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연주자의 음정이란?
E minor의 이 아름답고 우아하며 정열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은 협주곡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빼어난 작품이다. 멘델스존은 그저 한 명의 뛰어난 작곡가이기를 넘어서서 시대를 이끄는 아이콘 같은 인물이었다. 바흐의 음악의 부흥을 주도한 인물답게, 그의 e minor 바이올린 협주곡은 고전주의 시대의 협주곡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혁신적인 면모를 갖춘 작품이다. 예를 들어 제시부에서 오케스트라가 한 바탕 연주를 하고 나서야 솔로이스트가 등장하는 것이 이전 음악에서의 상식이었다면 멘델스존의 협주곡에서는 두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이올린 전공자들에게 이 작품의 난제 중 하나는 음정이다. 수없이 등장하는 3도 음정, 첫 페이지를 가득 매운 마단조의 삼화음은 단순하면서도 왜 그리 어려운지.. 이 작품의 레슨에서 음정의 지적을 피해 가는 학생을 거의 보지 못했다.
I의 레슨. 처음 4마디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음정 지적이 나왔다. 첫 삼화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첫 페이지에서 음정으로 서너 번 더 멈춰 섰고, 결국, 오늘 레슨은 음정에 걸려 다른 내용으로는 전혀 진입하지 못했다. 이 상황이 오면 뒤에 앉은 반주자는 조용히 핸드폰에 손이 간다. 오늘 피아노 칠 일이 별로 없을 테니.
평균율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에게 순정률 악기인 바이올린의 음정의 세계란 알다가도 모르겠는 그런 알쏭달쏭한 영역이다. 바이올린의 음정이 화성 안으로 들어오는지 아닌지, 화성과 잘 섞이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지만, 바이올린 선율만 가지고 높다 낮다를 얘기할 때는 솔직히 오리무중이다. 선생님이 음정을 가지고 학생에게 이게 높냐 낮냐를 물어보실 때 나 혼자 속으로 대답을 해보면 정답률이 50%가 안된다. 내 귀가 훈련이 안되어서도 그렇겠지만, 가끔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음정이란 매우 객관적인 어떤 정답이 아니라, 상당히 주관적인 내용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누구나 몸으로 익힌 경험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현악기 연주자들의 음정이란 지판을 집는 경험. 장음정은 멀고, 단음정은 가깝다 라는 경험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닌지. 손가락의 경험이 귀를 교란시키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고서야 때로 그들이 말하는 장음정은 너무 높고, 단음정은 너무 낮은데?!!!
그러나 평균적으로 음정을 분할해놓은 나의 악기는, 장조 음정과 단조 음정이 극명한 성격으로 나뉘는 바이올린의 음정이 구사하는 섬세함과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들의 장음정은 밝고 화려하게 높고! 단음정은 어둡고 슬프게 낮은 것이다.
음정 지적을 잔뜩 받은 학생들은 주로 내 죄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의 표정으로 주눅 들어 집에 돌아가곤 한다. 그들의 죄는 귀가 나쁘거나 (아직 바이올리니스트의 귀가 아니거나), 들리는 소리에 손가락을 민감히 훈련시키지 않은 것이다.
음정의 레슨을 받은 날 나는 늘 평균율 악기를 연주해서 얼마나 다행인지를 생각한다. 아니었다면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저 알쏭달쏭한 높낮이에 귀를 맞추는데 할애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귀한 시간을 음정 맞추며 보낸 사람들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함으로 무대에서 음정의 세계를 뽐냄 또한 알고 있다. 바이올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