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헤이 Dec 05. 2023

음식으로 쓰는 생각 기록

시작해 보는데..... 나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또 길을 잃었다.

이게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서 횟수를 세는 것조차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회사는 7개, 프리랜서 경력 1개, 한 달 반 만에 때려치운 회사 1개, 합하면 9개에

직장 경력은 13년째가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길을 잃는다.

분노를 표현할만한 열정과 에너지가 남아있는 후배들이 조언을 구할 때 해주었던 말들.

'버텨라, 지금 힘든 게 당연한 거다, 내 답이 항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항상 좋은 도구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최대한 경험하고 배워라.'

부끄럽다. 나는 말 참 쉽게 했었구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조언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꼰대야 반성해라.


더 이상 변수에, 환경에 흔들리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아

이번에야말로 내 것을 해보겠다며 사업을 이끌기 위해 들어온 이 회사에서의 6개월,

어떠한 성과도 없다.

물론 초기 사업은 힘든 거고 어렵다. 

그러나 시장에 도전하는 우리나라 초기 스타트업은 신생아 수보다도 많은 느낌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회사들이 나타나고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회사들 중 살아남는 회사는 몇이나 될까?

살아남았다의 기준은 뭘까? 언제까지 살아남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거지? IPO?

요즘은 잘 나가는 회사들조차 넘어지고 있다.

또 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내가 살아남는다는 기준은 뭘까? 연봉? 직급? 안정적인 고용?


치열하게 사업하시는 분들은 웃을 수 있다. 6개월 가지고 뭘 해봤다고.

진짜 치열했었나? 정말 열심히 해보았나?

맞다. 그게 내가 견딜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치열함이 없다는 것.


6개월 안에 손에 쥐어진 결과물이 없다.

6개월 내 투자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매출의 변화 1이 없고

이 조직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시도해 본 액션이 1도 없다.

긍, 부정도 없다. 부정의 논리도 없다.

심지어 자리에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난 뭘 하면서 있었던 걸까? 뭘 기대한 것이었나? 능력과 주제를 생각하지 못한 과욕 아니었나?

그래 더 과욕을 부려 물론 혼자해나 갈 수도 있지. 

그래, 진짜 혼자가 된다면 난 이 일을 지속해갈 수 있을까?

그것도 먹고살면서?


그렇게 난 또 방향을 잃었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다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했던 일. 누군가는 해나가야 한다고 확신했던 일.

내가 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일.

그 확신이 옅어진다.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걸 놓고 싶지 않은데,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이곳에서, 이들과 같이 그 욕심을 가졌다간 모든 걸 잃을 것 같다.

초기 창업 팀을 중요하게 보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역시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조언은 없다.

(조언은 무거운 것이구나.)




내가 매번 몸으로 부딪혀야만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빠르게 얻을 수 없다면 별수 있을까? 버텨야지.

최고의 자산이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탈출 각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미 나갈 회사에서 목표 없이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지체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역시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정말 거지 같아도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만큼 이 선택에는 내 마음 끌림의 농도가 짙었다.

그리고 내가 맞다고 생각한 그림을 빠르게 놓아버리는 것도 싫다.(한 번이면 되었다.)

사실 더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선택하고픈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곳에 거는 기대감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지만

사람의 생각들을 조율하는 것, 설득하는 것에, 지쳤고 그리고 힘들다.

일을 일답게 만들기 위해 내 것도 아닌 것에 치열하게 설득하는 것에 지쳤다.

마음이 움직이는 일조차 부딪혀버린 현실에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겠는가?


아무튼 이 지독한 우울감 밑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나만의 해결책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이들을 설득해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

(울고 싶을 정도로 싫지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면 어쩔 수 없지.. 라며 부딪혀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간'

내가 잘하는 일을 찾는 '시간'

불행히도 13년간 달려온 내 커리어에 끝에서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매칭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수도 없고 매번 변화무쌍하지만 

내가 질리지 않고 열심히 해왔던 것, 어떤 상황에도 내가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난 정말 아직도 나 자신을 많이 모르는 것 같다.




오래 생각하다 보니 '요리'가 보였다.

밖에서 사 먹는 습관을 버린 지 얼추 10년, 꾸준히 도시락을 쌌다.

물론 가끔 맛집이나 핫플에서 식사를 사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주식은 집(에서 한) 밥이다.

특히 한의원으로부터 소식을 요구받은 1년 남짓한 기간 내에는 도시락을 빼놓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요리'를 하고 내 밥을 싸는 것은 매일 하는 루틴 중 가장 중요한 루틴이 되었고

먹고 싶은 건 죄다 해먹자라는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프렌치, 중식, 멕시칸, 비건 등 

오프라인, 온라인 요리 구루들과 수많은 블로그 요리사들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도전하게 되었다.

깊은 우울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불과 몇 달 전에도 이 루틴을 붙들며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내가 나 자신한테 해줄 수 있는 '돌봄'의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지속가능한 나의 루틴.

오늘부터 내 유일한 루틴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내가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안타깝게도 '기록'은 내 루틴이 아니다.

꾸준한 적이 없었던 일이다.

생각날 때마다 뱉어놨던 글들이 단편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나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이건 지속가능한 일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