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Jan 31. 2021

'왕따공화국'에서 살아 남는 법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나요' '왜 그렇게 기분 나쁜 얼굴과 눈초리로 바라보나요?' '왜 모든 질문에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나요?"


 민서씨는 고개를 홱 돌려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른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머리 뒤꼭지가 따갑다. 회사 동료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총알처럼 머리에 와서 박히는 것만 같다.

 

 평소 그들은 자기들끼리 SNS 톡방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민서씨에게는 아무도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 민서씨는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고, 과자를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사람처럼 회사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는 것이 너무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물론 직장이 학교나 동호회도 아니고, 애초부터 그들에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그런 '무언의 따돌림'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상황을 상상해 봤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함께 으쌰으쌰 힘을 모아서 난관을 이겨내고, 서로 괴로운 일이 있어도 속내를 터놓고 함께 꿈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그런 그림을.

 

하지만,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딜 가든 '니편'과 '내편'을 가르고,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채 남의 이야기를 쉽게 늘어놓고 험담이 일상화가 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녀에겐 '왕따'가 된다는 것이 어느덧 가장 무서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건 혼자 밥먹고 외로움을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 우리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고 차가운 곳이라는 것을.


 왕따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민서씨가 남들과 달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기 일에 열의를 갖고 할 뿐이었지만, 그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회사 분위기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상사, 좀더 편하게 살기 위해 거기에 비위를 맞추는 동료들은 그녀에게 점점 등을 돌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점점 위축되어 갔다. 거기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직의 분위기를 명령을 거스르지 않고,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뿐이었다.

 

 이렇게 '왕따', '은따'(은근한 왕따')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고,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그룹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거기서 벗어 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따'는 누군가 주도해서 편을 가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것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왕따'는 가해자 무리가 집단의식의 광기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어느 무리나 그렇지만, 한두명의 우두머리가 주장을 정하면, 나머지는 그냥 따라가고 만다. 그들은 그냥 그 집단 안에서 편하게 보호받기를 바랄 분, 다른 이의 생각이나 아픔에 큰 관심이 없다.

 

 지금 자책하며 잔뜩 움츠러들어 몸과 마음에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민서씨에겐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 편이 절대로 옳거나 정의로워서 왕따를 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권력같아 보이는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자책하며 가슴을 졸이지 말기를.

 

 그리고  다만 너무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을 갉아먹지 말기를. 그리고 생각이 다를 뿐, 절대로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니니, 당신 자신을 믿고 뚜벅뚜벅 주어진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그리고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지금 억지로 그들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해봤자 역효과만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중요해보이는 사람들은, 어느덧 나중에는 기억 저편에서 사라진 이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임을 잘 알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고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초연해지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따돌리는 일이. 그리고 지금의 이 순간도 삶의 경험과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민서씨가 오늘은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당당히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당신은 어떤 인연을 기다리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