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과 캐리어 3
묵직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을 지닌 도시 베른.
기차역에서 나와 구시가지로 향하는 순간부터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를 에메랄드빛 아레강이 유유히 휘감아 도는 풍경.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왜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베른의 상징 중 하나인 치트글로게 시계탑.
정각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시계탑 위 인형들이 나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은 단순하고 소박한 움직임이었지만, 수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움직임을 반복해 왔을 것을 생각하니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베른 구시가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라우벤'이라고 불리는 아케이드였다.
6km에 달하는 아치형 회랑.
개성 있는 상점들.
오래된 책방, 수공예품 가게, 초콜릿 가게 등등..
길을 잃고 헤매는 건 걱정되지 않았고, 무작정 많이 걸었다.
그 덕에 많을 것들을 눈에 담았고, 머리에 새겼다.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독특한 조각상으로 장식된 분수들도 베른만의 특징이었다.
각각의 분수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들을 다 찾아보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아쉽다.
언덕 위에 자리한 장미 정원은 최고의 전망대였다.
그곳에 올라 바라본 베른 구시가지의 전경은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붉은 지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사이를 아레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눈과 마음에 새겼다.
베른은 화려하거나 시끌벅적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도시 전체에 흐르는 차분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곳에서,
나 역시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걷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베른에서 마주한 그 노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의 고요한 저녁, 혼자 여행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외로움은 사라졌고 자유로움과 평온함이 마음을 채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순간이었다.
베른을 떠나 인터라켄으로..
덧붙이자면,
'사진은 없어?' 하고 주변에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사실 유럽으로 떠날 때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갔었거든요. 여행하는 내내 눈에 담고 싶은 모든 순간들을 그 작은 기계 안에 차곡차곡 저장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그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제 실수로 모든 사진이 삭제되어 버렸어요.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구요...마치 여행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듯한 허망함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버린 거죠.
아쉽게도 여러분께 생생한 사진으로 유럽의 풍경을 나눠드릴 수가 없게 되었어요.
눈부셨던 순간들은 이제 제 머릿속에만 남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