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Mozart Violin Sonata K.379
Violinist 김문정과 첫 리허설 했다. 올해 12월까지 이어질 긴 장정의 첫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문정이는 올해 서른 하나라는데 내가 문정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고딩이였던 문정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성인으로 다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김문정은 매우 단단했다. 초벌이지만 악보연구도 꼼꼼히 해왔고, 악장의 템포나 꾸밈음 처리도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왔다. 문정이와의 작업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쓸 때 비엔나에 있었지만, 아직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신하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완성하고 한달 후인 5월 9일 대주교에게 '쫓겨나' (표면적으로는) 그토록 원하던 자유인이 된다.
그는 자신처럼 대주교의 비엔나 여행에 동행한 바이올리니스트 만토니오 브루네티 (Antonio Brunetti) 와 함께 4월 8일 이 작품을 초연했다. 정해진 연주시간에 빠듯하게 맞춰서 (모차르트의 편지에 의하면 초연 전날 밤 11시부터 12시까지 써서) 바이올린 파트를 완성했고, 피아노 파트는 종이에 옮기 시간조차 없어서 자신의 머리에 '담아두고' 악보없이 연주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무슨 연유인지 브루네티를 몹시 혐오했다. 아버지에게 보낸는 편지에서는 '거칠고 더러운' 브루네티라고 표현하면서 대주교가 그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이 희한한 일이며, 대주교 대신 자신이 브루네티를 부끄러워 한다고 썼다. 인격도 별로에 실력도 별로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리 마음에 안들어하던 브루네티는 K.379를 연주하고 단 3일 후에 대주교의 숙소를 떠난다. 사표를 던진 것인지 그냥 잘츠부르크로 돌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한달 후에 모차르트가 브루네티와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직장에서 잘린 것이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사실 오랫동안 원하던 바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하로서의 의무만 강요하는 대주교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비엔나에서 독립적인 음악가로 부유한 음악애호가들을 제자 삼고 독주회 등의 연주를 통해 얼마든지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그에게 비엔나는 약속의 땅이었고,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들은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수준 있고 재력도 있는 비엔나 귀족층의 호감을 얻고자하는 목적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16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 이 작품은 K.302와 함께 1악장이 단조이다.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던 K.302에서의 애잔한 e minor와는 대조적으로 K.379의 g minor에는 밖으로 언제든 터져나올 것만 같은 살아있는 에너지가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