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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Feb 25. 2021

'결정장애' 그녀

 오늘도 그녀는 중국집 메뉴판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표정이 너무나도 심오하다. 그녀의 고민은 단 하나. 


‘짬뽕을 먹을 것인가, 짜장을 먹을 것인가’  


 옆에 앉은 친구가 다그친다. ‘아, 아무거나 먹어. 중국 음식 맛이 다 거기거 거기지.’ 하지만 그녀는 세상 신중하다. '이왕 돈내고 먹는거 한끼라도 맛있게 먹고 가야지. 맛없게 배만 부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야 .'


 원래 짬뽕을 먹을 생각으로 들어왔던 그녀가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한번 들어나 보자.  


 ‘막상 식당에 들어와보니 짜장이 더 맛있어보여. 예전에 어디서 이 집이 짬뽕보다 짜장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짬뽕은 국물 칼로리도 높잖아.“ 


 ”아니야 날도 우중충하고 오늘 같은 날씨에는 짬뽕이 딱이야. 남들이 뭐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하자. 너무 충동적인 선택은 실패를 부를 수 있어.“ 


 본인의 내적 갈등도 깊은데, 남 눈치까지 보기 시작하는 그녀. 앞에있는 친구가 슬슬 짜증을 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드디어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원래 선택대로 짬뽕을 선택했다.


런데 음식이 나온 뒤 짜장으로 눈길을 가는 건 어쩔 수없다. ’아 선택이 틀렸나? 역시 즉흥적인 감을 믿을 걸 그랬나?” 


민망한 듯 친구에게 슬쩍 말을 해본다. “나같은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은가봐. 그래서 짬짜면이 나온게 아닐까?”


“그건 네가 너무 생각도 많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거야. 뭘 그렇게 결정을 오래해. 그것도 시간 낭비라고.” 


 맞다. 그녀도 결정을 오래할 수록 본인만 힘들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회는 더 힘들고 괴롭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 ‘결정’이란 상당히 어려운 숙제이고 트라우마다. 어릴 때는 누구보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었지만, 나이를 먹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더욱 ‘선택’은 무거운 문제로 다가왔다. 


 짬뽕과 짜장의 편한 예를 들었지만,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자신이 오늘 어떤 길로 가느냐가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다시 말해 삶이 두려워지고 사람이 무서워지고 인생이 어려워진 순간, 그녀에게 선택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가 돼버렸다. 


 그녀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바로 결혼이다. 그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 사람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자기 사람은 보면 감이 온다는데, '혹시 결혼한 뒤에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 사람이 결혼 이후에 변하면 어떡할까' '지금 이 사람과 과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 속에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결정이 두려운 이유는 결과에 따른 책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때 어떤 결과가 생긴다는 것을 예측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실패를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작은 아이라도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혹시 모를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패했을 때 괴로움을 빨리 털고 일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혹자는 그녀가 매사 선택에 겁을 내는 이유가 어렸을 때 부모의 엄격한 훈육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겪은 것이 몸에 그대로 체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상, 과거 일에 더이상 메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중요한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선택에 대해 책임을 기꺼이 지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선택을 잘 하고 실패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본인의 성향 파악이 먼저다. 내가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선택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선택은 최선을 다하되, 일단 선택했으면 최대한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어떻게 보면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도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다르기에 결과도 본인이 만드는 것일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을 남이 아닌 나에게 둔다면 말이다.


 누구나 선택의 순간은 외롭고 두렵다. 물론 ‘다음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어느 선택이나 절박하다. 하지만, 선택의 가변성 만큼 ‘실패의 가변성’도 있어서 그 실패가 나중에 어떤 성공의 밑거름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전화위복’,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등 동서양의 속담은 그냥 나온말이 아니다. 그것 역시 누군가의 실패를 통해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매사 자기 확신이 없고 결정하기가 두려운 그녀에게 혹시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당신의 선택은 최선이라고. 그리고 그런 선택의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것이니 선택의 무게와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을 갉아먹지만 말기를. 무엇보다 지금 당신의 편안한 마음이 우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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