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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Nov 16. 2023

케이스를 공유하는 일

글을 쓰기로 한지 꼬박 3주가 지났다. 매일의 기록과 그 위대함에 대해서는 여러 작가들의 입을 통해 익히 전해 들었지만 나는 유독 꾸준히 쓰는 글이 어렵다.


이제껏 나는 내 안에서 문장이 용솟음칠 때, 어떤 장면이나 문장이 터질듯한 감상을 전해줄 때에만 글을 썼으니 이토록 아무런 영감이 없는 날엔 어떤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시 환자들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데 편히 쓰는 글 속에 무언가 편향된 지식을 적어두었다거나 대중에게 오해를 살법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저 보통의 한의사인 내가 대단한 무엇인 양 치료 경과를 공유하는 것이 마음 한켠 불편하기 때문이다.


매일의 기록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이자 오랜 걱정.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무언가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과 슬픔, 분노와 기쁨, 무기력과 열정을 기록하며 내가 뱉은 문장만큼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한동안 삶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긴 산책과 훌쩍 떠나는 여행, 사진과 독서 등을 삶의 구원으로 여겼다. 그러나 어느 시점엔가 깨달았다. 고단함과 작은 영광을 담은 매일의 일상이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아주 주요한 요소라는 것을.


나는 하루하루 환자와 치료에 대한 고민을 성실히 쌓아가는 사람이었고 만약 매일을 기록한 글에 이들을 담을 수 없다면 거짓과 미화, 모호함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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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첫 글에도 적어두었듯이 내 삶에 완벽은 요원하다. 매일매일 하루치의 노력을 쌓아가는 삶. 영광이 찰나에 불과하다면 보통의 하루를 기록해두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먼 미래에 대단 비슷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도리어 오늘의 초심(初心)이 귀해지지는 않을는지. 그러니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오만으로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 11. 08. 낙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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