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며
부활, 우리 삶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다시 태어나다. 죽음으로 하나의 과제를 완성하고, 질적으로 도약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각성하다. 깨닫다. 첫 마음을 기억해낸다. 첫 느낌을 다시 느낀다. 온 세포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마음은 돌아가지만, 과거의 나와 현실의 나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첫 마음만 채울 수 있다면, 나는 질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결심들을 하고 삽니다. 운동, 연애, 직업, 학업, 취미 등등에서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그런 결심들은 잊히기 마련입니다. 희망은 미래의 더 나은 모습이 그려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희망은 자체로 현실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했던 수많은 결심들은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치이면서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칩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시선은 땅끝을 향해있습니다. 문제와 문제의 악순환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면 몸도 마음도 지쳐버립니다.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에 갇히게 됩니다. 희망이 있을 자리가 없어지고,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이 없어집니다. 그런 어려움이 겹겹이 쌓이면 다시금 절망하곤 합니다. 이럴 때 한걸음 물러서서 땅끝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의 눈앞의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저 멀리 내가 목표했던 것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목표했던 것들은 오래 전의 나의 첫 마음이겠죠. 그 마음을 기억해내는 것이 우리 삶의 부활 아닐까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육체적인 부활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활이어야 합니다. 기억해내는 것, 첫 마음을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그 감정, 그 느낌을 소환해서 스스로 각성하는 것입니다. "항상 같은 마음은 없다. 단지 첫 마음만 있을 뿐."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은 항상 변화합니다. 당장 하루 전의 마음도 변하는데, 큰 각오와 결심을 했던 오래전 마음은 이미 잊힌 지 오래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소중한 첫 마음을 어떻게 기억해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부활로 죽음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 삶의 여정에서 나서는 여러 고통과 어려움에 매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음에 매몰되지 않았듯이, 우리도 현실에만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신 그 뜻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들 가슴속의 첫 마음을 기억해내야 합니다.
첫 마음, 그 같은 마음에 전혀 다른 나, 환경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정서가 모두 다른 내가 그 첫 마음을 소환할 수 있다면, 나는 질적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랬듯이.