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원장 Jan 08. 2023

골프를 잠깐 내려놓고

이걸 골프글이라고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야심 차게(?) 첫 글을 발행했다. ‘나는 백돌이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내년엔 많이 달라질 것이니 두고 보자는 반전의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지금 필드에 나가면 못해도 90대 초반은 무난하게 칠 거 같으니까. 80대가 어렵지 않아 보이니, 누구보다도 봄을 기다리는 골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23년은  TPI LEVEL 3 수료와 권영후 박사님의 생체역학 강의 수료 등 이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실력적으로도 USGTF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첫 해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 골퍼들이 주변에 많지만, 골프클리닉을 계속하려면 실력적으로도 최소한 그 정도의 자격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써놓은, 서랍에 쌓아놓은 글이 열 개가 넘었다. 작가 신청하면서 내놓은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대로 써놓은 글들이었다. 이대로만 잘 써 내려가면 주 2-3회는 무난하게 발행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글을 발행하다 보면 브런치의 방향성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발행하려고 보니 맘에 드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충격이었다.


골프 블로그를 포스팅하면서 많게는 매일, 적게는 주 1-2회 꾸준하게 포스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릿속이 골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나면 여지없이 유튜브를 검색하고 골프 클럽을 이것저것 바꿔보고 신상품도 비교해보고 같이 골프를 치는 아마추어 모임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토론도 나누곤 했다. 조금씩 내 몸에 맞는 스윙을 찾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들을 찾아나갔고, 그 과정은 무척이나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골프 연습기는 거의 다 사서 써본 것 같다. 아직도 절반 정도는 한의원과 집에 나눠져 있고, 골프 클럽도 샤프트와 헤드를 이것저것 바꿔보며 나름의 실험(?)도 하고 내 몸에 맞는 장비를 찾아나갔다. 그렇게 내 골프가 정리되고 나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그동안 축적되었던 골프 생각을 쏟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아마추어의 즐거움에서 책임감을 가지는 프로의 마음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가 보다. TPI를 수료하고 권영후 박사님의 생체역학 강의를 들으면서, 이전처럼 생각나는 대로 블로그 포스팅을 쓰거나 브런치 글을 써내기가 두려워졌다. 책임감 없이 단지 호기심과 아마추어의 열정만으로 부족하고 편중된 글을 내어 놓기가 부끄러워진 것이다. 좀 더 깊이 있고 검증된 글을 내놓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가 더 필요하고, 써놓은 글 또한 크로스 체크와 함께 좀 더 폭넓고 일반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연습하다 꽂힌 드릴에 대한 글 같은 거 말고.


연말에 일이 많아지면서 골프 연습도 한 달가량을 쉬었다. 겨울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것도 있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연습장에 들렀다 가기가 부담스러워진 부분도 있었다. 아침은 아침대로 바쁘고, 저녁은 저녁대로 일이 있었다. 연습을 안 하니 자연스럽게 스윙에 대한 고민도 줄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실내연습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최근 2-3년 동안 필드에 나갈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거리나 스핀, 구질 같은 수치도 중요하지만 일단 날아가는 공을 보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부천에 있을 때부터 출근 전에나 퇴근 후에 한의원 옆 인도어 연습장을 찾았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인도어가 좋았다. 실내 연습장을 등록한 적도 있었지만 화면으로 날아가는 공은 영 어색하고 부족해 보이기만 했다. 골프 클리닉을 시작하고 연습량이 늘었을 때도 나는 집 근처 인도어 연습장을 고집했다. 아파트에 딸려 있는 실내 연습장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을 때만 갔다. 트렁크에서 골프화를 꺼내 갈아 신고 주차장에서 연습장으로 백을 메고 걸어가는 그 느낌이 설레고 좋았다. 여름에는 선풍기가, 겨울에는 히터가 있었다. 무엇보다 날아가는 공이 날씨를 잊게 했다.


연습량이 줄어들면서 장비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난 샤프트에 관심이 많고, 욕심도 많다. 신체 스펙에 비해 무겁고 단단한 샤프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투어 AD니, 벤투스니, 텐세이니 프로들이 많이 사용한다거나 유튜브에 많이 리뷰된 샤프트들은 거의 구입해 사용해 보고, 중고로 팔고 그랬다. 인기 있는 샤프트는 손해를 덜 보고 팔 수 있어 좋았고, 백에 꽂아둔 샤프트도 대여섯 개쯤 된다. 진료를 하면서도 피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샤프트의 무게와 종류를 권해주기도했다. 환자 중에는 내 권유로 치료 중 피팅을 받고 통증이 현저하게 줄고, 비거리도 늘어난 사례도 있었다. 180cm가 넘는 건장한 남자가 스탁 r 샤프트를 쓰고 있었으니 탄도만 뜨고 비거리가 날 리가 없다. 세게 칠 수록 탄도가 뜨니 스트레스도 받고 어깨와 팔꿈치에도 무리가 왔다. 건장한 남자가 가벼운 샤프트를 쓰는 건 야구공 대신 탁구공을 전속력으로 던지는 것과 같다. 속도도 나지 않고 다치기 쉽다. 피팅을 받고 70그램대 X로 바꿨으니 대충 봐도 6단계 이상을 뛰어넘은 강도다. 270미터를 펑펑 때려내더니 세미 프로 테스트를 준비한다고 했다. 뿌듯했다.


브런치를 다시 연재하면서, 세워놓았던 계획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강의를 듣고 연습을 재개하면서 느낀 것들을 연재해보려고 한다. 마음이 움직여야 손가락이 움직이고, 글이 써지더라.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는 아이패드와 스프링 제본을 앞에 두고 씨름해야 할 것 같다. 따뜻한 봄이 오면, 차곡차곡 쌓인 수료증과 책 한 권 정도는 원장실에 놓아둘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저는 백돌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