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1929-2021) 화백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흔세 살이던 1971년부터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다. 캔버스 뒷면에 뿌려 놓은 물이 반사돼 생긴 물방울의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이듬해 그는 파리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 '살롱 드 메'에서 첫 번째 물방울 작품 '밤에 일어난 일'을 공개한다. 초록 바탕에 물방울 하나와 그 그림자를 넣은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만 진짜 물방울이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의 정교함이 녹아든 물방울. 그에게 물방울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후 50년간 물방울만 그린다. 그렇게 거장의 위치에 오른다. 그는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있다.
28일 개봉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 화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하지만 그의 업적보다는 그의 삶 자체를 가까이에서 다룬다. '화가'보다는 '인간' 김창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 화백을 찍은 사람은 그의 둘째 아들 김오안(48) 감독. 김 감독은 아버지가 늘 궁금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둘 사이에는 빈틈과 기묘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독해 보이지만 명예나 특전은 거절한 적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해줄 때 달마대사 이야기를 한 아버지가 좀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산타클로스보다는 스핑크스에 가깝다"라고 고백한 김 감독에게 아버지는 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족이기에 조금 더 객관성을 두고자 포토그래퍼이자 영화감독인 브리짓 부이요에게 공동 연출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5년에 걸쳐 찍고 완성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수록 관객은 한 사람의 깊은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캔버스에 조용히 내면을 투영하고 때로는 힘차게 붓질해야 완성되는 그림을 작업하는 과정과 닮았다. 김 화백의 말수는 적지만 그의 삶 마디마디마다 강인함과 집요함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김 화백의 모습은 풍파를 겪었지만 곧은 뿌리를 내리고 꿋꿋하게 서 있는 노송 같다. 김 화백이 노자의 도덕경 경구를 매일 적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눈꺼풀을 잘라내고 명상했다는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고 그 후 1946년 위태롭게 휴전선을 넘어 월남한 기억을 떠올릴 때다. 그는 고백한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김 화백은 6.25 전쟁 때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의 두려움이 작품의 시작이 됐다.그래서 그의 초기작들은 공포가 주제였다. 그렇게 물방울 그림 이전의 삶에 주목하다 보면 한국 격동의 현대사가 김 화백에게 뿌리 깊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관객은 이해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그의 물방울이 단순히 영롱하게는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