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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Nov 21. 2023

원장님 같은 딸이 있어 부모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

나의 직업이란 사람들이 아프다 하는 것을 충분히 듣는데서 시작한다. 그럴 때면 통증 뿐만 아니라 상상치 못한 이야기, 그들의 가정사나 꾹꾹 묵힌 슬픔, 속사정 등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날이므로 어김없이 환자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문득 나의 가족이 떠올랐다. 나는 내 가족의 말을 이렇게 상세히 묻고 정성껏 들어준 적 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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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누군가 나의 아픔을 물어주고 그를 정성껏 들여다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주 못 보고 못 듣는척하므로. 오히려 너무 가까워 눈돌리고 마는 슬픔도 있다.


이들에게서 나오는 말이 어떤 것일지 두려워 진심으로 묻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애써 좋은 일들을 상기시키며 당장의 문제를 어떻게든 무마한다. 환자들이 처음 보는 우리에게 깊은 생채기를 내보이는 것은 그를 맨정신으로 보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원장님 같은 딸이 있어 부모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다. 아니요, 아마 아닐겁니다. 저는 여러분의 아픔에 드리는 관심에 절반의 절반의 절반도 나의 부모님께 드리지 못하는 걸요.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일이고 좋은 인간이 되는 길은 세상에나, 정말 너무나도 어렵다. 마음이 단단해지거나 혹은 무뎌지거나. 그 생생한 아픔에 눈돌리지 않고 머물러 줄 수 있다면.


소중한 이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묻고 가슴 속 깊은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오늘 같은 날이면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


2022. 11. 파리 뤽상부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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