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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Jul 26. 2022

김태리 때문이었나

서류합격 소식을 들은 건 서울로 나가던 빨간 버스 안이었다. 가고 싶은 회사였고 2차 면접에 합격하면 입사할 수 있었다. 1차를 통과했다는 기쁨과 남은 면접에 대한 압박이 동시에 들었고 바로 그때 전달받은 면접일은 겨우 이틀 뒤였다. 이틀 동안 뭘 어떻게 준비하란 말인가. 그런 막연함과 막막함이 몰려왔을 때 떠오른 것은, 다음 날 있을 어떤 영화의 지브이였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정작 영화에는 안 나오는) 배우 김태리가 나온다는 지브이를 떠올렸다. 막 스타덤에 오른 김태리를 보고 싶은 마음은, 그의 연기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누구라도 품을 만한 것이었다. 간신히 취소 표를 구했고 면접이 있지만 ‘사실 이건 가야 해’라는 마음이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다. 물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영화관에 오가는 두 시간 넘은 시간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영화와 지브이만 후딱 보고 오면 괜찮지 않을까-아무리 시험공부를 해도 밥은 먹고 노래를 듣는 여유가 있는 것처럼-라고 생각했다.


면접을 하루 앞두고 간 용산 CGV에서 내 두 눈으로 똑바로 저기 앉은 김태리를 볼 수 있었다. 김태리가 뭔가 엉뚱한 한마디만 해도 귀를 쫑긋한 200명이 넘는 관객들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두 눈을 반짝였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배우를 직접 본다는 건 꽤 생경한 일이었기에 몸가짐을 바로 하며 경청했다.


물론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다. 그다음 날 면접이 있었고 아무리 작품이 걸작이어도 영화가 막 끝나고 시작되는 지브이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금방 공기 중으로 흩어지곤 하니까. 기대하며 간 것 치고 지금 남은 건 그때 찍은 사진 몇 장과 희미한 이미지들뿐이다. 그래서 그 지브이가 끝났을 때 뭔가 허무함이 밀려왔다. 영화가 끝나고 바로 집에 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역시 계획은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조금 늦게 도착했다.


당연히 그런 일을 겪고 벌어진 다음 날의 승부에서 보기 좋게 패배했다. 원체 면접에서 긴장하고 순발력이 약한 데다가 준비마저 엉성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최근에 천만이 넘게 본 영화의 감독 이름을 물어본 질문에 답을 했지만 어정쩡하게 말했다. 이런 질문조차 나는 예상하지 못했나 라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고 싶은 회사였지만 겨우 한 명의 합격자를 뽑는 그 면접 자리는 내 의욕을 낮추기도 했다. 준비해도 사실은 쉽지 않겠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김태리를 보러 간 건 아니었는지. 당연히 그건 해법도, 해답도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불안하고 방법 찾기를 더 어려워했으니까. 간절함을 에너지 삼아야 했지만 그때만큼은 간절함은 나를 더 막연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직진으로 마주하고 방법 찾기란 고단하다. 마음을 굳게 먹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때의 김태리와 지브이와 어떤 회사의 면접을 떠올리며 지금은 그때보다는 좀 나아지지는 않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이 글을 썼다는 건, 그사이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었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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