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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Nov 17. 2023

인사(人事)에 박한 사람

오늘 아침 길을 나서는데 낯부끄러운 장면을 보았다.


함께 엘레베이터를 탄 중년의 남자분이 1층 주차 관리원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관리실 아저씨는 미소 지으며 "네 좋은 아침입니다" 하셨고 그들은 작게 허리 굽혀 맞절하였다.


부끄러웠다. 3년간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식의 인사, 혹은 존중을 건네본 적이 없다. 여지껏 나는 그들을 무슨 마음으로 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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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서 하루를 보낼 때 인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먼발치 쭈뼛거리는 환자에게 눈 맞추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일이 하루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돌변하여 부러 눈을 맞추지 않고 부러 다정한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낯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 못지않게 쭈뼛거리며 주변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거두어버리는 것이다.


얼마간 느끼고 있던 이 간극이 오늘따라 속 깊이 다가온다. 사람에 대한 관심, 혹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기반되지 않는다면 모든 진료는 핵심을 잃고만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를 한의사로서만 편가르듯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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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에 일 사(事)를 더한 "인사"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여는 시작 말이다. 그리고 그 인사란 대체로 서로의 안녕을 빌며 시작한다. 그간 평안한 날들을 보냈는지, 결국엔 부디 평안하시라 마음 한 조각을 건네는 일.


나는 이 어여쁜 말을 정성껏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이들이 가득한 엘레베이터에서 냉랭한 적막을 깨는 어린아이의 인사처럼.


복을 짓고 복을 나누고 복스럽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더 이상 잰체하며 살아가지 않아야 겠다.


2023. 11. 13. 고성 송지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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