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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May 04. 2021

표영삼선생 동학강의-3

2004년 10월 20일


지금, 여기의 하늘님


수운 선생은, 천상의 저 높은 곳, 저 세상과 지금, 여기, 이 세상을 갈라놓고 천상의 저 높은 곳에 가치를 두는 사고방식을 철저하게 비판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감성세계와 초감성세계의 이중세계를 만들어 놓고 초감성의 저 세상에 권위와 가치를 부여해 왔습니다. 맑시줌 등의 역사결정론이나 예정론도 이런 사고방식에서 기인합니다.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정신으로서의 역사법칙에 따라 때가 되면 사회주의 천국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중세계의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은 서구에서 1882년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처럼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20여 년 앞서 수운 선생은 우리 몸에 하늘님을 모셨다는 내재적 신 관념을 통해 이중세계를 부정하고,'지금 여기'의 현실세계를 강조합니다. “천상의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닐런가” 이처럼 지상과 천상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허무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즉 “네 몸에 모셨으니 멀리서 찾지 말라(사근취원 捨近取遠 )"이라고 말합니다.


되어가는 과정, 역사 속의 하늘님


내재성과 함께 시간성은 수운 선생이 가진 혁명적인 신 관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성은 완성된 신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신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창조해 놓고 거기서 초월해 있으면서 바라보는 존재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과정과 함께 하는 신을 말합니다.


신의 내재성은 논학문의 '시(侍)' 와 관련해 내유신령(內有神靈), 신의 시간성은 외유기화( 外有氣化)의 ‘기화(氣化 )'로 표현됩니다. 수운 선생은 기화의 기를 “허령창창하여 사물에 섭리하지 않음이 없고 명하지 않음이 없으며 형상이 있는 듯하나 그 상태를 그려내기 어려우며 생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나 보기 어렵다( 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라고 합니다. 기氣는 온천지에 가득 차 생동하고 있으며 생물들이 새 모습을 갖고 저다워질 수 있도록 섭리하고 규정해 주는데, 그 모양과 상태, 소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는 온천지 생명체의 알갱이인 씨앗이 자라나는 모습, 즉 생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기조직력의 진행과정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지나온 과거를 밑천 삼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자기조직력을 가진 인간의 선택이며, 그 역사 안의 선택에 하늘님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수운 선생에 의하면, 하늘님은 초월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 안에 있으며, 자기조직력을 통해 최선을 다해 인간이 스스로를 선택해 나가는 과정 안에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현실, 19세기 세계사는 온통 썩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찾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수운 선쟁은 그 새로운 세상은 생각하는 틀을 바꾸는 데서부터 일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새로운 틀, 기준을 .선생은 신 관념을 통해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해월 선생에 의해 드러납니다. 수운 선생이 처형당한 다음 해 몇몇 제자들이 경주에 모여 제를 시낼 때, '인내천(人乃天), 인시천(人是天)'에 관해 말씀합니다. 양반이나 상놈이나 다 같이 존엄한 하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스승님께서 사람 섬기기를 하늘님 섬기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칙과 내수도문에서는 어린아이도 하늘님을 모셨다고 까지 합니다. 


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성이 하늘님의 존엄성과 같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꿈꿀 수는 있을 것입니다.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늘님처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꿈... 


사인여사천(事人如事天), 보국안민(輔國安民) 


못든 꿈에는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선결조건, 필요조건이 있습니다. 수운 선생은 그 선결조건을 보국안민(輔國安民)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도교 시대에 들어와 지킬 보(保)를 썼는데, 그것은 원래의 것이 아닙니다.) 도울 보(輔), 즉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매관매직의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도록 돕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반과 상놈, 적자와 서자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동학에서는 보국안민을 사람이 하늘님처럼 대접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여겼습니다. 1871년 수운 선생을 복권시켜 달라는 교조신원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동학은 보국안민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조선정부는 동학혁명 당시 전주성 함락 때까지도 이런 동학의 요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한기의 기학과 수운선생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 표영삼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조심스럽게 답변하셨습니다. 수운선생이 천하를 둘러본 경험과 부친의 영향을 받은 공부의 폭으로 볼 때 연관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또한 두 분의 사상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전통에 닿아 있고, 또한 19세기라는 시대적 조류 속에 나왔기 때문에 유사성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였습니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님 섬기는 것처럼 하라는 의미를 모든 생명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수운선생은 모르나 해월 선생에 이르면 '물물천 사사천 物物天 事事天)으로 확장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셨습니다. 

주문이나 영부의 주술성으로 인해 오해가 많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영부의 효험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성과 순수함에 달려 있다'는 수운 선생의 말씀을 소개하셨습니다. 

주문에 대해서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는 한 대학교수와 오래 전 이야기를 나눌 때, '동학은 주문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주기도문, 불교의 독경, 만트라에 대해서는  어떤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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