우울과 무기력함의 근원이었다.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내가 무서웠다.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무서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멍하니 누워서 이 상황을 외면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붙들어보고 싶었지만 정신 상담을 받기에는 너무나 내 안의 원인은 명확했다. 역시 다시 요리에 빠져드는 일 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시작부터 곱씹어 보며 정리해 볼 만큼의 노동과 시간이 필요했다. 만두가 떠올랐다.

줄곧 만두를 빚고 싶다, 아니 빚어야만 하겠다는 의지가 들곤 할 때는 조용히 생각을 다듬고 싶은 때였다. 생각을 비우기에도 집중하기에도 '만두'를 만드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고 여겼을까? 마침 설이었고 이번 설에는 사촌 언니가 음식 준비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해서 나도 뭐라도 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외가는 이북이 고향인 할머니의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 사촌 언니는 국에 들어갈 삼삼한 이북식 만두를 만들터라 난 심심할 때 집어먹을 (사실 맥주로 답답한 속을 뻥 뚫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야식 안주를 겸하여) 중국식 군만두를 떠올리게 되었다.




조용히 생각을 더듬고자 하는 것인데 만두피를 사서 빚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만두피도 만들어본다. 파는 만두피도 얇고 맛있긴 하지만 직접 반죽을 해 발효를 한 반죽은 피가 두꺼워도 반죽 자체에서 빵 같은 고소함과 쫀득함을 느낄 수 있다. 나름 이 맛도 즐겨볼 수 있는 맛이라 생각해 가끔은 피를 사서 빚는 것보다 직접 피까지 만들어보는 무모함도 추천해보고 싶다.

중력분과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소금을 넣고 매끈한 반죽이 될 때까지 손으로 치대 준다. 최근에 빵을 만들며 안 사실이지만 치대면 치댈수록 매끈해지는 반죽이 신기하다. 빵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의 기쁨도 크지만 이리저리 손에 붙은 밀가루들이 치댈수록 하나의 덩어리로 섞여가고 완벽한 덩어리의 일부가 되는 걸 보는 반죽의 단계 역시 만만치 않은 기쁨이 생성된다. 손으로 조금 떼어내 반죽을 쫙쫙 펴보며 손가락을 비쳐본다. 찰기를 눈으로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랄까? 찢어질 듯 찢어지지 않고 얇게 늘어나 손가락의 형태가 비쳐 보이면 딱 좋은 상태이다. 물론 이렇게 손으로 반죽하는 기쁨이 있지만 그래도 반죽기가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훗. 기계가 아무래도 좋긴 좋겄지.

이렇게 완성된 반죽은 빵을 만들던 여느 때처럼 냉장고에서 오랜 시간 잠을 재우며 숙성시켰다.


잘 잤니? 빵을 만들 때처럼 반죽에게 말을 걸어본다. 요즘 정말 상태가 안 좋은 게 분명하다.


다음 날. 하루 재운 반죽을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어 냉기를 빼내며 만두 속을 만들기 시작한다. 예전에 선생님에게 배운 향미수를 만들어 보았다. 생강과 마늘, 화자오를 넣고 끓인 물을 부어 우려내 쓰는 향미수는 돼지고기 잡내를 없애고 중국요리다운 향을 입혀주는데 쓰이는 것 같다. 충분히 향미수를 우려내는 시간 동안 다진 돼지고기를 준비하고 간을 한다. 소금, 설탕, 후추, 간장으로 기본적인 간을 하고 소흥주도 꼭 빼놓지 않는다. 모든 중국 요리에 빠지지 않는 필수 재료다. 연육 작용을 돕는다는 베이킹 소다를 조금 추가하고 전분과 참기름을 넣으면 돼지고기는 일단 완성.

부추도 잘게 다져놓고 집에 남는 청경채도 다져 준비한다. 채소의 양이 너무 많을까 걱정했지만 우리 외가는 고기를 잘 먹지 않는, 고기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라 다 때려 넣어버리기로 했다. 맛있는 건 많이 많이. 다음 준비한 고기에 향미수를 조금씩 넣으며 한쪽으로 휘젓는다. 이게 중국식 만두의 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과정을 꾸준히 진행하면 고기 소가 마치 파테 속처럼 페이스트 화 된다. 우리나라 만두는 김치도 넣고 야채도 많이 넣어 씹는 즐거움이 있는 만두인데 중국 만두의 소는 씹는 맛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향으로 맛으로 존재감을 살짝만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중국에는 어마어마한 만두 종류가 있을 테니 소의 맛이 주인공이 만두도 있겠지만서도 아마도 지금 만드는 이 군만두는 아마 맥주 안주로 딱인 만두가 될 것 같다. 시원한 맥주에 두세 개 막 집어먹어도 삼삼하니 맥주 맛을 방해하지 않을 만한 그런 만두. 먹을 때 비가 왔으면 좋겠구먼. 이렇게 고기도 완성하면 다져놓은 야채를 넣어 소를 완성한 후, 본격 만두를 빚을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조금 더 힘차게, 오래 휘저었어야 하나 싶다. 별로 페이스트 같아 보이지 않네.
만두 소가 완성되었다. 동그랑땡처럼 부쳐먹어도 맛있겠다. 아니면 굴림만두처럼 살~짝 밀가루 묻혀 쪄먹어도 좋을 것 같다.


자, 이제 만두피를 만들 차례. 이제부터 본격 생각을 비워내는 시간이다.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었으면 정말 고행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 될 텐데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니 의도에 맞게, 여유 있게, 마음을 빚어낸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본다.

