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Piano Sonata, D 960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남아있는 복숭아 중 상처 난 부분을 정리하고, 호박을 찌고, 남은 가족의 점심을 챙기고, 짐을 싼다. 어디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항암 치료 갈 준비 중이다. 병원에서 올 병실 배정 전화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각자의 일을 하는 아침,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다.
그의 음악을 들으니, 호박을 썰고, 식탁의 그릇을 설거지하는 모든 행동이, 엄마와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이 순간순간이 괜스레 숭고하고 애잔하다. 음악의 마디마디가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을, 그리고 ‘그 삶 너머에 존재하는 영원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프고 보니,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요즘에 유독 그런 것이 아니라, 늘 그래 왔을 것이다. 바쁜 내 마음에 널려있는 고통과 죽음이 들어오지 않았었다. 타인의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이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언제 그 자리에 서게 될지 모른다. 아직 나의 순서가 아닐 뿐.
슈베르트의 마지막 3개 피아노 소나타는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했다. 서른한 살이 되던 1828년, 그는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매독을 이미 5년 전에 진단받았고, 수년간 악화된 매독 증세에 다가온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피부의 발진으로 시작하는 초기 증상에서 말기로 가면 매독균이 내부 장기와 중추신경계에 침범하면서 심각한 통증을 유발한다고 되어 있다. 그는 친구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나는 죽음을 반긴다. 그러나 고통은 두렵다.’고 했다.
누군가 슈베르트에게 ‘당신의 음악은 왜 늘 슬픈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행복한 음악이라는 게 가능한가요?’라고 답했다. 슈베르트의 장조에는 늘 눈물 방울이 맺혀있다. 그는 장조를 단조보다 더 슬프게 쓰는 재주를 지녔다. B flat 장조 음악 중에 첫마디, 첫 음부터 울게 하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음악밖에 없다.
생애 마지막 해에, 장기와 중추신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 속에서, 전에 없던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썼고, 이 소나타를 포함한 여러 개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천상계에 올린 대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헛되어 보이는 개개인의 삶이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는 공포와 고통의 마지막 시간이었겠지만, 그 시간의 열매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 작고 힘없는 목소리들을 대변해주고 있음을 죽음 너머로 건너간 그가 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