먼저 반죽을 길게 늘여 밀대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적절한 양만큼 떼내어 분할한다. 나는 대략 17g씩 분할했는데 만두 사이즈는 마음에 들었으나 소가 부족해 결국 반죽이 남게 되었다. 딱 맞추는 것은 언제나 실패. 떼낸 반죽은 동그랗게 빚어 일단 밀가루를 넉넉히 담은 봉지에 보관하며 마르지 않도록 한다. 분할이 끝나면 동그랗게 빚어놓은 반죽을 밀대로 밀어 동그란 만두피 모양으로 펴준다. 사이즈 생각 않고 대략 눈대중으로 만들곤 하는데 빚어봐야 큰지 작은지 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일단 동그란 만두피 모양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살살 돌려가며 동그라미 모양을 잡아나가는데 한번 해보시라.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커지는 동그라미를 만들거나 동그라미가 아닌 것을 만들 수도 있다. 이때는 복잡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동그라미에 집중!

밀대로 밀고 만두를 빚는 작업은 동시에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인데 만두피를 다 만들고 난 후 만두를 만드는 경우 아무리 밀가루를 잔뜩 묻혀도 만두피끼리 붙어 떼어지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 엄청난 시행착오들을 겪은 후에 깨달은 것들이다. 물론 옛날에는 명절 아침에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두를 함께 빚으니 모를 수밖에 없던 사실이었으나 할머니가 음식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설음식을 함께 준비하기보다 각자 준비해 오는 때가 늘어가고 혼자 만두를 가끔 만들어 먹다 보니 하나 둘 알게 된 경험적 지식이자 요령이다. 지식이나 요령 알 필요 없으니 만두를 만들 때는 꼭 누군가와 함께 만드시길. 만두 만들기를 지금의 나처럼 개인의 정신적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와의 화합과 즐거운 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길.(흙. 갑자기 처량해지는 나 자신.)


반죽 분할해놓기. 동글동글 만들어 살짝 눌러 밀가루를 뿌려 마르지 않게 보관. 귀엽네.
사는 것만큼 예쁘진 않지만 이 정도면 잘 만들지 않았습니까?


만두 빚기도 동시에 시작. 만두피와 소를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는다. 여러 만두 모양이 있지만 군만두는 밑바닥이 평평해야 한다. 프라이팬에서 밑바닥을 기름으로 충분히 구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 예전에 만두를 배울 때 선생님이 알려주신 군만두 모양을 오랜만에 따라 해본다. 반죽을 손에 쥐고 소를 넣고 대략 반원으로 접어 중앙에 포인트를 찍는다.(완전히 접는 것이 아니라 주름을 잡는 것이다.) 오른쪽, 왼쪽 모두 찍어놓은 중앙 포인트로 균형 있게 접어 주름을 만들면 아래 사진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아... 이것을 텍스트로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네. 유튜브 없나? 그냥 밑이 평평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보시라. 모양이 중합니까? 맛만 있으면 된 것이지요.


오늘의 작업준비. 만두피가 붙어서 안 떨어질까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술 한잔은 준비했다.


만두의 앞, 뒤, 바닥. 무슨 모양인지 모를 만큼 개판인 아이들도 있었으나 최대한 예쁜 것으로 사진을 찍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앉아 만두 빚기를 시작했다. 도저히 참기 어려워 만두는 완성도 안되었는데 미리 위스키를 조금 담아 술기운을 느끼며 만두를 빚었다. 모양 잡는 것이 익숙해지니 어느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난 어떤 실수를 한 것일까? 내가 그곳에서 일하겠다고 했던 건, 그 사람을 믿고 함께하려고 했던 결심은 열정이었나 욕심이었나?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고 최대한 내 마음을 냉정하게 돌아보며 대답을 생각했다. 그래, 결국은 100% 내 욕심도 아니었고, 100% 순수한 열정도 아니었다. 어설픈 마음이 어설픈 결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다만, 예전처럼 혹독하게 나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든 한두 번에 사람을 꿰뚫수 없으니. 그런 경지에까지 가는 거면 세상의 이치를 통달할 만큼의 연륜과 나이가 쌓이지 못한 이상, 돗자리를 깔지 않았겠는가? 이번 경우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는 검증하지 않은 채,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이 할 수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다는 오만의 결과였다.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겸손하게 다가오는 상황을 맞이하기로 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내가 예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감히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오만이며 실체 없는 희망적 상상과 기대는 망상일 뿐이다. 용기와 도전이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망상을 포장하지 않기로 해본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맞아보기로 했다.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술 때문인가?


다 만든 만두는 몇 개씩 소분해 냉동해 놓았다가 명절에 조금씩 꺼내 놓았다.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 만두를 굽고 어느 정도 예쁜 갈색이 되면 물을 조금 부어 프라이팬 뚜껑을 닫아 찌는 듯이 익혀낸다. 전분물을 부어 날개를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깔끔하게 하나씩 이쁘게 담아보고자 다 익힌 만두에 검은깨와 부추를 뿌려 장식했다. 풍성한 설 식탁에 내 군만두는 조금 생뚱맞았지만 혼자 먹는 식사에는 역시 이만한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맛있게 차려진 설날 접시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
쫀득한 만두피. 삼삼한 만두소. 집어 먹기 딱 좋은 크기의 안주로 며칠간 행복했다.


무사히 명절을 보내고 뒤보다는 앞을 보려고 노력하니 점점 마음이 잔잔해지고 자꾸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마음의 불안은 찾아오지만 그럴 때마다 만두를 빚을 순 없으니 만두를 빚는 것처럼 마음의 모양을 잡으려고 노력해 본다. 어차피 인생에 필요치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하는 계기를 만들었구나, 그러니 좋은 사건이었다 생각하자고 마음먹으며 화로 얼룩진 못생긴 내 마음을 예쁘게 만들어보려고 마음을 집중한다. 그렇게 마음을 빚다 보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 건 금방 티가 나겠지, 그렇게 마음의 눈과 생각도 높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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